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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 자장면 어때?
점심메뉴를 고를 때 후보로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음식이 있다면, 단연 자장면이다. 요즘에야 문밖에만 나서면 요란한 식당 간판이 즐비하지만 외식문화가 변변치 못했던 예전엔 자장면은 최고의 메뉴였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생일처럼 무언가 기념해야 할 날엔 자장면 한 그릇이면 족했고 덕분에 우리 기억 속의 특별한 날은 늘 이 국수 가락들과 오버랩된다.
그런 특별함은 오늘 범국민적인 사랑으로 발전했다. 가격으로 보나 식사의 절차로 보나 누구나 ‘한끼 가볍게 때울 수 있는 만만한 음식’이 되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 국민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국수 ‘자장면’이 인천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인천사람들은 어깨에 힘 좀 주어도 괜찮겠다.
자장면의 고향은 인천의 옛 부둣가이다. 1883년 개항 한 이래 중국사람들의 거주지인 청국지계가 인천에 만들어지고 청인들이 살게 됐다. 1920년 무렵 인천항을 통해 무역이 성행하면서 중국 무역상들이 자주 왕래하게 되자 아예 이들의 입맛을 겨냥한 중국음식점들이 하나둘 문을 열었다.
청요리가 제법 인기를 끌자 부두 노동자들을 상대로 좀 더 싸고 손쉽게 요리해 팔 수 있는 음식이 없을까, 궁리하게 됐고 그 끝에 태어난 것이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먹는 자장면이었단다. 중국에도 없는 중국요리였다.
‘자장면’이라는 이름으로 이 음식을 팔기 시작한 곳은 1905년 문을 연 공화춘이라는 고급요릿집이라고 전해진다. 일제 때부터 청요리로 크게 이름을 날렸던 곳인데, 이 집이 크게 성공하자 화교 유지들이 근처에 있던 대불호텔을 사들여 북경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중화루’문을 열고, 이어 ‘동흥루’등 중국 요릿집이 줄줄이 들어서며 이 일대가 청요리 골목이 됐다.
한때 거의 사라질 뻔하다가 요즘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북성동 차이나타운이 바로 그곳이다. 그 유명했던 ‘공화춘’은 간판의 흔적만 희미하게 남긴 채 빈 건물로 남아있어 아쉽다. 그나마 요즘 이 주변에만 10여 곳의 중국음식점이 들어서며 차츰 옛 기력을 회복해가고 있어 작은 위안이 된다. 이 골목에서 중국요리집을 운영하고 있는 손덕준 씨의 집안 내력은 이 음식점 거리와 역사를 같이 한다. 그의 할아버지가 바로 중화루 최후의 요리사였다.
보기엔 엇비슷해 보이지만 어떤 야채를, 어떤 모양으로 썰어넣는지 집집마다 천차만별이다. 무엇보다 자장면의 맛은 춘장이 결정한다. 1년 동안 숙성을 시키기도 하고 볶는 요령이 있는 등 집집마다 노하우가 있다. 다소 과장이긴 하지만 영화 ‘북경반점’에서도 언급됐던 것처럼, 그것은 사람도 죽고 사는 ‘특급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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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 좁은 밴댕이 제철 만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