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순수하고 은밀하다 소청의 '빛'과 '꼴'
순수하고 은밀하다
소청의 '빛'과 '꼴'
그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소청도는 비루한 언어로는 담기 힘든 오묘한
‘빛(色)’과 ‘꼴(象)’로 차 있다.
새하얀 빛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분바위,
푸른빛으로 하나 되어 물결치는 하늘과 바다,
그 아래 보석처럼 박힌 옥빛 물웅덩이.
이 세상이 아닌 듯, 순수하고도 은밀하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여기가 어디인가’ 소청도 분바위 지대에 서 있으면, 정신이 아득하다. 십억 년이라는 긴긴 세월 한자리에서 버텨왔는데, 이제야 ‘발견’하다니…. 처음 이곳에 발 디디면 이국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낯선 풍광에 압도당하고 만다. 마치 지구 밖 세계에 불시착한 듯하다.
소청도 선착장에서 동쪽 해안을 따라가면 흰색 바위가 무리 진 거대한 설산과 마주한다. 이 바위는 하얀 분으로 곱게 단장한 여인의 자태를 닮아 ‘분바위’라 이름 지었다. 달빛 비추는 밤이면, 그 모습이 하얀 띠를 두른 것 같아 ‘월띠’라고도 불린다. 바위는 먼 옛날, 별빛뿐인 그믐밤이면 육지로 돌아오는 뱃사람들에게 빛을 뿌려 길을 열어주었다.
하늘도 바다도 온통 파란빛. 그 안에 분바위가 새하얗게 빛난다.
자연산 홍합이 드글드글 깔린 분바위 해변
천연기념물 제508호인 분바위는 지질학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이 바위는 석회암이 높은 압력을 받아 대리암으로 변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매우 보기 드문 암석이다. 햇살, 비, 바람, 파도에 오랜 세월 깎이고 깎여 지금의 빛을 가졌다.
분바위 가까이에는 십억 년 전 분포하던 화석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가 깃들어 있다. 이 암석은 지구 생성 초기 바다에 살던 남조류와 박테리아가 한 켜 한 켜 쌓이고 쌓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화석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품고 있다.
바닷물에 녹은 석회암 웅덩이가 모여 ‘작은 바다’를 이루었다.
분바위 해안은 지형이 압도적이지만 빛깔도 매력적이다.
해가 하늘 한가운데 걸리자 구름이 걷히고 맑은 햇살이 내비친다. 분바위가 눈이 부시어 어릿할 정도로 새하얗게 빛난다. 그 빛이 짙은 코발트빛 바다와 대비되어 더욱 선명하다. 그러다 이내 햇살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회색 또는 하늘빛으로 반짝인다. 자연은 참으로 신비하고도 오묘하다.
바위 아래는 수억 년 시간이 빚어낸 천연 수족관이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물이 빠지면 열리는 바닷길에는, 긴 세월에 녹아내린 석회암 웅덩이가 촘촘히 박혀 있다. 하늘을 담은 이 작은 바다는 저마다 다채로운 빛과 색으로 반짝인다. 마치 각기 다른 신이 빚어놓은 예술작품 같다. 그 길에는 홍합, 고동, 산호초, 톳, 미역, 다시마 등 해양 생물이 지천이다. 행여 다치지 않을까, 발 밟고 지나가기 미안할 정도다.
분바위 바닷가를 메운 바위. 마치 화성에 온 듯 묘한 기분을 자아낸다.
그렇게 유영하듯 바다를 건너 육중한 바위의 몸뚱이를 밟고 올라선다. 푸른 바다 한가운데 펼쳐진 순백의 세계. ‘이런 광경을 본 적 있던가’. 태초의 시간이 흠씬 배인 섬. 이 세상이 아닌 듯, 순수하고도 은밀하다.
섬은 깨질 듯 투명한 자연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육지, 섬의 아름다움을 탐하다
분바위와 스트로마톨라이트
소청도는 백령·대청 섬 가운데 제일 작지만, 나이로는 큰형님이다. 섬은 지질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퇴적 기원의 변성암으로 이뤄졌다. 그중 천연기념물 제508호인 분바위와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압권이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박테리아 화석이며, 새하얀 대리암인 분바위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암석이다. 분바위는 대청도로 유배 온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 순제가 자주 찾았을 만큼 절경이다. 그 아름다움을 세상도 탐하여, 오랜 세월 파헤쳐지고 상처 입어왔다. 일본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암석을 건축자재로 채굴해갔다. 광화문 앞 교보문고 지하도 벽면도 스트로마톨라이트가 깃든 분바위의 결정질 석암으로 만든 것이다. 이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기 위해 2009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고, 현재 국가지질공원 인증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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