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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북쪽 바다 어루만지는,‘백 년’ 빛

2017-07-05 2017년 7월호



북쪽 바다 어루만지는,‘백 년’빛

서해 최북단에 외로이 핀 작은 섬.
소청도에는 1908년 1월 1일,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불을 밝힌 등대가 있다.
십 초에 한 번,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섬광. 그 빛은 110여 년 긴긴 세월,
서슬 퍼런 이념의 파도가 달려드는 밤바다를 홀로 지켜왔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소청 등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산둥반도까지 고래잡이하고 돌아오는 항로를 비추기 위한 것이었다.

1908년 1월 1일, 불 밝히다
소청도 가는 길은 거리로도 마음으로도 멀다. 뱃길로 세 시간 반, 두 동강 난 바다 북방한계선 바로 아래 있는 섬.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남녘 바다 끝, 북녘 바다 시작점에 비밀스레 숨어 있는 섬에 다다른다.
선착장에 마중 나온 소청 출장소 직원을 따라 길을 나선다. 이 섬에는 1908년 1월 1일,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불을 밝힌 등대가 있다. 그 안에는 110여 년 줄기차게 빛을 쏘아 온 등명기가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돈다. 그 밝기는 촛불 15만 개를 동시에 켠 것과 같다. 날이 좋으면 40킬로미터 너머까지 다다른다. 그 빛은 멀리 중국 산둥반도, 만주 대련 지방을 오가는 선박들에게도 길을 내 주었다.
등대 가는 길, 도로를 아스콘으로 포장한 지 일 년이 채 안됐다고 했다. 전엔 노후 된 시멘트 도로였고, 더 오래전엔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였다. 잘 닦인 도로지만 배에서 내리자마자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는 게 쉽지 않다. 땅 멀미가 인다. 하지만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스치듯 비치는 절경에 답답했던 가슴이 트이고 머리가 맑아진다. 그렇게 섬 남서쪽 끝자락에 이르자, 하얀 등대가 고고한 모습을 드러낸다.


“등대는 뱃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이야.
등대지기는 그 빛을 지키는 사람들이고.”



비바람 속 꺼지지 않는 불빛
소청 등대는 문공배(59) 소청도 항로표지 관리소장과 등대원 두 명이 지키고 있다. “옛날이야기 하면 뭐 합니까.” 불쑥 찾아온 뭍 손님이 반갑지 않은지 문 소장이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예전에 이 등대에서 하룻밤 신세 진 적이 있어요.” 함께한 일행이 건네는 말에 문 소장의 눈빛이 한결 너그러워진다. 취재차 직원 관사에서 머물렀는데, 당시 등대원으로 근무하던 문 소장은 때마침 뭍에 나간 바람에 마주치지 못했었다. “나하고 대포 한잔하셔야겠네. 허허.”
뜻밖의 인연에 이야기보따리가 술술 풀린다. 문 소장은 인천기상대에서 근무하다 외딴섬의 등대지기가 되길 자처했다. 복잡한 세상을 등지고 묵묵히 바다를 지키는, 등대처럼 살고 싶었다. 하지만 뭍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외딴섬에서의 삶이 녹록할 리 없다. 처음 발 디딘 섬은 이름도 생소한 목덕도. 안개가 바다를 하얗게 뒤덮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두려움이 밀려왔다. 처음 그에게 자연은 싸워 이겨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몇 차례 보내면서 점차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등대지기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세월이 벌써 20여 년이다. “소청도만 벌써 세 번째 왔어요. 지금은 육지보다 섬에 있는 게 편해요. 바다 지키면서 가끔 시간 나면 고기 잡고 홍합 캐고…. 그런 재미로 살아요.”




벌써 세 번째 소청 등대를 지키는, 문공배 소청도 항로표지 관리소장




내년이면 불 밝힌 지 꼭 110년이 되는 등명기



섬 안의 ‘또 다른 섬’
말은 그리해도, 등대지기의 24시간은 바쁘게 돌아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근 무인표지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해양 기상을 관측하고 장비를 기름칠하고 조이며 늘 점검한다. 세상에 어둠이 내리면 등명기의 스위치를 올린다. 등명기가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40초, 10초에 한 번 섬광이 뻗어나간다. ‘심장’ 같은 그 빛을 절대 꺼트려서는 안 된다. 주기도 정확히 맞춰야 한다. 단순히 빛만 쏘는 게 아니다. 해무가 가득 낀 날이면 등대 불빛은 아무 쓸모가 없다. 기상 상태에 따라 광파, 전파, 음파를 내보내며 뱃길을 안내해야 한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온 세상이 잠든 밤에도 깨어 있어야 한다.
“등대지기 세 명이 1일 3교대로 돌아가면서 근무하는데, 쉬는 날 뭍에 들어갈 때면 그렇게 잠이 달 수가 없어요. 그래도 참 뿌듯해요. 등대는 뱃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이잖아요. 우리는 그 빛을 지키는 사람들이고.”

섬의 밤은 육지보다 빨리 찾아온다. 어스름이 내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해와 달이 자리를 바꾼다. 순간 번쩍이는 섬광. 새하얀 빛줄기가 검은 바다 위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서해 최북단 바다에 홀로 솟은 ‘또 다른 섬’의 하루가 시작됐다.



등대 옆 홍보관



등대에서 바라본 대청도



등대섬 가는 길
소청도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여객선을 탄다.
인천 시민은 뱃삯이 60% 할인된다.
지난달 6일부터 오전 백령 출항 여객선 ‘옹진훼미리호’가 3년여 만에 닻을 다시 올렸다.
문의 :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1599-5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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