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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버리고, 방향키를 잡다!
펜을 버리고,
방향키를 잡다!
스물아홉, 돌연 잘 다니던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넓은 세상에 나가겠다는 꿈 하나로 전공과 상관없는 항해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염려 반, 걱정 반이던 주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위해 시작한 항해는 어느새 그에게 세계적인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의 배를 운항하게 만들었다. ‘에스페란자호’를 움직이는 그린피스의 첫 한국인 항해사 김연식(34). 그런 그가 최근 한국인 최초로 지중해 난민 구조 활동에 뛰어들었다.
글 김윤경 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 Greenpeace, Sea-Watch 제공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던
사회 초년병
그는 학창시절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인천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인천일보의 기자가 되었다. 처음 기자가 되었을 때는 꿈을 이루었다는 즐거움에 뛸 듯이 기뻤지만, 현실은 그의 기대와 달랐다. 기자에 대한 막연한 꿈만 품었지, 어떤 기자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기자라는 직업이 내성적인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꿈과 현실 사이의 방황은 그를 점점 지치게 했다.
신문사 입사 3년 만에 과감히 사표를 냈다. 가슴속 답답함은 온 세상을 두루 구경하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 세계를 돌아다니는 ‘여행자의 꿈’을 구체화하기 위해 관련 직업을 찾아보던 어느 날, 우연히 선원모집공고를 보았다. ‘젊은 그대, 바다를 열어라!’, 매력적인 문구였다. 해양대학을 나오지 않은 탓에 걱정이 앞섰지만, 바다를 향한 열망이 그를 움직였다.
“인천일보 기자생활 당시 해양경찰서에 출입하면서 선원들로부터 들었던 바다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갑자기 가슴 한구석에서 뜨거운 불덩이 같은 게 올라왔습니다. 그 길로 국비로 해기사(항해사와 기관사를 통칭)를 양성하는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 지원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가슴을 뛰게 하다
해기사 양성과정에 합격한 그는 6개월의 교육을 마치고 실무를 쌓기 위해 1년을 최하급직(무급 실습생) 선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다른 동기들과 달리 비전공자인 그에게 취업은 쉽지 않았다. “ ‘감자 깎고, 양파 까고, 접시 닦고 그래도 좋아. 배를 탈 수 있다면….’ 그땐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운항하는 부정기 벌크선을 타기로 결심했다. 스물아홉이 되던 해였다.
인도와 미국, 호주, 네덜란드, 브라질, 일본, 두바이, 이집트…. 그는 5년 동안 36개국 48개 항구를 다녔고, 이등항해사로 진급했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매력에 흠뻑 빠져있던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 시작했고, 지난 2015년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젊은 나이에 큰돈을 모을 수 있었고, 부모님께 서울 외곽의 작은 아파트도 사드릴 수 있었다. 그렇게 안정적인 삶을 지속하는 듯 보였지만, 마음속에는 늘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아쉬운 갈증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릭 워렌 목사의 테드(TED)강연을 보다가 다시 가슴이 뜨거워졌다. “책 내용 중 너희 손에 있는 게 뭔지 먼저 살피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너의 손에 있는 재능을 너를 위해 쓰면 너의 소득이나 지위에 도움이 되지만, 어느 순간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남을 위해 사용하면 의미 있는 삶이 된다. 그러면서 재능, 학력, 인맥, 창조력, 젊음, 시간, 재산 등 남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신의 것을 살피라는 내용이었죠. 그 말을 듣고 저를 곰곰이 살펴보니, 젊음, 시간, 항해사 면허가 있더라구요.”
빙하를 배경으로 연주하는 루도비코와 그린피스 촬영팀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북극해에 가장 가까운 섬 스발바르(Svalbard, 노르웨이)에서 해안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마다 사람들은 손사래 친다. 제 일도 아니면서 남의 실패를 장담한다.
내 삶에 관한 한 조금은 독선적일 필요가 있다. 어떤 일이든 끝까지 해내려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개의치 않아야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확고한 신념뿐이다. 용기 내어 꿈을 좇아야 한다. -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 中 -
에스페란자,
희망을 항해하다
그렇게 그는 또 다른 꿈, 그린피스에서 운항하는 환경감시선을 타겠다는 새로운 꿈에 도전했다. “좀 더 의미 있는 승선을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그린피스에 지원했죠. 막막한 바람이지만 간절하면 이뤄질 거라 믿었습니다.” 그린피스 항해사가 되기 위해 일급항해사가 되는 것도 포기했다. 상선 근무 때보다 급여가 절반 이상 줄어들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린피스는 3척의 환경감시선을 운영하며 전 세계에서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그는 2015년부터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2천 톤급 ‘에스페란자호’의 항해사로 일하고 있다. “그린피스에서는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현장을 주기적으로 찾아 모니터링하며 감시하는 활동을 하고, 관련 캠페인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서아프리카 해역의 불법어업 현황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었죠.”
이탈리아 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와 북극에서 진행한 영상 촬영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지난해 4월 루도비코가 작곡한 ‘북극애가’를 빙벽 옆에서 연주하는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녹아내리는 빙하의 슬픔을 알려 북극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거였죠. 루도비코의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지는 순간에도 배경 속 빙하가 녹아내려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Sea-Watch가 표류 중인 난민들을 구조보트에 태우고 이동하고 있다.
구조를 기다리는 난민들에게 긴급하게 구명조끼를 던진다.
지중해를 헤매는
쿠르디의 친구, 김연식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고 지중해 난민구조 활동까지 이어졌다. “지난 2월경 독일 출신 선원이 난민구조선에서 일할 항해사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배를 몰 사람은 많지만 무임금으로 일할 사람은 드물거든요.”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물에 젖은 아기를 구조대원이 품에 안은 사진이었다. 그는 무작정 독일 시민들이 만든 난민구조단체인 ‘Sea-Watch’에 자원봉사를 신청했고, 그렇게 난민구조선에 올랐다.
그는 4월 12일부터 5월 4일까지, 5월 30일부터 6월 19일까지 하루에 많게는 640명의 난민을 구조했다. 구조과정에서 생애 처음으로 죽음을 목도하기도 했다. “길이 10m쯤 되는 작은 보트에 160명이 넘는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매달려 있는 거예요. 보트는 전복 직전의 긴박한 상황에, 혹은 전복 후에 발견되기도 합니다. 한 해 5천여 명이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의 결정 탓에 익사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이 지금 이 바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죠.”
그는 오로지 후원으로 유지되는 난민구조를 위해 지난 3월 31일부터 6월 25일까지 다음카카오 스토리펀딩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5년에 지중해 터키 해안으로 떠밀려온 시리아 국적 세 살 남자아이 아일란 쿠르디 아시죠? ‘지중해를 헤매는 쿠르디의 친구들’이라는 스토리 펀딩으로 후원금을 모집했는데, 놀랍게도 하루 만에 후원목표액의 60%인 300만 원이 모였고, 일주일새 90%가 채워졌습니다.” 후원금은 모두 ‘Sea-Watch’에 전달해 난민구조에 필요한 구명조끼와 생수, 구급약 등을 구매하는 데 사용했다.
문득 그가 왜 자꾸 새로운 도전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머리에 맴도는 감정을 표현할 적절한 대답을 찾던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조급함과 촉박함’이었다.
“스스로 제 삶을 결정했던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15년이 지났어요. 그런데, 지금부터 15년이 더 지나면 제가 쉰 살이 되는 거죠. 짧은 삶에 대한 조바심, 특히 젊은 혈기로 현장에서 뛸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해요. 물론, 쉰이 되면 그때 또 무언가 하고 있겠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일단 시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지만, 분명 의미 있는 삶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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