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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이름으로 바다에 뛰어들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바다에 뛰어들다
늙은 어머니는 오늘도 물속 깊이 뛰어든다.
차디찬 바다에서 뜨거운 눈물 삼키며
삶과 죽음 사이를 자맥질한다. “휘이, 휘이 ….”
어머니가 바닷속에서 꾹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죽으러 들어가서 살아 나온다’고 했다.
해녀라고 해서 어찌 바다가 춥고 두렵지 않으랴.
그럼에도 기어코 바다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건,
그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태어난 순간, '해녀'로 정해진 운명
일흔이 된다. 늙은 어미는 가만히 있어도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안 아픈 데가 없다. 걷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 허나 신기하게도 물에만 들어가면 훨훨 날아다닌다. “물속에선 누구도 나를 따라올 자가 없어.” 어머니는 ‘해녀’다.
김호순(69) 할머니는 아홉 살 때부터 물질을 했다. 바닷가 웅덩이에 물이 고이면 친구들과 술래잡기하며 자연스레 잠수를 배웠다. 작고 여린 손으로 미역이며 우뭇가사리를 캐 공책과 연필을 사고, 집안 살림을 보탰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 어머니도 해녀였다. 제주 바다에서 태어난 순간, 억척스러운 섬 여자의 인생을 대물림 받았다. 그렇게 평생 해녀의 삶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아왔다.
“딴 건 다 몰라도, 나 어릴 때 잠수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해.” 노쇠한 어머니는 순간순간 기억을 놓치지만, 처음 온몸의 감각을 깨우던 물의 감촉만큼은 결코 잊지 못한다. 지금도 육지보다 물속에 있는 게 마음 편하다. 바다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바다를 마시고, 바다에서 살다, 다시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잠수 조금 해서 밥이나 벌어먹고 사는 사람을 뭣하러 만나려고.” 해녀 김호순은 처음엔 만나기를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정 많은 어머니는 우리를 배에 태워주고, 두무진 일대를 구경시켜주기까지 했다.
백령도 바다에 마음 빼앗긴 제주 해녀
열다섯 되던 해에, 제주도에서 처음 육지로 나왔다. 꽃 피는 봄이었다. 동네 해녀들과 밥해 먹을 보리쌀 스무 말을 짊어지고 뭍으로 물질을 하러 나섰다. 남쪽 나라 해녀들의 원정이었다. 울산에서 시작해 여수, 백령도에 이르기까지…. 바다가 있다면 어디든 갔다.
백령도에는 30여 년 전에 왔다. 멀고도 먼 여정이었다. 제주도에서 인천까지는 비행기 타고 한 시간 거리인데, 육지에서 섬까지 뱃길로 열두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다다른 최북단 서쪽 바다는 그야말로 보물창고였다.
“바닥에 전복이며 해삼이 쫙 깔린 거야. 거기에 반해서 내 여태껏 살고 있어.” 서쪽 바다에 마음을 빼앗긴 어머니는 백령도를 고향 삼아 눌러앉았다. 예서 결혼해 터를 잡고, 제주도에 살던 자식도 하나둘 불러들였다.
“덩달아 나까지 와버렸지 뭐야. 여기가 좋대요, 우리 어머니는. 내가 효자는 못 돼도 남은 생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할머니의 맏아들은 제주도에서 술장사를 하다 섬으로 흘러들어 왔다. 잠시 쉬었다 간다는 게 18년이 지났다. 그는 열다섯 이후로 어머니와 살 부비며 산 적이 없다. 온 바다를 떠돌던 어머니 곁을 이제야 지키게 됐으니, 차마 떠날 수가 없다.
어머니는 오늘도 ‘망사리’가 가득 차기를 기원하며 바다로 나선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어머니는 오늘 바다에 나가지 못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잠잠했던 파도가 갑자기 높아지고 물살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바다는 좀처럼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서해는 더 야멸치다. 하루 두 번 밀물이 차오르고 썰물이 질 때 딱 한 시간만 품을 허락한다. 그나마 물발이 세면 물속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반으로 준다. 또 갯벌을 가득 머금고 있어 바로 앞 시야도 가로막아 버린다. “서해는 험하기 짝이 없어. 또 물속 날씨란 게 그때그때 달라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지. 하지만 괜찮아. 아무리 바람 불고 물속이 캄캄해도 난 하나도 무섭지 않아.”
해녀라고 해서 어찌 바다가 춥고 두렵지 않으랴. 바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숨이 넘어가고 온몸이 터질 듯한 고통이 밀려온다. 하지만 천직이라 여기고, 자식을 떠올리면 힘든 게 없었다. 거친 파도 맞으며 주름이 깊어지고 허리가 굽어도, 망사리가 묵직하게 채워지면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사내들은 못 따라가요.” 어머니는 수심 25미터 깊은 바다까지 내려가 삶의 희망을 캔다. 백령도에서 가장 젊은 해남인 사위 윤학진(43) 씨도 20미터 이상은 간 적이 없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평생을 물속에서 살아온 세월. 척박한 환경이지만 가난을 탓하지도 지켜만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곱던 얼굴에 깊게 주름 파인 어머니는,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거친 바다로 뛰어든다.
어머니를 따라, 8년 전 제주도에서 백령도로 온 사위 윤학진 씨.
사이좋은 아들과 어머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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