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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인천 출신 독립운동가의 육아 일기

2017-08-01 2017년 8월호




인천 출신 독립운동가의 육아 일기

한국판 ‘안네의 일기’라 할 수 있는 <제시이야기>는 1938년 중국 장사(長沙)에서 시작되어 광복 후 환국할 때까지 8년간 이어진 일기다. 성장과 가족사를 중심으로 한 육아 기록이지만 당시 임시정부 가족들의 생활상과 독립운동가들의 따뜻한 인간애, 해방의 감격을 녹여내고 있다. 주인공 제시의 부모는 인천과 인연이 각별하다. 일기를 쓴 모친 최선화는 인천에서 출생했으며, 부친 양우조는 광복 후 인천 제마방직회사에서 근무했다.

정리 유동현 본지 편집장 사진·그림 제공 우리나비





부부 독립운동가의 맏딸 제시

일기는 1938년 7월 4일 맏딸 ‘제시’의 출생으로 문을 연다. 1919년 3·1운동 직후 일본 식민 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1945년 8·15 광복까지 상하이(1919)·항저우(1932)·전장(1935)·창사(1937)·광저우(1938)·류저우(1938)·치장(1939)·충칭(1940) 등지로 청사를 옮기며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임시정부가 중국 대륙의 동쪽 전장에서 둥띵호를 거쳐 창사에 도착한 것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12월. 이듬해 그곳에서 이탈리아 의사, 프랑스 수녀와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바로 독립운동가 양우조·최선화 부부의 맏딸 제시. 집안의 돌림자가 ‘제’자인데 미국에서 공부한 아버지가 문득 떠올린 이름이 바로 영어 이름 제시였다.

‘아이가 자랐을 때 조국이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제 몫을 하길 바라는 마음과 아이가 여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인으로서 활약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그렇게 지은 이름이었다. 부부가 첫아이를 잉태했을 때 김구 선생은 “영양가 있는 걸 먹어야 우리 임정에 건강한 아이가 나온다.”며 부부를 요릿집에 데려갔다. 부부는 “생선 맛이 난다.”며 음식의 정체를 궁금해 했지만 백범은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그들이 먹은 것은 뱀으로 만든 요리였다.


최선화, 양우조 그리고 제시


모녀 3대. 최선화(아래), 제시(오른쪽), 김현주


임시정부 의정원 의회 일동


<제시이야기>는 타국 중국에서 자라는 제시를 바라보는 부모의 애틋한 사랑, 독립운동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의연함, 한국 동포들 사이의 따뜻한 정뿐만 아니라 한중 정치인들의 우정, 한국인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도움과 배려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료적 가치도 있다. 이 시기 임시정부 기록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일기는 중일전쟁 시기 일본의 공습을 피해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이동하기까지의 실상을 시기별로 정확히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기록이다. 임시정부의 행로와 중국에서의 생활, 독립에 대한 희망을 담은 소소한 일상들을 통해 생사가 오가는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삶의 열정을 꽃피울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최선화는 인천 출신, 양우조는 인천 방직회사 근무

<제시이야기>의 원작인 <제시의 일기>를 쓴 독립운동가 양우조·최선화 부부는 1937년 백범 김구 선생의 주례로 결혼했다. 두 사람은 임시정부 내에서도 손꼽히는 지식인이었다. 평양에서 성장한 양우조(1897~1964)는 19세에 상하이로 망명했다.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의 도움으로 20대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인재로 31세에 귀국했으나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헐벗은 동포들을 먹고 입히기 위해서는 우선 독립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1929년 상하이로 다시 망명, 독립운동에 합류했다. 독립 쟁취에 필요한 사상집을 번역했는데 쑨원의 <삼민주의>도 그중 하나다. 임시정부의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임시정부의 자금을 모으고, 유학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지원해 외국으로 보내는 업무를 수행했다. 또 민족 진영 인사들과 함께 한국독립당 결성을 추진했다. 미국 유학 당시 방직공학을 전공한 양우조는 일본이 패망하자 귀국해 1947년 인천 제마방직회사와 조선방직협회의 이사로 활동했다.

인천 출신으로 이화여전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최선화는 모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양우조와 결혼하기 위해 1936년 상하이로 건너갔다. 임시정부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한 그는 임시정부 가족의 여성들이 아이를 양육하고 한글학교를 운영하며 독립운동가인 남편을 내조하는 일에서 나아가 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길을 모색했다. 이후 한국애국부인회 재건준비위원 및 서무주임(총무)으로 활동했다.

양우조는 1964년, 최선화는 2004년에 작고하였으며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귀한 증거들이 들어 있기도 한 <제시이야기> 속 주인공 제시는 2010년 9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양우조·최선화 부부의 외손녀이자 제시의 딸로 <제시의 일기>를 정리한 김현주는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학교 교장을 지내며 한국 비하 발언과 역사 왜곡으로 논란이 됐던 일본 작가 가와시마 요코의 자전적 소설 <요코 이야기>(2005)를 바로잡기 위해 <제시이야기>를 미 교육국 공식 도서로 지정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만화가 박건웅은 지금은 모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만화의 한 유형이지만 소설처럼 길고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갖춘 그래픽 노블로 옮겨 극적인 ‘흑백 장편영화’ 한 편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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