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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찾은 인천의 옛 흔적
흙에서 찾은 인천의 옛 흔적
발굴. 땅속에 묻혀 있던 옛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내는 일이다.
발굴을 통해 그들이 사용했던 삶의 도구들이 출토되며,
이를 토대로 비어 있던 역사의 조각들이 맞춰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복원해내는 학문을
고고학이라 한다.
글 배성수 시립박물관 컴팩스마트시티부장 사진 인천시립박물관
구월동 유적 전경
중학교 다닐 때 나의 꿈은 고고학자였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해리슨 포드가 카우보이 모자에 채찍을 차고 등장하는 영화 ‘레이더스’를 보고 나서부터다.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의 직업은 고고학자로, 세계를 누비며 고대 유적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존스 박사의 활약은 고등학생 때 개봉한 속편 ‘인디아나 존스 2’에서도 계속되었고, 고고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사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진학해서 보았던 ‘인디아나 존스 3’에서도 여전히 존스 박사의 모험이 이어졌지만, 영화가 주는 감동은 어째 전 같지 않았다. 영화 자체의 재미가 떨어진 까닭도 있겠지만, 답사나 견학을 통해 다녀본 발굴현장은 영화 속 그것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발굴현장은 보물이 숨어있을 것 같은 동굴이 아닌 뙤약볕 논바닥이었고, 발굴에 참여한 조사원들은 카우보이모자와 채찍 대신 시골 농부의 밀짚모자에 모종삽과 호미를 들고 있었다. 땅속에서 캐낸 유물은 황금빛 보물은커녕 볼품없는 토기 쪼가리들이었다. 학과에 고고학 교수님이 안 계신 탓도 있었지만, 아무튼 고고학자가 되겠다던 나의 꿈은 그렇게 시들해져만 갔다.
구월동 유적 청동기시대 원형 집 자리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박물관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문학산 청동기시대 유적 발굴에 잠시 참여한 적이 있다. 월드컵을 앞두고 경기장 진입도로 건설에 앞서 실시한 발굴조사였다. 학예사로서 경험을 쌓기 위해 일주일 남짓 현장에 나갔을 뿐이지만, 몸으로 부딪히며 느꼈던 발굴 현장의 모습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영화에서 보았던 긴장감도, 대학 때 느꼈던 초라함도 아니었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삽과 붓으로 조심스레 흙을 털어내며 유물을 캐내는 조사원들의 모습은 한없이 진지했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토기 쪼가리는 공간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더해주는 중요한 단서였다. 청동기시대부터 문학산 주변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들이 어떻게 살았나를 알려주는 생활의 흔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후손이 훗날 비류가 터를 잡았던 미추홀의 원주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고고학자의 꿈을 접고 책상에서 옛 기록을 뒤지던 나에게 당시의 발굴현장은 영화 속의 모험이나 흥미진진함은 없었지만, 먼 옛날 삶의 흔적을 하나씩 찾아내는 뜻깊은 과정으로 다가왔다.
구월동 유적 출토 청동기 시대 토기
올여름 인천 유일의 선사박물관인 검단선사박물관에서 발굴을 주제로 한 특별전을 연다고 한다. 해마다 개최해 왔던 인천 지역 발굴 성과전의 일환으로 올해는 지금 아시아드 선수촌 아파트가 들어선 구월동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을 처음 공개한단다. 구월동 유적은 서해에서 유입되는 승기천 갯골을 사이에 두고 문학산 유적과 마주보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으로 당시 문학산에 터를 잡았던 사람들의 생활범위가 구월동 일대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41개의 집 자리가 발굴되어 지금껏 인천에서 발굴된 청동기 유적으로서는 가장 큰 규모다. 이번 전시에서는 구월동 유적뿐만 아니라 강화군 하점면의 신봉리·장정리 유적 등 청동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인천에서 발굴 조사된 주요 유적과 함께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도 함께 전시한다고 한다.
한때 고고학자를 꿈꾸었던 사람에게 발굴을 주제로 한 전시는 반갑기 그지없다. 내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보면서 고고학자를 꿈꾸었던 것처럼 전시를 관람하면서 고고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는 학생이 있지 않을까? 그들 중 누군가 훗날 발굴현장을 누비는 멋진 고고학자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혹시 모를 일이다.
검단선사박물관 기획특별전
흙에서 찾은 인천의 옛 흔적
일시 : 7월 25일(화) ~ 10월 29일(일)
장소 : 검단선사박물관 기획전시실
문의 : ☎ 440-6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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