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일상의 소요
2017-09-29 2017년 9월호
일상의 소요
글 최지은 팀장(남구 학산문화원 생활문화센터)

‘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상하게 무기력하고, 마치 무중력의 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토요일 오전이었다. 문화원의 프로그램 운영상 토요일 근무는 가족 단위나 인근 거주 주민들의 방문이 자주 이루어진다. 오전부터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있어 공연히 마음은 분주한데 무언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나른함에 묻혀 있을 무렵,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부부와 아이가 있었다. 한눈에도 다문화 가정으로 보였다. 그들은 서툰 한국말로 한국어 교습을 문의했다. 한국어 교습이 진행되는 인근 다문화센터 연락처와 프로그램을 조사하는 동안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부부의 국내 거주 기간은 5년. 하지만 일곱 살 된 딸은 이제 막 석 달째 접어들고 있었고, 어린이집에서 언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여 고심 끝에 센터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경찰 공무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전국팔도를 무대로 학교를 다녔던 나는 지방 사투리가 외국어만큼이나 생경했다. 전학 갔던 학교에서도 늘 혼자이던 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러한 시간을 지나, 인천이라는 도시에 터를 잡으신 부모님 덕에 인천 사람으로 40여 년을 살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 출신 부부의 애달픈 마음이 느껴져 학습지 회사에 상담을 등록하고, 문화원의 각종 프로그램을 안내하며 부디 그들이 인천에서 편안히 자리 잡기를 바랐다. 몇 해 전 베트남 호이안 지방을 여행했던 얘기도 하며 이런저런 수다로 대화를 이어갔다. 남편은 인하대학교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고, 부인은 남편과 더불어 한국살이를 하다가 이제 비로소 자신감이 붙어 딸을 한국에서 기르실 마음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가족이 돌아간 뒤, 그저 눈만 끔벅이던 오전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난 나를 발견했다. 보이지 않는 탄성 좋은 투명실로 엮어진 인연의 실타래처럼, 나의 일상으로 연결된 가족 덕에 며칠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됐던 특별한 한 주였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베트남을 방문해 연유 섞인 진한 그들의 커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내 가슴에 새긴 한 구절
혼자 걷는 길은 없다 - 류시화 시인의 페이스북 글 중
현대인의 병이라고도 표현되는 고독은 아마도 서로 간의 진정한 교류 부족에서 오는 마음의 병이 아닌가 싶다. 고독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같이 가는 길을 조용히 즐기는 법도, 혹은 같이 가는 그 길을 재미나고, 이왕이면 든든하게 가는 법도 터득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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