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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잊고 있던 소. 래.
우리가 알던, 잊고 있던 소. 래.
소래는 아직 건재하다. 바로 앞까지 도시가 침범했지만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비릿한 바다 냄새와 왁자한 시장 바닥, 만선의 꿈을 싣고 출렁거리는 고깃배, 수인선을 달리던 꼬마기차…. 우리가 여전히 찾고 기억하는 소래다.
포구에서 한 걸음 더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소금기 가득 배인 물기 어린 땅. 갯벌 그리고 수탈의 역사가 만들어낸 소금밭은 삶의 터전을 거쳐, 오늘 생명의 안식처가 되었다.
가을 한가운데, 우리가 잊고 있던 소래를 찾았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한때 소래 사람들의 땀이 스민 소금이 산처럼 쌓이던 창고.
지금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고 있다.(소래습지생태공원)
발걸음을 느리게 움직인다.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어와 머릿속을 맑게 깨운다. 바람 사이에 소금기가 짙게 배어 있다.
소금꽃 피던 마.을.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 고요하고 아늑하다. 소래습지생태공원은 우리가 아는 왁자한 소래가 아니다. 광활한 세상에 마음을 꺼내두고 한참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느리게 움직인다.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어와 머릿속을 맑게 깨운다. 바람 사이에 소금기가 짙게 배어 있다.
눈앞에 네모반듯한 소금밭이 수평선처럼 펼쳐진다. 소래는 소금의 고장이었다. 1907년 주안을 시작으로 남동, 군자와 함께 전국 소금 생산량의 30%를 만들어냈다. 그 안엔 쓰라린 역사가 깃들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화약을 제조하는 원료로 쓰기 위해 소금을 만들었다. 그 치욕의 결정체가 일제가 놓은 철길을 따라 바다 건너 섬나라로 속절없이 흘러들어 갔다.
아픈 역사에서 시작했지만, 염전은 오랜 세월 소래 사람들을 먹여 살린 삶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 주안과 남동 지역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염부들은 노동자로 떠나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소래염전은 1996년 7월 문을 닫는다.
다행스럽게도 3년 후, 폐 염전은 소래습지생태공원으로 다시 세상의 빛을 보았다. 적은 양이지만, 서쪽 바람과 햇살을 머금은 결정체도 새로이 빚어내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이 흐려 소금밭을 일구는 이가 없다. 염전에 고인 바닷물에 가을 하늘이 외롭게 잠겨 있다. 그 위로 젖빛 구름이 고요히 일렁인다.
오늘은 날이 흐려 소금밭을 일구는 이가 없다.
염전에 고인 바닷물에 가을 하늘이 외롭게 잠겨 있다.
아픈 역사 어루만지는 자.연.
습지 한가운데는 풍차가 돌아간다. 낯선 듯 어울리는 이 피사체 덕분에, 서쪽 끄트머리 잊혀가던 습지는 아마추어부터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계절마다 햇살이 다르고 빛깔이 다르다. 자신감만 살짝 부여잡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누구든 ‘인생컷’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봄여름가을겨울 다 좋아요. 그중에서도 새벽빛이 부옇게 밝아올 때 물 안개가 피면 참 멋있어요. 내일 아침에 다시 오려고요. 운 좋으면 안개가 필지도 모르죠.” 길 위에서 습지로 출사 온 하재완(65) 씨와 김진세(70) 씨를 만났다. 일흔 살의 노 작가는 평생 삶의 무게를 지탱한 단단한 어깨에 카메라를 짊어 메고 습지를 찾는다. 오늘은 안개 대신 구름을 뷰파인더 안에 담았다. 순간순간 모습을 바꾸는 구름 또한 자연이 선사하는 근사한 예술작품이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습지를 걷고 또 걷는다. 염전을 지나 갈대밭 건너, 새들이 쉬고 있는 호숫가를 지나 다시 갈대밭으로…. 생명 가득한 대자연이 아픈 역사를 덮어주고 있었다. 시린 마음에 온기가 돈다.
소래의 작가’ 최병관.
그는 언젠가 사라질지 모르는 고향에 대한 기억을 붙잡으려 사진기를 들었다.
허물어진 벽돌집 사이로 보이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한때 물기 어린 땅이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감춰진 기.억.
색감도 공기도 모든 게 한참 다른 세상, 저 멀리 들판 사이로 두 개의 붉은 벽이 시야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허물어진 벽돌집이다. 어제와 오늘, 그 긴 시간의 간극. 허물어진 벽돌 사이로 보이는 고층 아파트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로 채워진 저 일대도 한때는 생명 넘치는 물기 어린 땅이었다. 사진작가 최병관 선생은 그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한때 저 아파트 일원까지 모두 습지였어요. 그나마 남은 땅을 공원으로 남겨 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에요.” 그는 수인선 협궤열차가 하루에 세 번 오가던 산뒤마을 101번지에서 나고 자란 ‘소래의 작가’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삼대에 걸쳐 이 땅에 머무르고 있다. 가난하고 고달픈 삶을 물려준 땅이지만,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르는 고향에 대한 기억을 붙잡으려 사진기를 들었다. 작가가 20여 년 찍어 온, 소금기 푹 젖은 사진들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가진 것 없이 염전에 기대어 살던 소래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난다.
처음 탐욕의 결정체를 빚어내던 땅은,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긴 세월 소래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주었다. 그리고 오늘, 그네들의 땀이 스민 대지엔 꽃이 피고 새들이 찾아온다. 해가 산 너머로 기우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제 모습을 감춘다.
가을, 어둠에 젖은 습지가 정적 속으로 가라앉는다.
소래습지생태공원
위치 남동구 소래로 154번 길 77(논현동)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문의 ☎ 435-7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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