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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다리 사람과 세상을 잇는 길

2019-09-01 2019년 9월호


다리 사람과 세상을 잇는 길
 
“다리는 길의 연장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리는 끊어진 길을 연결해 세상과 세상,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잇는다. 인천에는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잇는 수많은 다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긴 다리인 ‘인천대교’는 다음 달이면 개통 10주년을 맞는다. 그냥 스쳐 지나는 것이 아니다. 다리를 지나는 모든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역사가 된다. 바로 이 순간에도.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김성환, 류창현
 

오늘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다리를 건넜다. 아침엔 막힌 다리 위를 진땀 흘리며 달렸고, 오후엔 두 ‘다리’로 ‘다리’ 위를 한가로이 거닐었다. 다리는 목적지가 아닌 하나의 여정이다. 멈추어 서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무심코 지나온 다리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모습일까. 또 언제부터 그 자리를 지켜왔을까. 이제야 ‘발견’한 인천의 다리들. 모든 다리가 나름의 역사를 간직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하늘에서 본 인천대교

 
대한민국과 세계를 잇다
 
다리는 세상과 세상을 잇는다. 2001년 3월,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면서 인천에 대한민국의 새 하늘길이 열렸다. 섬의 운명도 바뀌었다. 용유도와 영종도는 한 몸이 됐고 그 한가운데 거대한 활주로가 났다. 다리도 놓였다. 2000년 11월 청라국제도시와 영종국제도시를 연결하는 ‘영종대교’가 완공됐다. 2009년 10월 인천대교가 개통하기 전까지 유일하게 육지와 영종도를 잇는 다리였다. 총 길이 4,420m의 대교는 언제나 막힘 없이 시원하다. 경쾌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차창 밖으로 바다가 물결친다. 다리는 광활한 바다에 펼쳐진 매력적인 피사체다. 세계 최초 3차원 형상으로 시공된 주 케이블과 한옥 처마를 형상화한 교량이 시선을 잡아챈다.
제2경인고속도로 송도 부근에 이르자 거대한 다리가 자태를 드러낸다. 세계에서 7번째로 긴 다리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긴 ‘인천대교’다. 21.38km의 바다 위 고속도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다. 5분쯤 달렸을까, 시선을 가로막던 가드레일이 사라졌다. 12.3km에 이르는 인천대교의 바다 구간이 시작된 것이다. 차 속도를 조금 줄인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를 달리는 기분이다. 이어 238.5m 높이의 주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여기가 인천대교 드라이브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다리는 100년 수명을 자랑하는 교각이 든든히 떠받치고, 케이블 208가닥이 얽힌 주탑이 튼튼히 지탱하고 있다. 다음 달이면 인천대교 개통 10주년이다. 생에 첫 건강검진도 받는다. 대한민국과 세계를 잇는 통로로, 앞으로 90년은 거뜬할 것이다.



케이블 208가닥이 얽힌, 238.5m 높이의
인천대교 주탑.
 


원인재 철교. 세월의 흐름 속에
교각과 철재 상판만 남았다.
 



추억을 넘어 오늘로.
‘시간을 달리는’ 수인선 열차와 소래 철교



지금은 연인과 가족이 손잡고 거니는,
협궤 열차가 다니던 소래 철교.
 
 

 
과거와 현재를 잇다

 
‘인천대교’에 그 이름을 넘겨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오리지널’이 있다. ‘인천교’다. 1959년 1월 개통해 갯골을 가로질러 미추홀구 도화동과 서구 가좌동을 잇던 다리였다. 서울에서 동인천까지 직선으로 연결되는 길로, 교통량이 늘면서 1971년 확장됐다가 갯골이 메워지면서 1998년 사라졌다. 40년간 이 길 위로, 보따리를 바리바리 싼 촌로와 까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뒤엉켜 달렸다. 다리 아래에선 마을 사람들이 몸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갯벌 밭에서 삶의 희망을 일궜다. 인천교는 현재 송림로 인천교 삼거리에서 방축로까지의 구간을 잇는 일반 도로로 바뀌었다.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옛 다리가 있다. ‘소래 철교’다. 1937년 8월 6일, 수인선 협궤 열차의 첫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칙칙폭폭 흔들흔들 덜컹덜컹…. 인생의 철로 위를 달리던 협궤 열차는 1970년대 교통망이 늘고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외면받기 시작했다. 1973년 7월부터는 수원에서 송도 사이만 운행하다, 1995년 12월 31일 모든 구간이 끊기기에 이른다. 그렇게 우리의 ‘꼬마 기차’는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하지만 1995년까지 협궤 열차가 다니던 ‘소래 철교’는 아직 그대로다. 그 옛날 바닷사람과 염전 인부를 실어 나르던 철교 위를 이제 연인과 가족이 손잡고 거닌다. 바로 그 옆에는 최신형 전동차가 쭉쭉 뻗은 선로 위를 내달린다.
‘원인재 철교’는 소래 철교와 함께 마지막으로 남은 협궤 철교다. 인천도시철도 1호선 원인재역에서 승기천을 가로질러 남동공단으로 이어지는 수인선의 철교 구간으로, 레일은 철거됐지만 교각과 철재 상판은 여전히 건재하다. 풍파를 견디다 못해 끊긴 다리. 고개를 들어 거친 굴곡의 시간을 가늠해 본다.
 

 


전동차가 달리는,
소래 철교 옆 수인선 철도.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잇다
 
다리가 놓이면 섬은 ‘섬’이 아니다. 용유도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무의도는 가깝지만 뱃길로 가야 하는 섬이었다. 하지만 지난 4월 ‘무의대교’가 놓이면서 섬과 섬 사이의 간극이 메워졌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선착장은 텅 비었다. 이제 뱃길이 아닌 다리로 서로의 터전을 자유롭게 오간다.
무의도 큰 섬과 작은 섬 사이에는 또 다른 다리가 있다. 소무의도로 향하는 약 400m의 짧은 길은, 오직 두 발과 두 바퀴에만 발길을 허락한다. 다리에 오르는 순간, 8개 구간 총 2.48km의 무의바다누리길이 열린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차분하게 길을 밟는다. 바람 끝에 짠내가 진하게 묻어난다.
 
‘강화대교’와 ‘초지대교’로 육지와 만나는 강화도는 형제 섬들을 아우르고 있다. 그 가운데 첫째 섬 교동도와 둘째 섬 석모도는 강화 본섬과 다리로 이어져 있다. 섬과 섬 사이, 바다를 가로지르는 길은 새로운 세상을 연다.
본섬에서 불과 1.2km, 강화 치맛자락 뒤로 몸을 숨기고 있는 석모도는 ‘섬 속의 섬’이었다. 하지만 2017년 6월 ‘석모대교’가 놓이면서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전국에서 찾는 관음도량이 있고 온천이 뜨겁게 샘솟는 섬. 배 타고 가던 길을, 이제 차로 씽씽 달린다. 유배의 섬 강화도에서 또 유배된 섬, 교동도. 한반도가 두 동강 나면서, 이 섬 북쪽 해안선은 황해도 연백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갈렸다. 철조망을 두르고 저 멀리 물러나 있던 섬은, 2014년 7월 ‘교동대교’가 놓이면서 가까워졌다. 다리 입구부터 군인들이 출입을 통제해 긴장감이 흐른다. 다리를 건널수록 다가오는 섬. 남북의 거리도 그만큼 가까워지길 바란다.
 
덕적도 본섬 남동쪽에서 불과 600m 떨어진 소야도. 지난해 5월, 연도교가 놓이면서 두 섬은 한 몸이 됐다. 덕적도에서 소야도로 가는 버스를 운행하는 한 운전기사 어르신은 소야도가 고향이다. “이 가까운 길을 오랫동안 참 힘들게도 다녔어. 이제, 한 섬이지 뭐야. 고향 땅이 넓어진 것 같아.” 선착장에서 시동을 건 버스가 굽이굽이 섬 길을 따라 일을 나선다.

육지에서 섬으로, 섬에서 다시 섬으로. 다리는 공간의 마디를 타고 흐른다. 둘러싼 풍경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모습의,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길. 그 위를 지나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역사가 된다. 무심코 스쳐 지났다면, 오늘은 다리가 있는 풍경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교동대교가 놓이고,
철조망을 두르고 물러나 있던
섬이 가까워졌다.
 
 
 

덕적도 본섬과 소야도를 잇는 연도교.
그렇게 섬과 섬은 하나가 됐다.
 
 


섬 속의 섬 석모도.
배 타고 가던 길을, 이제 차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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