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함께한 인천, 어제와 오늘
300만 인천 시민, 우리 모두의 이야기
10월 15일, 인천은 특별한 하루를 맞이한다. ‘인천 시민의 날’이다. 1413년 10월 15일, 조선 태종太宗 13년 인주仁州는 인천仁川이라는 새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그 후, 인천이라는 이름 아래 켜켜이 쌓여온 역사는 오늘 ‘위대한 인천 시대’에 이르렀다.
인천 시민의 날이 60주년을 맞았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억하고 함께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더 밝은 내일을 꿈꾼다. 이 순간 빛나는 300만 인천 시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다시 새롭게 펼쳐진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ㅣ 사진 인천시립박물관·인천시 기록관
1969년부터 인천 시민의 날은 ‘제물포제’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당시 인천 거리에 세워진 축하 기념탑(아래)과 자유공원에서 열린 기념식
1965
6월 1일, 자유공원에서 열린 첫 생일잔치
처음부터 10월 15일은 아니었다. 첫 인천 시민의 날 행사는 1965년 6월 1일, 자유공원에서 시작됐다. 시는 그해 시민의 날을 제정하며 날짜를 ‘유서 깊은 날’인 1883년 1월 1일, 인천항 개항일로 선택했다. 하지만 날씨가 춥고 연말연시의 분주함으로 행사를 진행하기 어려워, <조선사대계朝鮮史大系>에서 실질적인 개항일로 추정한 6월 1일을 시민의 날로 정한다.
첫 생일잔치는 성대하게 열렸다. 이날 처음 선포된 ‘시민의 다짐’은 그 후로도 시민의 날마다 변함없이 낭독되고 있다. 그날 밤,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시민 위안의 밤’으로 축제는 무르익었다. 한 신문은 그날의 무대를 ‘베테랑 가수들의 출연과 우레 같은 박수갈채 속에서 빛난 순간’으로 기록했다.
1960년대, ‘제물포제’는 거대한 축제였다. 시가행진할 때면 거리는 시민들의 환호와 박수로 가득 찼다. 사진은 축하 행렬이 배다리를 통과하는 모습
1968
‘제물포제’와 ‘항도제’, 시민의 날의 또 다른 이름
1968년, 인천 시민의 날은 상공계의 제안으로 ‘항도제港都祭’와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항구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듬해, 두 행사는 하나가 되어 ‘제물포제’라는 이름을 달았다.
그 시절 시민의 날은 도시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숭의동 공설운동장에서 시작된 시가행진은 동인천역을 지나 인천시청까지 이어졌고, 거리마다 몰려든 시민들의 환호와 박수로 가득 찼다. 도시는 축제의 열기 속에 하나가 되어, 마치 거대한 무대처럼 살아 움직였다.
1970년대 말까지 인천 시민의 날은 대축제였다. 거리마다 환호가 가득하고, 축제의 열기로 활기를 띠었다.
사진은 갑문 준공을 기념하여 선박 모형의 카퍼레이드를 하는 대성목재
볼거리 즐길 거리가 귀하던 시절, 시는 지역 행사를 하나로 묶어 축제의 열기를 더했다. 기업들은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시민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겼다.
1974
시민의 날, 항구도시의 축제로 피어나다
1970년대 말까지 인천 시민의 날이 열리면, 도시는 온통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귀하던 시절, 시는 지역 행사를 하나로 묶어 축제의 열기를 더했다. 기업들은 트럭과 버스를 개조해 퍼레이드를 벌이며 시민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겼다.
1974년, 인천항 갑문 준공을 기념해 시민의 날은 5월 10일로 변경되었다. ‘항구 도시로서 인천의 상징성을 확고히 한다’는 의지였다. 이후 동양 최대 규모의 도크식 갑문을 통해 5만 톤 급 대형 선박이 인천항에 드나들며 국가 산업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제25회 인천 시민의 날을 맞아 월미도 문화의 거리를 개장했다.
1981년 7월 1일, 인천직할시로 승격을 기념한 축제 현장. 공설운동장에 시민 3만여 명이 모이고, 거리에서 시가행진을 하며 인천의 도약을 함께 누렸다.
1981
인천직할시 승격, 그 도약의 순간
1981년 7월 1일, 인천은 새로운 역사의 장을 힘껏 열어젖힌다.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로 승격하며 도시 발전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다. 이를 기념해 시는 7월 1일을 시민의 날로 다시 제정했다. 그해, 공설운동장에는 시민 3만여 명이 모여 구청 대항 체육대회, 시민 위안 잔치, 시가행진 등 다채로운 축제를 즐겼다. 그러나 7월 1일은 장마와 폭염이 겹치는 시기로 매년 악천후가 행사를 가로막았다. 해가 갈수록 행사 진행은 난항을 겪었고, 시민들의 관심도 차츰 멀어져 갔다. 결국, 시민의 날을 다른 시기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1994
10월 15일, 인천 시민의 날로
1990년대에 들어서 인천 시민의 날 날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1994년, 시는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인천상륙작전 기념일 9월 15일, 경인선 개통일 9월 18일, 인천항 개항일 2월 27일 그리고 인천이라는 지명이 탄생한 날 10월 15일 중 하나를 뽑도록 했다. 시민들의 선택은 압도적으로 10월 15일이었다. 이날은 1413년, 조선 태종太宗 13년에 인주仁州가 인천仁川이라는 새 이름을 얻으며 역사의 흐름을 바꾼 날이다. 오늘 10월 15일이면, 시민들은 인천이라는 이름이 품은 역사적 의미와 함께 걸어온 시간을 떠올린다.
2015년 10월 15일 인천 시민의 날, 인천의 진산鎭山 문학산 정상이 50년 만에 인천 시민에게 품을 열었다.
2015
문학산, 50년 만에 시민 품으로
2015년 10월 15일, 인천 시민의 날에는 역사가 기억할 특별한 순간이 찾아왔다. 인천의 진산鎭山 문학산 정상이 시민들에게 열린 것이다. 1959년부터 군부대가 주둔하며 오랜 시간 철조망에 가로막혀 있던 문학산은, ‘인천 가치 재창조’ 사업으로 마침내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2,000여 년 전 미추홀을 세운 그 위대한 도전 정신. 문학산 정상에서 바라본 인천의 전경은 시민들의 가슴에 애정과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
2023년 10월 14일, 인천 시민의 날과 내항 일부 구간 개방을 기념해 열린 ‘인천하버페스타’
2023
인천 내항, 140년 만에 시민 품으로
‘인천항, 시민의 품으로’. 지난해 10월 14일, 인천 시민의 날 하루 전날, 인천 내항 1·8부두 일부가 시민에게 품을 열었다. 개항 후 140년 만이다. 1883년 1월 1일, 인천 개항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가 힘차게 역동했다. 오늘 인천 바다는 ‘제물포 르네상스’의 꿈을 안고 다시 깨어났다. ‘인천하버페스타’의 밤, 항구는 빛으로 물들고 시민들의 가슴에는 행복이 가득 차올랐다.
2017년 10월 14일, 인천 시민의 날 기념 ‘시민 대화합 한마당’에서 유정복 인천시장과 시민의 행복한 모습
2024
함께한 60년 함께할 100년
시민이 주인공이 되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미래를 그리는 날이다. 인천 시민의 날 60주년. 60번째 생일을 맞이한 오늘, 10월 1일부터 15일까지 이어지는 시민 행복 주간 동안 시민들은 함께 보고, 듣고, 먹고, 즐기며 축제의 기쁨을 만끽할 것이다.
함께한 60년 그리고 함께할 100년. 이 순간, 300만 인천 시민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희망차다. 새로운 내일을 향한 도전을 다짐하며, 위대한 인천의 여정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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