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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나의 인천, 최정화 소설가

2025-02-15 2025년 2월호

둥근 어깨의 소설가


최정화


어린 시절, 인천의 길 위를 달리던 작은 발걸음이 지금의 자신을 이끌었다고 말하는 소설가 최정화. 육교 위에서 느꼈던 두근거림과 4번 버스를 기다리며 배웠던 인내는 그를 작가의 길로 안내했다. 2012년 단편소설 『팜비치』로 데뷔한 그가 인천에 대한 깊은 애정과 추억을 담아 <굿모닝인천> 독자들에게 따뜻한 편지를 보내왔다.



2012년 등단한 최정화 소설가



삶의 길목에서 배운 이야기들


안녕하세요, <굿모닝인천> 독자 여러분. 저는 소설가 최정화입니다. 제게 인천은 단순한 지역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신기한 건 집이나 학교보다 더 자주 떠오르는 것은 제가 오갔던 길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길은 주안동의 육교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석암초등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지나던 길로, 전철 소리가 무섭고 신비롭게 느껴지던 기억이 납니다. 전철의 꼬리를 밟으면 운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믿고 전속력으로 육교를 달리던 제 모습은 어린 마음에 좋은 운을 간절히 바랐던 마음의 표현이겠죠. 또 다른 기억은 학익동에서 석바위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열두 살 무렵 처음 혼자 버스를 타고 등교를 시작했는데, 늘 만원 버스를 타야 했던 일은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걸 가르쳐준 것 같습니다. 걷고 뛰던 길도 기억에 남지만, 가장 잊히지 않는 건 버스를 기다리던 시간입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등하굣길에 타던 4번 버스는 긴 배차간격으로 저를 기다림의 의미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걸 가르쳐주었습니다. 저는 고3 시절, 수험생 친구들 사이에서 입시와는 거리를 두고 소설책에 몰두하곤 했습니다. 그 시절 저를 가장 매혹시킨 책은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습니다. 그 소설은 제가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죠. 제 가족과 친구들은 안전하고 행복했지만, 소설 속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제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난장이가 사는 은강이라는 도시를 만났습니다.


어린 시절의 최정화 작가와 그의 어머니


소설을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변한 뒤, 은강이 바로 인천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재개발구역 난장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그곳의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캣맘이 되었죠. 낮에는 소설을 쓰고, 밤에는 고양이 사료와 간식을 챙겨 골목으로 갑니다. 고양이들이 편히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소설 속 난장이 가족이 고양이들로 다시 나타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난장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난장이들에게 밥과 물을 주고, 집을 마련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이 참으로 기쁩니다.



소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 부분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비밀스러운 창문 같다고 생각합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던 고등학교 시절, 어쩌면 제가 성인이 되어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을 돌보게 될 것을 예감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지금은 서울에 살지만, 명절이면 부모님이 살고 계신 초등학교 시절의 아파트를 방문하며 그 시절의 기억을 여전히 손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고향인 인천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서 외롭다기 보다, 성인기와 별개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낸 인천이라는 공간에 가끔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과거로 돌아가는 멋진 여행처럼 다가와 신비스럽게 느껴집니다. 얼마 전에는 모교에서 은사님들을 만났어요. 세계사 선생님은 교감 선생님이 되셨고, 담임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이 되셔서 저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제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빌려 읽었던 도서관에서 저는 다시 그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소설가는 이 세상 난장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소설을 쓴 지 13년이 지난 지금의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난장이의 말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키가 크면 곤란하다고도 생각합니다. 난장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몸을 웅크리고 몸을 낮추어야 한다고요. 최대한 작고 동그랗게 몸을 웅크린 채 난장이들의 세상을 보고 듣는 일이야말로, 소설가의 할 일입니다. 소설가 대부분이 등이 굽고 어깨가 휜 이유는 바로 난장이의 말을 하기 위해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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