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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인천으로 : 손길로 닿는 마음
손을 보면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보인다.
마디마다 박힌 옹이와 깊게 팬 주름에서 묵묵히 살아온 시간이 전해진다.
손은 마음이자, 사람이며, 삶의 흔적을 품은 인생이다.
여기, 손끝으로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손이 전하는 이야기가 깊고 따뜻한 숨결로 가슴에 스며든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임학현 포토디렉터
어떤 사람을 기억할 때면, 손이 먼저 떠오른다. 힘 있게 나를 이끌어 주던 손, 마디마다 삶의 굴곡을 새긴 거칠고 투박한 손, 고단한 날들을 감싸주던 다정한 손. 그 손에 한 사람의 숨결과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손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토록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손은 말보다 먼저 마음에 닿는다. 기쁠 때는 맞잡은 손으로 따스함을 나누고, 슬플 때는 지친 어깨를 포근히 어루만진다. 얼굴로는 감출 수 있는 감정도 손끝에서는 숨길 수 없다. 그 진심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도 온기로 남아 오래도록 마음에 머문다.
어쩌면 삶은 손끝에서 피어난다. 떨리는 손으로 첫 편지를 쓰던 순간도, 헤어짐을 견디며 마지막으로 손을 맞잡던 순간도 그러했다. 우리는 손으로 위로 하고, 사랑하며, 서로를 지탱해 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손길이 닿는 순간,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진심이 전해진다.
여기, 아름다운 손으로 삶을 엮어가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실과 바늘을 정성스레 움직이며 한 땀 한 땀 뜨개질을 한다. 그 작은 손길이 모여 어느 추운 밤,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을 감싸주리라. 또 다른 사람은 소리 대신 수어로 마음을 전한다. 손짓 하나하나가 삶의 언어가 되어 서로의 마음을 따스하게 이어준다.
손과 손이 맞닿던 순간의 온기를 기억하는가? 말없이도 깊고 선명하게 전해지던 그 떨림을.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손끝에서 따스한 숨결이 피어오르고 있다. 잊고 있던 온기에 새 숨을 불어넣으며.
수어와 뜨개질로 삶을 아름답게 엮어가는
강현미(좌) 씨와 김미숙 씨
한 땀 한 땀 새기는
위로의 숨결
강현미 뜨개봉사자
한 올 한 올 실을 엮으며, 손끝에 담긴 온기로 마음을 전하는 강현미 씨.
한겨울, 희미하게 눈발이 흩날리던 날. 강현미 씨는 조심스레 털실 뭉치를 꺼냈다. 찬 공기가 손끝을 스칠 새도 없이 바늘을 빠르게 움직였다. 폭신한 실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며 또 하나의 담요가 모습을 갖춰갔다. 그는 차가운 방에서 떨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렸다. 실 한 올 한 올에 온기를 담으며.
“처음엔 쉽지 않았어요. 바늘이 자꾸 미끄러지고, 담요 하나 완성하는 데도 열두 시간이 넘게 걸렸죠.” 그가 실의 매듭을 풀며 미소 지었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추위에 떠는 어르신들이 눈에 밟혀 시작한 일이 어느덧 삶의 일부가 되었다. “목도리를 할 때마다 생각이 나.”, “이 담요 덕분에 올겨울은 덜 춥겠어.” 어르신들은 그가 짠 담요와 목도리를 두 손에 꼭 쥐며 말하곤 했다.
그의 작은 손길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요즘 그는 밝은색의 실을 자주 고른다. “따뜻한 색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사람들의 마음에도 밝은 빛이 전해지면 좋겠어요.”
늦은 밤, 마지막 매듭을 짓고 그는 담요를 고이 접었다. 내일이면 이 담요가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을 감싸 안을 것이다. 실 한 가닥에 깃든 작은 온기가 차가운 계절에 따뜻한 숨결로 남기를 바라며, 그의 손은 또 다른 실타래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삶을 잇는 손,
마음을 전하는 목소리
김미숙 수어통역사
손끝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언어. 김미숙 씨의 손짓이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온다.
“평생을 함께하겠습니다.”
사랑의 서약이 손끝에서 전해지는 순간, 식장은 숨결마저 머뭇거리듯 고요해졌다. 수어 통역사의 손이 선율처럼 부드럽게 물결쳤다. 신랑은 잔잔히 미소 짓고, 신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말없이 전해진 서약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수어 통역사 김미숙. 그날 이후로도 그의 손은 부부의 삶 가까이에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에도,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던 날에도,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곁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그는 손끝에서 피어나는 진심의 힘을 믿는다. “수어 통역은 단순히 말을 전하는 일이 아니에요. 손짓 하나, 표정 하나에 마음이 깃들어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울림을 담고 있었다.
30년 전, 찬양이 흐르던 어느 날, 처음 수어를 마주했다. 연단 위에서 누군가가 손짓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손끝이 공기를 가르며 빛처럼 퍼져나갔다. 섬세하게 이어지는 손짓은 보이지 않는 언어로 선율을 그려냈다. 숨죽인 채 바라보던 순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는 손짓이 목소리라는 것을. 소리 없는 세상에도 음악이 피어난다는 것을.
사람들과 마주칠 때면 그는 묻곤 한다. “수어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어떻게 표현할까요?” 장애를 넘어, 마음과 마음을 잇는 가장 따뜻한 언어를 전하고 싶어서다. 오늘도 그는 묵묵히 손을 움직인다. 그 작고 아름다운 손짓이 사람들의 가슴에 닿아, 삶을 잇는 작은 다리가 되기를 바라며.
‘만나다’의 손짓. 마음과 마음이 닿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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