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내가 사랑하는 인천-연출가 박은희
마지막 장면의 힘
글 박은희 연출가·교육연극 전문가
나는 오랜 세월 연극인으로 살고 있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릴 때에는 연극보다 영화 구경 다닌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영화를 좋아하신 아버지의 취향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어느 날 재밌는 영화가 있다며 동방극장에 우리 형제들만 들여보낸 적이 있었다. ‘태양이 닿지 않는 세계’란 영화였는데 태양이 닿지 않는 신기한 바닷속 구경을 하고 돌아온 우리에게 몇 가지 기억할 만한 장면에 대해 피드백을 하며 즐거워하시곤 했다.
금곡동 창영초등학교 뒤 할머니와 고모들이 사시던 기와집과 내가 다닌 신흥초등학교, 엄마 따라 자주 가던 신포시장, 그림 그린다고 지구크레파스와 화판을 들고 곧잘 가던 자유공원, 그리고 답동로터리 주변 극장들, 모두 꽤 괜찮은 나의 구역이었다. 특히 애관극장은 그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애관극장에서 본 영화 중에 허장강과 도금봉이 심 봉사와 심청이로 나온 영화는 아직도 기억난다. 요즘도 어쩌다 애관극장 말이 나오면 그 얘기부터 시작한다. ‘애관극장 심청이가 바다에 빠졌을 때 어떻게 가라앉았냐 하면 말이야….’
그런 어린 시절의 영화에 대한 추억으로 대학 전공을 연극영화과로 정했다.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첫해 스승님은 연출을 전공하겠다는 나를 극단 ‘고향’ 연출부로 이끌어주셨다. 그해, 1974년 극단 ‘고향’의 가을 작품, 번역극인 ‘늦가을의 황혼’의 조연출을 맡아 애관극장 근처 ‘카페 떼아트르 깐느’(용동 239번지)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카페 떼아트르 깐느는 인천 최초의 유럽형 살롱 소극장으로 서울 명동의 대연각호텔 옆에 있던 ‘카페 떼아트르 자유’를 모델 삼아 만든 소극장이었다. 그해 여름에 극단 ‘고향’이 개관 공연을 했고, 가을에 다시 공연하러 온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내 고향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대학 졸업 후인 1977년 나는 연출가가 되었고, 뉴욕대 대학원에서 ‘교육연극’을 공부한 뒤 1992년 돌아왔다. 이후 중앙국립극장을 오르내리며 연극과 오페라 연출, 그리고 대극장 기획공연 연출, 창극단 교육 등을 맡던 나는 1999년 문득 고향 인천이 그리워졌고 인천시립극단 감독으로 귀향하게 됐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인천시립극단 감독으로 열심히 일했고 지역에 교육연극의 씨를 뿌리며 지금까지 왔다. 지금도 용동 239번지를 지날 때면 기원으로 변신한 카페 떼아트르 깐느 소극장 터를 꼭 한 번 바라본다. 때때로 예술계 원로를 만나면 ‘혹시 예전에, 1974년에 개관한 카페 떼아트르 깐느를 아세요?’ 묻곤 한다. 어느 날 우연히 그 깐느를 기억하는 분을 만났다. ‘거기서 연극 봤어. 참 재미있었어.’ 제목은 생각이 안 난다고 했는데 스토리를 기억나는 대로 이어가는 내용을 들으니 내가 조연출했던 ‘늦가을의 황혼’이었다. 정말 감개무량하고 반가웠다. ‘마지막 장면이 아주 임팩트했어. 배우가 창문으로 떨어져 죽는데, 무대 바닥 세트를 객석 통로로 이어지게 해놓고, 창으로 떨어지는 배우가 몸은 통로로 이동하면서 긴 비명의 강도를 차츰 줄여가며 소리가 멀어지게 표현해 창밖 멀리 아래로 떨어지는 효과를 냈거든. 그리고 그 끝에 붉은 색깔 있는 조명을 써서 죽음을 암시한 것이 매우 임팩트했어. 그 연기자가 아주 잘했어. 그래서 나도 연기자가 되려고, 연세대 재학 중에 연극과 시험 보러 갔는데 차범석 심사위원께서 다니던 학교를 마저 졸업하고 다시 연극과 시험 보러 오라고 조언해주시는 바람에 그냥 전공으로 돌아오게 된 거야.’ 시인 김윤식 선생님의 고백이다.
50년 전에 보신 연극 스토리를 기억하고, 특히 인생 진로에까지 영향을 준 인상 깊었던 마지막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걸 보면 마지막 장면의 힘을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20여 년 전 귀향을 결정할 때부터 고향 인천에 가서 살다가 인천에다 뼈를 묻을 것이라고 말해 왔는데, 지난 20여 년간 한결같은 맘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지만… 카페 떼아트르 깐느도, 동방극장도 사라진 지 오래다.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야 할 텐데…. ‘퍽’의 멋진 슬라이딩 퇴장처럼 내 인생의 마지막 장면을 위해 연출 플랜을 세워야 할 때가 도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박은희는 1953년 인천 출생으로 인천을 너무 사랑해 중앙 무대를 뿌리치고 인천에 정착했다. 연출가이자 교육연극 전문가로 1974년 이래 연극, 오페라, 무용극, 국악 무대 등 100여 편을 연출했다. 현재 연극 강의를 하고 있다.
사촌들이 춘추 한복 입고 사진 찍으러 가는 걸 보고 급히 겨울 한복 꺼내 입고 장남감 손목시계 차고 쫓아가서 남매 사이 중앙에 자리 잡고 찍었다.
초등학교 시절
‘동지섣달 꽃본 듯이’ 공연을 마치고
- 첨부파일
-
- 다음글
- 인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