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생활

인천의 맛 - 염생식물

2020-12-02 2020년 12월호

소금 땅에 노을 지다
염생식물


인천만의 ‘그 맛’이 있다. 지역 음식에는 고유한 환경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 인천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바다와 갯벌에서 펄떡이고 있을 먹거리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그 열다섯 번째는 척박한 소금 땅을 비집고 피어난 생명, 염생식물鹽生植物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임학현 포토디렉터


칠면초


석모도,

붉은 바닷가
˙ 늦가을 깊어가는 게, 석양만은 아니다. 바람이 소슬하게 불면 염생식물이 잿빛 바닷가에 붉은 주단을 편다. 기온이 더 떨어지면 그 빛은 암갈색 그늘에 잠긴다.


석모도 매음리 바닷가, 붉게 물든 갯벌이 아득히 펼쳐진다. 시시각각 빛을 달리하던 햇살이 노을 지면,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이 일대는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 석모 수로를 중심으로 저위 습지가 발달했다. 땅과 바다의 생태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그 안엔, 칠면초七面草 군락이 건강한 숨결을 내뱉고 있다.
염생식물 군락지는 마음을 빼앗길 만한 풍경이지만, 경관적인 측면보다 생태적으로 그 가치가 높다. “염생식물은 게와 갯지렁이 등 바다생물의 좋은 서식처로, 새와 물고기들이 먹이를 찾아 습지로 찾아들게 합니다. 또 푸른 탄소Blue carbon로 온실가스를 줄여 기후 변화를 막고 오염된 환경을 정화하지요.”


김순래(63) 강화시민연대 생태보존위원장은 20여 년 전 청소년 환경 동아리를 이끌면서 해양생태계에 처음 눈떴다. 강화중학교 교사였던 그는, 지난해 교편을 내려놓고 본격적인 환경활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강화도 갯벌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의 보고입니다. 그 가치가 널리 알려져 남단 갯벌이 하루빨리 습지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길 바랍니다.” 그 의미 있는 움직임은 20여 년 전 이미 시작됐다. 머지않아 귀한 결실을 이루리라, 그는 믿는다.



석모도 매음리 칠면초 군락지



김순래 강화시민연대 생태보존위원장


늦가을 깊어가는 게, 석양만은 아니다.
바람이 소슬하게 불면 염생식물이 잿빛 바닷가에 붉은 주단을 편다.
기온이 더 떨어지면 그 빛은 암갈색 그늘에 잠긴다.


섬 밥상 위,

바다의 약초
˙ 인천은 섬 곳곳과 폐염전 등에 염생식물이 자란다. 강화군에는 석모도 매음리와 남단의 여차리, 동막해변 일대에서 군락을 이룬다. 철조망에 가로막힌 북쪽 해안에서도 찬 바람 맞으며 용케 살아가고 있다.
강화 갯벌이 품은 염생식물은 30여 가지에 이른다. 칠면초는 싹을 틔워 꽃을 피울 때까지 일곱 빛깔로 변하는데, 가을에 빛이 가장 곱다. 퉁퉁마디는 식물의 마디마디가 제 이름처럼 퉁퉁하니 모양새가 귀엽다. 바다의 자양분을 한껏 빨아들여 ‘짠맛 나는 풀’ 함초鹹草라고도 불린다. 잎을 떼다 베어 물면 짭조름한 바다 향이 입안 가득 번진다.


이들 염생식물은 천연 미네랄을 가득 품은 ‘바다의 약초’다.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 고대 의학서에는 다양한 염생식물을 약으로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찍이 섬에서는 이른 봄, 나물이 나기 전에 갯벌에서 나문재, 칠면초, 해홍나물의 어린순을 따다 밥에 얹어 먹거나 무쳐 반찬으로 먹었다. 지금도 봄이면, 섬사람들은 소금기 어린 풀을 밥상 위에 올린다.



막바지 수확이 한창인, 강화 함초 농장


갯벌 단풍,

노을 지다

˙ 처음 이 바닷가를 찾았다면, 두 눈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강화도 남단 여차리, 붉고 노란 물결이 금방이라도 품으로 달려들 것만 같다. 33만578m2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함초 농장이다. 함초 씨앗은 농장의 정명식(67) 대표가 석모도 삼양염전 터에서 옮겨와 심었다.
“강화도 남단은 일조량이 풍부하고 비가 적절히 내려 함초가 자라기 적당합니다. 자연환경도 저어새가 날아들 정도로 맑고 깨끗하지요.” 폐염전에서 가져온 함초 씨앗을 뿌리니, 이듬해부터 절로 자라주었다. 하지만 농사는 하늘의 뜻이다. 2년 전엔 가물어서 함초가 모조리 죽어버렸다. 그 마음을 헤아리듯 다음 해에는 반이 돋아나고, 올해는 풍년으로 함초를 30여 t이나 거둬들였다. 하지만 그만큼 단가가 내려가 재미를 보진 못했다.
“땅을 내놨어요. 이제 농사는 못 지을 것 같아요. 힘이 들어. 시골 사람이 땅을 품어야 하는 건데….” 도시 한복판에서 강화 남쪽 바닷가로 와 쌀농사를 짓고 새우를 키우다 함초 농사까지 손을 댔다. 한땐 함초가 건강식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농사짓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했다. 다 지난 일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예감하듯, 그가 말끝을 흐린다.



농장을 찾은 때는 11월 초순, 함초 농사 추수가 막바지다. 며칠 사이 바람에 흐트러진 함초를 농사꾼들이 그러모으면, 트랙터가 지나가며 네모반듯하게 묶어서 쌓아 올린다. 이렇게 정성스레 거둬들인 건초는 서울 제기동 약재시장과 함초로 유명한 전남 신안으로 팔려 나간다.
“나문재, 해홍나물의 어린잎을 따다 나물로 먹으면 짭짤하니 얼마나 맛있는데. 사람들이 잘 몰라. 그런데 한번 맛보면, 홀딱 반해 절대 못 잊어요.” 신명순(62) 씨는 함초 농장을 연 처음부터 지금까지 밭을 일구고 있다. 도심에서 살던 그는 한때 지독한 천식을 앓았다. 누군가 바닷가로 가서 살아보라고 했다. 만석부두로 가서 무조건 배에 올랐다. 그렇게 바다 건너 이 섬 저 섬을 누비다 함초를 알게 됐다. 거짓말처럼 숨이 트이고 몸에 생기가 돌았다.
“나 일당쟁이야. 이러다 혼쭐나. 이야기 다했으면 이제 일하러 갈게요.” 멀어지는 농장 인부의 뒷모습에 쇠잔해 가는 저녁 햇살이 어린다. 다음 해 붉게 일렁이는 함초 밭에서 그를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검기운 세상 속 육지로 가는 다리를 건넌다.


● 강화저어새함초 강화군 화도면 여차리 168-1



가을 함초



첨부파일
이전글
인천의 맛 -함초 요리
다음글
다음글이 없습니다.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2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