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인천 문화재 이야기 ⑧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언덕 위, 종교와 인술仁術의 하모니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2021년 7월 인천내동교회
중구 ‘신포문화의 거리’에서 내동 방면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옥탑방 같은 지붕 꼭대기에 십자가를 인 아담한 교회 건물을 만난다. 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인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1호, 중구 개항로45번길 21-32)는 중세 유럽의 풍광을 연상시키는 로마네스크 석조 건물이다.
활짝 열린 문을 통과하면 왼편 화단 위로 두 개의 흉상이 이방인을 맞는다. 하나는 고요한(영국 해군 종군 신부 Charles John Corfe의 한국 이름) 주교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성공회 인천지역 최초의 선교사 랜디스(Eli Barr Landis)이다. 그 옆으로 英國病院(영국병원)이라 새긴 돌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186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나 1888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랜디스는 고요한 주교와 함께 1890년 제물포 땅을 밟는다. 랜디스는 이듬 해 10월 인천 최초의 서구식 병원인 ‘영국병원’을 교회 안에 세운다. 중세 유럽풍의 인천내동교회를 건축하면서 10명이 동시에 입원할 수 있는 ‘성누가병원’을 함께 지었던 것이다. 열정 넘치는 선교사이자 실력 있는 젊은 의사였던 랜디스는 영국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성심껏 치료해 준다. 조선인들이 랜디스를 ‘치료를 잘해주는 큰 사람’이란 의미의 ‘약대인藥大人’이라 부를 정도였다.
그러나 랜디스가 33세 되던 해 장티푸스에 걸려 눈을 감으며 병원은 문을 닫는다. 진료를 재개한 때는 6년만인 1904년 영국인 의사 위어Weir 박사가 부임하면서부터다. 러일전쟁 당시엔 부상을 당한 러시아 선원들이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16년 다시 셔터가 내려졌고 이후 성공회 신학원으로 운영되다 1956년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교회 건물이다.
교회 건물 측면은 붉은 벽돌로 쌓아올렸는데 벽의 중간 부분이 십자가 모양으로 뚫려 있다. 빛의 효과를 보기 위한 건축 기법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겉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공간이 크고 웅장하다. 이 교회에선 사제들이 머무는 사제관과 예수 그리스도의 동상, 여러 그루의 아름드리나무도 만날 수 있다.
랜디스는 1898년 4월 16일 운명할 당시 송학동 외국인 묘지에 묻혔으나 이후 청학동 외국인 묘지로 이장된다. 그러나 청학동이 재개발되면서 랜디스의 묘는 다른 외국인 묘 65기와 함께 인천가족공원으로 이장됐는데 이 과정에서 ‘랜디스의 십자가’가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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