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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기다림의 미덕 강화사자발약쑥

2020-06-02 2020년 6월호

기다림의 미덕 강화사자발약쑥

인천만의 ‘그 맛’이 있다. 지역 음식에는 고유한 환경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끝낼 일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인천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바다와 갯벌에서 펄떡이고 있을 먹거리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그 열 번째는 천년 바람 맞으며 깊어지는 맛, 강화사자발약쑥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강화사자발약쑥’. 이름 그대로 잎 모양이 사자의 발을 닮았다.


흙 내음 솔솔, 기운이 ‘쑥쑥

수더분한 땅 빛 좇아 강화로 간다. 이맘때면 강화는 쑥 향기로 그윽하다. 마니산 자락에 있는 화도면의 쑥 재배 농가. 지천으로 ‘쑥쑥’ 자라난 쑥을 뜯어내느라 어르신 일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마니산을 이고 평생을 밭에서 보내온 농사꾼들이 아니던가. 그들 손길이 지날 때마다 커다란 바구니가 수북이 채워진다. 음력 5월 5일 단오는 양기가 가장 성한 날이다. 이즘 수확하는 쑥은 햇볕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있어 약효가 뛰어나다.


“바닷바람도 쐬고 쑥 냄새도 맞고 얼마나 좋아. 하나도 힘들지 않아.” 정해윤(83) 할머니는 아침 7시 반에 일찌감치 집을 나서 농장으로 왔다. 하루의 수고로움이 밥이 되는 삶이지만, 나이 든 몸 여태 정직하게 부릴 수 있어 고맙다. “강화 쑥이 대한민국 최고야. 땅이 워낙 좋으니까.” 정해연(80) 할머니는 서울에서 살다 2년 전에 강화로 돌아왔다. 열네 살 나이에 도시로 나가 노인이 되어 돌아온 자신을, 고향은 어머니처럼 품어주었다.


강화약쑥은 마니산 자락 바닷가를 중심으로 오랜 세월 자생해 왔다. 하늘과 땅, 성聖과 속俗, 지구와 우주의 접경.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 참성단이 있는 마니산. 태초의 임금 단군은 그 산자락에 귀한 약초를 내려주었다. 강화약쑥은 박하 향이 나며 잎 모양이 사자의 발을 닮아 ‘사자발약쑥’이라 불린다. 예부터 전해지는 강화 최고의 특산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자족애獅子足艾’로 기록되어 있고, 전등사 경내에 약애고藥艾庫를 세워 임금에게 진상했다고도 전해진다. 오늘 강화도에서는 50여 가구가 쑥을 재배하고 있다. 천년 바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강인한 생명력으로 바닷가 짠 기운을 딛고 피고 지고 또다시 핀다.


쑥은 생명력이 강해서 잘 자라지만, 농사에는 노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연은 더 깊고 오묘한 맛을 주고, 귀한 결실을 허락한다.



강화군 화도면 ‘마리농장’. ‘강화사자발약쑥’ 종자를 보존하며 재배하는 밭.


흔하지만 귀한 풀

쑥은 지천으로 널린 흔한 풀이지만, 귀하다. ‘밥’과 ‘약’이 되는 쓰임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흙에서 자라는 온갖 풀들 중에서도 오랜 세월 밥상 한편을 지키고 있는 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경험의 역사에 의해서다. 


정해표(62) ‘마리농장’ 대표는 20여 년 전 고향 강화도로 와 두 번째 인생을 뿌리내렸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고향 땅에 쑥과 고구마, 배 등 여러 작물을 키웠는데, 중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한 그는 약쑥의 가치에 주목했다. 땅을 일구어 약쑥 밭으로 만들고, 강화약쑥연구회 회장을 맡으며 약쑥 종자 보호와 연구에 매달렸다.


그만큼 확신이 있었다. ‘7년 된 병을 3년 묵은 쑥을 먹고 고친다’는 옛말이 있다. <동의보감>에는 쑥이 ‘따듯한 성질로 위장과 간장, 신장의 기능을 강화해 백 가지 병을 고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약성에 있어서는 강화약쑥을 따라올 쑥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 ‘체온을 1도 올리면 질병 50가지를 줄일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쑥은 몸을 따듯하게 합니다. 특히 강화약쑥은 다른 지역에서 나는 쑥에 비해 유파틸린Eupatilin과 자세오시딘Jaceosidin 같은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많아 몸의 중심인 위장과 비장을 보하고 다스리지요.”


쑥은 생명력이 강해서 어디서든 잘 자라지만, 농사에는 노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쑥 농사는 풀과의 싸움이다. 잡풀이 무성히 자라 ‘쑥대밭’이 되면 그 해 농사는 망친다. 마리농장에서는 약과 비료를 쓰지 않고 왕겨를 튀겨서 밭에 깔아두고 쑥을 기르는 친환경적인 농법을 쓴다. 순수한 강화사자발약쑥을 지켜내기 위해 종자를 보존하고 밭도 따로 일군다. 얼마나 정성을 지극히 들이느냐에 따라, 자연은 더 깊고 오묘한 맛을 주고, 귀한 결실을 허락한다.



이른 봄에 나는 애쑥으로 빚은 쑥개떡과 6월 무렵 쑥 잎을 말려 만든 쑥차.
입안에 쑥 향이 솔솔, 기운이 ‘쑥쑥’ 난다.


참 귀한 쑥이다. 그 안엔 마니산을 이고 평생을 밭에서 허리 굽혔을 우리 어머니들의 노고가 깃들어 있다.


기다림 끝, 약이 되는 밥상

쑥은 오래될수록 그 가치가 무르익는다. 수확 후 3년 이상의 숙성 기간을 거쳐야, 특유의 향이 깊어지고, 쓴맛은 적어지며, 약효가 좋아진다. 땀 흘린 만큼 거둔다는 믿음으로,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 밭에서 뜯어낸 쑥은 작업실로 옮겨 깨끗이 씻은 후 가공에 들어간다. 농장 한편에 있는 저장고에는 생산된 연도별로 숙성 중인 건조 쑥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아들 정은식(35) 씨가 아버지의 손길을 이어받아 시간과 정성을 입히고 있다.


일찌감치 도시로 나가 살면서, 세차장 일이며 빈대떡 장사를 하며 스스로 일어서려고 무던히 애쓰던 그였다. 처음엔 함께 쑥 농사를 짓자던 아버지의 뜻을 한사코 마다했다. 하지만 어느 날 눈에 들어온 아버지의 작아진 뒷모습이, 그를 고향 땅에 머무르게 했다.
처음엔 농사일이 어렵고, 도시 생활과의 간극을 메우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서툴게 흙을 만지던 손으로 어느덧 식품을 개발하고 판로 개척까지 나서게 됐다. 약쑥을 가공해 만든 진액, 조청, 쑥 개떡과 송편 등 ‘약이 되는 음식’이 귀한 땀이 스민 그의 손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른다.


쑥은 여느 풀들과 달리 긴 서사를 품고 있다. 아득히 먼 옛날부터 주린 배와 허기진 마음을 채우는 ‘밥’이자 몸을 다스리는 ‘약’이 되었다. 우리 어머니들이 쪼그려 앉아 호미질하던 자리엔 지금도 싹이 돋는다. 그 자연의 산물은 봄이면 돋아나 자라고 흙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이, 사람의 손길을 거치며 잠시 순환을 늦춘다. 그렇게 기다림과 느림의 미덕을, 밥상 위 자연에게서 배운다.



가공 전 쑥을 세척하는 정해표 대표.



저장고에서 숙성 중인 쑥을 보여주는 아들 정은식 씨.
강화사자발약쑥에는 생산 연도와 생산지를 적은 ‘증명 띠’가 둘러져 있다.


마리농장 
www.mariwon.co.kr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로 750-21 
Ⓣ 032-215-2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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