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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소소한 인천사-인천 지명

2021-06-01 2021년 6월호


호랑이의 입을 닮은 ‘호구포’

남동구 논현동 서남쪽에 있는 호구포虎口浦는 이름 그대로 ‘호랑이의 입처럼 생긴 포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은 많이 쓰이지 않지만 ‘범 아가리’가 바로 호구포의 순우리말이다. 예전에 호구포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포구였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소래 오봉산 기슭에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으르렁거리는 모양의 검고 큰 바위가 있어 호구암이라 불렀고, 이 때문에 호구포라는 이름도 생겼다고 한다. 호구암은 바다 건너 대부도를 향해 있어 대부도에서는 개를 키우면 바로 죽어버렸다는데, 실제 그 지형으로 보아서는 타당성이 없고 그저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엇비슷한 다른 전설도 있다. 호구암 맞은편 경기도 안산의 산기슭에 옛날 어떤 세도가들 집안의 산소가 여럿 있었는데, 그들 집안의 자손들은 제대로 대를 잇지 못했다고 한다. 집안사람들은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하고 답답해 하기만 했는데, 한 풍수쟁이가 산소 건너편 호구암이 입을 크게 벌리고 산소를 삼키려는 모양이라 그렇다고 말했다. 이에 그 집안사람들이 호구암의 입 부분을 도끼로 찍어 없앴더니 그 뒤로 자손이 번성했다는 이야기인데, 지금은 호구암이라는 바위가 진짜 있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결국 이는 모두 전설일 뿐일 테고, 실제로는 이곳의 지형이 바다 쪽에서 안으로 파고 들어와 호랑이의 입처럼 생긴 데에서 동네 이름이 유래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이 매립되기 전인 1918년 일제가 발행한 지도를 보면 호구포 일대의 모양이 실제 호랑이의 입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1920년대에 버려진 개펄을 이용해 남동염전이 만들어지면서 호구포는 원래의 모양을 잃어버렸고, 그나마 지금은 남동공단이 들어서 더욱 모양이 바뀌고 말았다.


인천 소사

1944.06.26 우현 고유섭 선생 별세
1944년 6월 26일, 대한민국 미술사의 큰 별이 졌다. 우현 고유섭은 우리 미술을 처음으로

 학문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미술학자다. 그는 1905년 중구 용동에서 태어났다. 국내 최초로 대학에서 미학·미술사를 전공했으며, 체계적인 연구로 우리 미술사와 미학을 근대적인 방법론으로 학문화한 선구적인 학자였다. 1930년 이후 중요한 고대 미술품들을 조사·연구하는 데 힘썼으며, 1933년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해 10여 년간 우리 미술사 여러 분야 연구에 주력했다. 그의 목표는 근대적인 미술사 방법론에 의거한 <조선미술사> 집필이었으며, 이를 위해 건축·회화·조각·공예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글을 남겼다.


그때, 6월의 인천은…
 
1911. 06. 01 인천 축항 기공
1920. 06. 01 인천한용단仁川漢勇團 창단
1953. 06. 09 충혼탑 제막
1974. 06. 26 우현 고유섭 기념비 제막
1978. 06. 01 중화루(전 대불호텔) 철거
1993. 06. 02 새얼문화재단, 제1회 국악의 밤 개최
2005. 06. 16 인천대교 착공
2008. 06. 13 한국이민사박물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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