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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⑬ 인천박문초등학교

2021-06-01 2021년 6월호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세상 모든 학교는 귀하다. 허나 그 속에서도 특별한 전통과 저력을 품은 곳이 있다. 학교를 통해 도시를 들여다보는 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그 열세 번째 등굣길의 목적지는 인천박문초등학교(이하 박문초)다. 사랑은 대물림된다고 했던가. 학창 시절 학교에서 받은 사랑을 자녀들과 나누고 싶었던 엄마와 그 사랑을 더 큰 세상에 뿌리내리게 될 아이들. ‘박문’이라는 공통분모로 같은 추억을 써 내려가고 있는 그 길을 두 딸아이의 학부모이자 선배인 박수진(67회 졸업) 씨와 함께 걸었다.

글 전규화 자유기고가│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


3대로 이어진 박문에 대한 굳건한 믿음

1986년, 박수진(43) 씨는 박문초에 입학했다. 박문여중(현 박문중학교)과 박문여고를 나온 어머니의 뜻이었다. 어머니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박문’이라는 이름 아래 이어지는 학풍만은 변치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자식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을까요? 6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면서, 또 세상을 살아가면서 왜 어머니가 저를 박문초에 보냈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 믿음과 확신은 제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졌죠.”
5학년 김단아, 3학년 김로아. 어여쁜 두 딸아이도 그렇게 엄마의 후배가 됐다. 물론 쌓인 추억과 쌓아가고 있는 추억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박씨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박문초는 중구에 자리한 답동성당이 품고 있었다. 1900년 9월 1일 개교한 유서 깊은 교사校舍였다. 학교 뒷마당에 있던 사육장에서 토끼와 칠면조를 키웠던 일,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뛰놀던 작은 연못 주변에 얽힌 추억은 오롯이 엄마만의 것이다. 하지만 개교 100주년을 넘어 새로운 100년의 시작을 알렸던 2001년 현재의 연수구 동춘동으로 자리를 옮긴 학교에서도 박문초의 전통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선생님이 권위적이었을 때예요. 박문초는 달랐어요. 선생님들이 부모님 같고 친구 같았거든요. 선생님들과 같이 고무줄놀이하고 땅따먹기도 했었죠. 그때의 좋았던 기억, 따뜻했던 추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사립초등학교라는 조금은 딱딱한 이름 이면에 자리한 인간애적인 전통과 사랑. 어쩌면 이것이 120년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도 모든 동문이 같은 마음을 갖게 하는 박문초의 가장 큰 경쟁력일지 모른다.




연수구 동춘동에 자리한 인천박문초등학교. 중구 답동성당 내 자리했다가 2001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20년을 이어온 공감의 역사

박문초등학교는 올해 개교 121주년을 맞았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학교의 120년 역사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고, 박수진 씨도 힘을 보탰다.
“아이들을 타임머신에 태워 학교의 과거를 여행했죠. ‘라떼는 말이야’라는 주제로 제가 학교에 다니던 당시의 추억을 후배들과 공유했어요. 그 과정에서 새삼 깨닫게 된 건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을 위한 교육 인프라와 활동이었어요.”
과학부와 컴퓨터부, 영어회화부 등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이들은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경험들이 박문초에서는 가능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진로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자 하는 학교의 한발 빠른 움직임이었다.
오늘날의 박문초는 더욱 업그레이드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우주과학실과 생명과학실, 미래교실, AI(인공지능)융합교실 등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기 위한 첨단 교실은 물론이고, 새앎터와 배움누리, 신난마루, 미술실과 음악실 등 감성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특성화 교실도 다채롭다.
“시대는 달라도 아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때마다 ‘동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해요. ‘한우리 모임’이라고 1~6학년 학생 한 명씩을 형제·자매로 엮어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더라고요. 요즘처럼 자녀가 한두 명인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형제간 우애와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박문초만의 귀한 전통이죠.”



교내 곳곳에 120년 유구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오래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문초는 미래교실과 AI융합교실 등 학생들의 다양한 체험과 활동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사랑과 감사로 이어가는 새로운 미래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 학교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예상하며 학생들을 교육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박문초가 지향하는 바는 선명하다. 박원희 교장 수녀는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예측하기보다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리더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얼마나 큰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 박문초 교육의 핵심입니다. 이를 통해 문화인으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미래 사회가 진보하고 발전한다 해도 ‘사람됨’에 대한 갈망은 불변의 이치다. 박문초가 전인 교육과 인성 교육에 중점을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통해 충분한 사랑과 신뢰를 받은 아이들은 국경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미래 사회에서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리더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박문초의 굳은 믿음이다.
“사람됨의 가치를 실현함과 동시에 AI와 로봇 등 시대상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지식적 교육, 예술을 통한 인문학 미술 수업 등 다양한 경험으로 이어지는 감성적 교육, 가톨릭 정신에 입각한 영성적 교육까지, 120년 박문초가 이어온 변치 않는 전통을 통해 글로벌 인재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 학교의 목표입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하면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박문초의 아이들. 교문을 들어설 때마다 경험하는 따뜻한 환대와 사랑, 굳건한 신뢰가 200년 역사를 향해가는 박문초의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한다.

캡션

감사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박원희 교장 수녀 

오랜 역사만큼, 학교는 다방면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52회 졸업)
1964년 동구 송림동에서 태어나 1993년 사제품을 받았다.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실천 신학을 공부했으며, 역곡2동 본당 보좌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교구 성소국장 등을 지낸 뒤 2010년 보좌 주교를 거쳐 2016년 제3대 인천교구장 주교로 임명됐다.




방송인 염경환(58회 졸업)
박문초를 거쳐 제물포중학교와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93년 SBS 2기 공채 개그맨으로 방송에 입문했으며, 이후 활발한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쌓았다. 김구라, 지상렬 등 인천 출신이자 제물포고등학교 동기들과 방송에서 고향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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