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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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사람-장용 개그맨
미우나 고우나,나의 인천장용 개그맨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괜히 정이 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좋은 얘기만 하는데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말의 내용을 떠나 그 안에 담긴 진심을 감지하는 마음속 안테나 때문일 것이다. 진심은 귀가 아닌 마음으로 전해지게 마련이기에. 개그맨 장용은 다른 지역보다 유독 나고 자란 인천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자신을 사랑하듯 인천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가까운 사이일수록 남이라면 못할 말도 해줘야 할 때가 있다. 별 애정 없는 사람이라면 고춧가루 낀 이를 드러내고 웃든 말든, 자만에 빠져 뻔히 보이는 문제를 외면하든 말든, 자신감을 잃고 남의 말에 휘둘리든 말든 굳이 서로 불편해질 지적을 할 까닭이 없다. 나의 잘못을 깨우쳐주는 사람도 나의 자존감을 북돋워주는 사람만큼이나 소중한 이유다. 개그맨 장용은 독정이 고개(미추홀구 용현동)에서 태어나 주안 신기촌 일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에게 인천은 가깝다는 말로는 부족한, 그 자신과도 같은 의미다. 신인 시절부터 선배들에게 ‘짠물’이라는 놀림을 받으면서도 어딜 가나 스스로를 인천 사람으로 소개했던 그다. 문학산을 넘어 지금의 남동공단 자리에 있던 염전에서 친구들과 수영하고, 망둥이랑 조개 잡아 매운탕도 끓여 먹으며 놀았다. 소래포구에서 할아버지 배를 타고 첫 바다낚시를 떠나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10년을 사귀고 결혼한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는 인천 구석구석 또 얼마나 많은지. 비록 한적한 골목을 몇 번이고 오가는 것이 데이트의 전부인
2020-02-04 2020년 2월호 -
시민 시장-손민환 학예연구사2020-02-04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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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드립니다 추억을 걸어드립니다
사진을 찍어드립니다추억을 걸어드립니다아버지는 40년간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것이 진정 가족을 위한 길이라 믿었습니다. 지난해 은퇴 후 뒤를 돌아봤을 때, 그곳엔 가족은 없고 자신만이 있었습니다. 한 남자로서 자랑스럽기만 했던 그 길이, 가족에겐 때론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아버지는 다짐했습니다. 평생 시어머니 모시고 자식 건사하느라 고생한 아내와 장성한 두 아들을 위해, 오롯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매일 매일 눈에 담고 가슴에 담으며 그 다짐을 결코 잊지 않겠노라고. 류인복 독자님 가족 이달의 사진은 ‘예작스튜디오’에서 찍어주셨습니다.홍의삼 사진사는 40년 가까이 인천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일을 통해 값진 무언가를 실천하고 싶은 마음에, 한 해도 거르는 일 없이 주변 어르신들에게 사진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위치 부평구 안남로 62 문의 032-517-3333 시민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가족과 소중한 추억을 남기고 싶은 인천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소개와 가족사진을 찍고 싶은 이유를 간단히 적어 보내주세요. 신청 굿모닝인천> 홈페이지(www.incheon.go.kr/goodmorning) 독자마당(성명/연락처/주소 필수)"documentPr": { "di": "", "dp": { "dn": "test.hwp", "ta": 1, "d1": 5, "d2": 0, "dv": 5, "dr": 1, "do": 1, "vj": "1.0", "an": "Hancom Office Hangul", "av": "9, 1, 1, 4673", "ao": "WIN", "ab": "32", "ar": "LE", "as": "Windows_Unknown_Version" }, "dis": false, "ds": { "ti": "", "la": "ko", "cr": "user", "su": "", "de": "", "cd": "2020-02-03T16:15:36.745Z", "md": "2020-02-03T16:15:36.756Z", "pd": "1
2020-02-03 2020년 2월호 -
내가 사랑하는 인천 소설가 이원규
아버지와 나의 인천 사랑글 이원규 소설가인천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모교인 동국대학교에서 오래 강의했으며 지금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생전 이훈익 향토사가 모습.김보섭 작가의 작품이다.소래습지생태공원에서 이원규 소설가.아버님(이훈익李薰益, 1916~2002)과 나는 조상 대대로 300년을 인천에서 살았다. 속속들이 인천인이고 인천 사랑은 숙명과도 같다. 우리 마을은 서구 연희동이다. 동쪽은 계양산, 서쪽은 바다였다. 바다는 매립되어 청라국제도시로 바뀌었다. 구한말에 설치했던 연희진 자리에 아버님이 일하시는 서곶출장소가, 그 앞에 경찰지서, 가까운 곳에 내 모교인 서곶국민학교가 있었다. 마을에는 당제를 올리는 당나무가 있었고 내리교회 다음으로 오래된 연희교회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선비로서 부평향교의 전교典校를 지내셨다. 징맹이고개[경명현]를 나귀 타고 넘어가 향교에 가셨고 아버님은 그 고개를 걸어서 넘어 4년제 부평보통학교에 다니셨다.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아버님 아호는 계양산 서쪽을 뜻하는 서계당西桂堂, 아버님이 내려주신 내 아호는 징맹이고개 서쪽이라는 서현西峴이다. 아버님은 4년제 보통학교만 나와 인천시 공무원을 지내고 노년에 인천 향토사 연구의 길을 열었다. 신현정 변호사님과 이영호 박사님이 동창이셨다. 1971년 내가 베트남전에서 살아 돌아와 싸리재에 있는 병원(이이비인후과)에 인사드리러 갔을 때 이 박사님이 말씀하셨다.“자네 아버님이 늘 1등 하셨네.”1930년대 어느 때 서곶면사무소에 업무가 많아 일손이 딸리자 일본인 면장은 통신강의록으로 독학하던 내 아버님을 데려다 일을 시켰다. 흡족했는지 1
2020-02-03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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