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부평 스토리텔러 박명식
시민 시장 박명식
“부평 미군부대, 시민공원 만들어 역사문화도시 꽃피워야”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땅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고, 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 것이라 믿습니다.
글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부평 미군부대는 ‘금단의 땅’이었다. 1년에 꼭 한 번, 추수감사절 때 들어갈 수 있었다. 아버지가 전화기를 설치하는 군무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학 시절엔 캠프마켓에서 ‘알바’를 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결근하는 군무원이 발생했을 때 그 가족들에게 주어지는 특혜였다. “제가 어렸을 때 부평엔 논밭 아니면 미군부대밖에 없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과 미군부대 근무하는 사람들이 전부였지요.”
하촌(현 부평5동)에서 태어나 토박이로 살아온 박명식(59) 씨는 부평 스토리텔러다. 미래의 주인인 아이들, 부평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곤조곤 고향의 얘기를 들려주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조병창 건설 전 무슨 일이 있었나, 캠프마켓은 어떻게 흘러왔는가, 부평공단을 만든 진짜 주체는 누구일까. 학교에서 혹은 역사의 현장에서 이뤄지는 그의 설명은 흥미진진하면서도 재미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가 토지 수탈을 위해 가장 먼저 토지 조사를 시작한 곳이 부평입니다. 부평 미군부대 땅은 애국자와 친일파 간 100년 동안 소송이 진행된 땅이기도 하지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평 이야기를 그는 ‘한 보따리’ 품고 있다. 평생 부평에 살면서 쌓은 경험과 지식의 보따리다. 그도 그럴 것이 부평동초·부평중·동산고·성균관대를 나와 농협에서 근무하고 개인 사업을 할 때도 그의 삶터는 늘 부평이었다. 같은 인천인데도 부평은 인천과 정서적으로 분리된 적이 있었다. “1970년대 부평에 고등학교가 한 군데밖에 없어 송림동으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중·동구 쪽에 사는 아이들이 ‘개 건너’ 사람이라고 놀리곤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부평은 농경문화권이고 인천은 해양문화권이라 약간의 문화적 차이가 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싸움도 하곤 했는데 야구라는 구심점이 있어 나중엔 다들 잘 지냈지요, 허허.”
인천시와 시민의 꾸준한 노력으로 지난해 말 캠프마켓 반환이 결정된 이후 박 씨는 부쩍 바빠졌다. 부대 내 건물을 비롯해 역사 등 캠프마켓을 훤하게 알고 있다 보니 견학할 때 해설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반환받은 캠프마켓은 어떻게 가꿔가는 게 좋을까.
“역사문화공원으로 만들면 부평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입니다. 138개 건물이 있는데 안전검사를 통해 남겨둘 건물은 보존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대 주변 철길은 테마 철도로 운영하고 담벼락도 일부를 남겨두면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올 겁니다. 부대 안에 지하호가 몇 개 있는데 관광상품으로 개발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그가 부평 스토리텔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청소년들에게 애향심과 정주 의식을 심어주고 싶어서다.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땅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고,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어머니, 할아버지가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면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스스로 깨달을 거라 생각합니다.”
취재 영상 보기 클릭하세요! : [영상은 큐알코드 입력과 인천시 유튜브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첨부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