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근대음악 여정 <이승묵 예인관>
여기, 140여 년간 이 땅에 뿌리내린 서양음악을 깊이 파고든 사람이 있다. 이승묵, 이을 ‘승承’, 묵묵할 ‘묵?’이라는 이름처럼 근대음악 한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왜 음악을 하는가’, ‘이상적인 음악은 존재하는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음악은 무엇인가’ …. 악기를 다루고, 무대를 선보이고, 음악을 연구하면서 수많은 물음표가 가슴을 찔렀다. 이승묵의 음악 전시 <이승묵 예인관>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다. 전시는 옛 예인의 자취가 깃든 용동 권번券番 터에서 홀연히 떠올랐다 사라졌다. 오늘을 살아가는 한 예인의 가슴에 여전히 질문을 남긴 채.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임학현 포토 디렉터
전시 공간 ‘예인관藝仁館’에서 이승묵. 예인관은 그가 대표로 있는 인천콘서트챔버가 개항장에 준비하고 있는 상설 공연장의 이름이다. 청람 전도진 선생이 현판 글씨를 써주었다.
# 예인관 : 藝人觀
예인, 세상을 바라보다
“악기를 배우면 멋진 중학생이 될 수 있단다.” 어느 날 어머니가 건넨 한마디가 한 남자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드럼 스틱을 손에 꼭 쥔 그날,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교본을 찾아 헤매다 교향악단의 문을 두드렸다. 클래식 타악기를 운명처럼 만났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시간은 멈춰버렸다. 이대로 음악가의 길을 걸을 것인가, 고민에 휩싸였을 때 아버지가 용기를 주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행복한 음악을 하거라.”
대학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에서 팀파니스트로 처음 무대에 오른 날, 슈만 교향곡 제4번을 연주했다. “승묵아, 공연 잘 봤다.” 아버지는 말없이 찾아와 아들의 무대를 지켜봐 주었다. 이을 ‘승承’, 묵묵할 ‘묵?’, 그렇게 이승묵(38)은 이름처럼 음악가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인천 개항기에 꽃핀 음악을 찾아, 이 시대에 다시 울려 퍼지게 하겠다.’ 교향악단을 나와 2015년 ‘인천콘서트챔버’를 창단했다. 음반 <인천근대양악열전仁川近代洋樂列傳>과 <인천학도의용대가>, 올해 말 세상의 빛을 볼 <Reimagined: INCHEON>에 이르기까지. 잊혀가는 근대음악을 발굴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왔다.
<이승묵 예인관>은 음악 전시다. 근대음악 연구가 이승묵의 예술적 가치관과 인생 행로를 그렸다. 공간 1층의 예인관藝人觀은 예인의 관점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음악가의 길에 들어서고, 연주자로 성장하며, 근대음악에 빠져들기까지, 한 예인이 걸어온 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연주자의 방에서 연구자의 방을 지나 기획자의 방을 건너는 이승묵. 그렇게 근대음악 한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 예인관 : 藝仁館
어질게 기예를 행하다
‘왜 음악을 하는가’, ‘무엇을 위해 무대에 오르는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음악은 무엇인가’ …. 처음 악기를 손에 쥔 날부터 무대 너머의 세계로 다다르기까지,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공간 2층의 예인관藝仁館은 ‘어질게 기예를 행하는’ 예인에 관한 이야기다. 연주자의 방을 시작으로 연구자의 방을 지나 기획자의 방을 건너, 마침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세계 ‘예인관’에 다다른다. 공간 한편엔 2015년 열린 인천콘서트챔버의 첫 공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연 포스터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음악을 사랑한 한 소년이 음악 안에서 성장하기까지 하얗게 밤을 새운 날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음악가는 악보로 음악을 전합니다. 보고 만질 수 없는 음악에 물성物性을 부여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성을 찾기 위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창작 욕구를 쏟아붓게 만드는 또 다른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음악 밖에서도 예인 이승묵의 음악적 사유는 계속된다.
공연 포스터로 채운 전시장 벽면 앞에 선 이승묵. 음악을 사랑한 한 소년이 음악가이자 연구자로 성장하기까지 날들이 펼쳐진다.
# 인(人)에서 인(仁)으로
예인藝仁으로 인생仁生을 살아가다
그 옛날 분 향기 짙게 흘러나오던 골목엔, 오늘 바람만 고요히 인다. 힘으로 밀어붙인 개항, 권번의 역사는 더 뼈아팠다. “그 시대의 여성 예인들은 풍류를 주도하면서도 존재성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역사가,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龍洞券番용동권번, 昭和소화 四年4년 六月6월 修築수축’, 오늘 남은 권번의 흔적은 돌계단에 새겨진 글 한 줄이 전부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예인관을 지어야만 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예인으로서 옛 예인의 숨결이 깃든 권번 터에서 음악 세계를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권번 계단을 지키고 그 의미를 온전히 알려야 했습니다.”
전시 공간을 찾아 봄부터 권번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렸다. 골목을 돌고 돌아 이른 곳은 계단 바로 위에 자리 잡은 오래전 문을 닫은 한 여관. ‘위해객잔威海客棧’이라는 중국식 이름이 붙은 텅 빈 공간엔 공허가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주인을 수소문해 잠시 빌려달라 사정했다. 건물은 한 달간 그의 것이 되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달려가 새벽빛이 밝아올 때까지 망치질을 했다. 그렇게 수많은 사연이 머물다 갔을 빈자리에 한 예인의 삶이 채워져갔다.
지난 10월 말, 마침내 <이승묵 예인관> 전시가 세상에 나왔다. 관람객에겐 단 2주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 여정은 짧지만 긴 여운으로 남았으리라. 전시가 끝나고 이승묵은 빈 공간을 남긴 채 미련 없이 떠났다. 스스로를 향한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하나 분명한 건, 삶도 음악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비로소 가치 있어진다는 사실이다. “단음은 소리에 불과하지만 화음을 이루면 음악이 됩니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인생이 충만해지지요.” 예인藝人이 아닌 ‘예인藝仁’으로, 인생人生이 아닌 ‘인생仁生’을 살고 싶습니다.”
인천, ‘인仁’에는 두 사람이 있고, ‘천川’에는 세 사람이 있다. 사람의 도시, 인천에서 한 예인藝仁의 인생仁生으로 삶을 반추했던 시간. 공간은 사라졌지만 기억은 남았다.
<이승묵 예인관> 음악 전시. 오래전 문 닫은 여관을 한 달간 임대해 공간을 꾸몄다. 2주간 전시를 하고, 지금은 사라졌다.
예인藝人이 아닌 ‘예인藝仁’으로,
인생人生이 아닌 ‘인생仁生’을 살아가는 일.
단음은 소리에 불과하지만
화음을 이루면 음악이 된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인생이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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