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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내가 사랑하는 인천-인천문인협회장 김사연

2020-07-31 2020년 8월호

11대째 태를 묻어온 인천


글 김사연

내 고향은 11대를 살아온 남동구 만수동 369번지, 샛골 부락이다. 내 어릴 적 만수동은 그야말로 시골이었다. 지금의 만수주공 임대아파트 자리는 논농사를 짓던 문전옥답이었고, 만수고등학교 자리는 참외밭이었다. 할아버지는 네 바퀴 마차에 실어 온 참외를 마당에서 선별한 후 참외전거리로 싣고 가 파셨다.
‘만수초등학교’는 내 부친께서도 졸업하신, 역사 깊은 학교다. 만수초등학교의 봄 소풍은 돌말산 약사사가 단골이었고 간혹 배꼽산(문학산)으로도 갔다. 우연인지 그날은 꼭 비가 내렸지만 돌말산에 올라가 경인선 기차를 구경하는 것이 신났다.
송도중학교 시절엔 학교 근처에서 자취했고, 송도고등학교는 통학을 했다. 당시 교통편은 열악해 안양과 수원에서 오는 소신여객 버스와 소래에서 오는 버스를 놓치면 1~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후에 생긴 운연동행 16번 시내버스도 결행되면 건설훈련원 자리에서 간석오거리까지 걸어가 백마장에서 오는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막차를 놓치면 간석오거리에서 만수동까지 터벅터벅 밤길을 걸었다. 당시 만수당약국과 로얄호텔 자리는 푸른 보리 이삭이 달빛 아래 춤추듯 너울거렸다. 만수동에 들어서면 봉분 앞면에 빨간 벽돌문을 만든 중국인 공동묘지에서 서늘한 바람이 내려왔다.
박 씨 집성촌인 박촌말 입구(하이웨이 주유소 건너편)엔 비류고개로 불리는 작은 동산이 있다. 건설기술교육훈련원 인천분원 자리는 사춘기 시절, 황혼에 물든 노을을 바라보며 시심詩心을 키우던 뒷동산이었다. 지금은 눈을 씻어도 볼 수 없지만, 공해에 찌들지 않았던 1960년대 중반만 해도 해질녘 서쪽 하늘엔 웅장한 궁전을 비롯해 각종 모양의 황금빛 구름 조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농토를 팔지 않기 위해 동생부터 대학을 졸업시키려 인하공대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농사를 짓던 시절, 그때 만수고등학교 자리 참외밭을 논으로 바꿨다.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이기에 날이 가물면 지금의 인천대공원 야영장 근처 연못에서부터 비닐 호스를 연결해 경운기로 물을 끌어왔다.
경운기를 운전한, 동네 아랫집에 사는 본관이 평창平昌인 이 씨는 긴 밤을 새우는 동안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베드로 이승훈 후손으로 살아온 뼈아픈 가문의 역사를 털어놓았다. 멸족의 위기를 모면한 그의 조상들은 천주교에 등을 돌린 채 목이 없이 묻힌 이승훈의 묘에 그림자조차 얼씬거리지 않으며 대를 이어왔다. 비록 지금도 성당에는 나가지 않지만, 순교 당한 조상들의 세례명을 손수 써서 만든 십자가 비목을 무덤마다 꽂으며 비명에 간 새남터의 원혼들을 달래주었다고 한다.
인하공대에서 성균관대 약학대학으로 편입한 후 약사가 되면서 김포공항 입구에서 약국을 개업했다. 약국 상호는 고향인 만수동을 따서 ‘만수당약국’이라고 지었다. 이어 부천에서 인천으로 약국을 옮기는 동안에도 ‘만수당약국’은 변함없었다. 남동구약사회장을 거쳐 인천시약사회장에 당선된 후엔 약국을 폐업했다. 회장 직분을 소신껏 수행하려면 개인적 이권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객지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돌아오자 소꿉친구들과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활을 쏘는 한량이 되었고, 훗날 인천대공원 내 남수정 사두와 인천시궁도협회장을 역임했다. 운이 좋아 16년 만에 돌아오는 전국체전 궁도대회를 임기 내에 계양구 다남공원 청룡정에서 치렀다.
지난해엔 한국문인협회 인천지회장에 당선됐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 덕분에 약사, 궁도, 문인 세 단체의 회장으로 인천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다. 인천문인협회장으로 가장 보람 있는 사업은 인천지하철 1호선 역 스크린도어(안전문)에 인천 시민의 시詩를 게재하게 된 것이다. 서울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인천지하철 이용객도 이런 문화적 혜택을 누렸으면 했는데 인천시의 지원과 인천교통공사의 협조를 받아 뜻을 이루게 됐다. 가을에는 시, 소설, 수필, 동화 등 시민 문예 공모전 작품을 인천문인협회에서 접수받고 심사해 인천시의 지원으로 상금을 수여하고 있다. 이 또한 인천 사랑의 일환이기에 긍지를 느낀다.
프랑스의 화가이며 시인인 베르네가 ‘인간은 타향에서 태어난다. 산다는 것은 고향을 찾는 것이다!’라고 했다면 나의 좌우명은 ‘사는 동안 선산을 지키며 내 고향 인천을 떠나지 않겠다!’는 신념뿐이다.


 


김사연은 남동구 만수동에서 나고 자랐으며 약사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1991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수필집 <그거 주세요> 외 6권의 저서를 펴냈다. 2014년 인천시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인천시약사회장, 인천시궁도협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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