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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시민이 소개하는 우리 동네 -승천포

2020-07-31 2020년 8월호

개경과 연결되는 임금님의 나루터
글 윤용완(강화도 강화읍)



강화도 승천포는 지금 철조망으로 꽁꽁 묶여 뱃길이 막히고 형체마저 알 수 없지만, 그 옛날 사람과 배들이 구름처럼 오갔으며, 1232년 고려가 몽골에 장기간 항전하기 위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 고려 고종이 건너온 나루터였다. 고종은 개경의 경천사로 가는 남쪽 길로 북한에 있는 승천포에서 바다를 건너 강화도 승천포에 내렸다고 한다. 개경은 고려 시대 개성의 옛 이름이다.
당시 개경에서 강화로 건너는 승천포진이 강화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마찬가지로 승천포진이 강화에서 개경대로로 통하는 지름길로 이 포구는 북한의 개경 쪽과 강화 쪽이 다 같이 승천포로 불리고 있다.
고종도 개경에서 승천포를 출발해 강화도의 승천포 나루터에 내려 강화도 송악산 아래 궁으로 입궁했다. 귀에 익숙한 이 산은 현재 북한의 개성에 있다. 그런데 강화에도 송악산이 있으니, 이는 고려가 천도하면서 강화의 북산을 송악산으로 고쳐 지었기 때문이다. 승천포도 송악산도 모두 임금이 개경에서 갖고 온 지명들이다. 또 하나, 매년 봄철이면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강화 고려산이 있다. 원래 이름은 오련산이었는데 고려가 천도하면서 그 이름을 따 고려산으로 바꾼, 나라 이름을 가진 국산國山이자 진산이다.
승천포는 6·25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개성과 강화를 잇는 뱃길의 관문이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황해·평안도에서 한양(서울)으로 가는 배들은 모두 승천포를 거쳤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도 고종은 승천포에서 하선해 화려한 어가의 행렬이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어가의 행렬이 어디로 어떻게 궁궐까지 이어졌는지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강화문화원에서는 오는 10월 당시 어가의 추정 행차로를 찾고 고증을 토대로 관광객들이 함께 참여하는 고려 시대 어가 행렬을 재현한다.
지금 승천포에는 천도 당시 국난 극복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고려천도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고려 만월대의 출입문을 형상화한 천도문과 어가 행렬이 음각된 원형의 앉음벽,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를 형상화한 7m 규모의 상징 조형물, 인공 폭포, 수변 휴게 공간을 마련해 북한 땅을 바라보며 가족 단위 휴식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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