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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시민 시장-‘유도성인’ 된 유도9단 김도현

2022-01-06 2022년 1월호

‘인천사랑, 인하사랑, 유도사랑’의 길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덕을 쌓는 것이 진정한 유도인의 길입니다.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


부드러울 유柔, 길 도道. ‘유도’는 상대를 타격하지 않고 넘어뜨리거나 던지고 졸라 상대방을 제압하는 무술이다.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나는 운동이 유도이다. 유능제강 柔能制剛(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외유내강外柔內剛 (겉은 부드럽고 속은 강하다), 심청사달心淸事達(마음이 깨끗 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이 유도의 근본정신인 까닭이다.
유도계에서 9단 이상의 유단자는 ‘유도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유도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꾸준히 수련하고 정진해 온 유도인에게 내려주는 최고의 영예다. 
세모였던 지난해 12월 17일 인하대학교 학생관 5층 유도 도장에선 유도성인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60년 동안 유도로 심신을 수련해온 김도현(74) 인하체육인회 회장의 9단 승단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유성 9단의 반열에 오르려면 인격이 높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도와 지역사회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워야 한다.
“제가 잘 했다기보다는 유도인들이 도와줘서 영광스러운 명예를 얻게 됐어요. 앞으로 인하대 유도회와 인천, 우리나라 유도발전을 위해 힘쓰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김 회장이 유도에 입문한 건 평택중학교 1학년 때. 고교 선배들과 운동을 할 정도로 체격이 좋고 낙법을 하루 만에 익힐 정도로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졌던 그는 전도유망한 선수로 빠르게 성장해 나간다. 그렇게 국가대표를 꿈꾸며 유도명문 평택고에 진학한 그는 이따금 인천에 오곤 했다.  인천에서 개최하는 여러 유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게 제2의 고향 인천과의 첫 인연이었다. “당시 경기도 고교 유도는 평택고와 송도고가 꽉 잡고 있었고 그만큼 경쟁의식도 강했어요. 또래한테 져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선배가 와서 짜장면 한 그릇 사주면 평생을 모시기로 다짐하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 송진을 먹으며 운동을 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선생님에게 불려 나가 급우들 앞에서 “공부도 운동도 도현이처럼 해야 한다”는 칭찬을 자주 들을 정도로 그는 모범생이었다. 유도특기생이 아닌 필기시험으로 1968년 인하공과대학(인하대) 응용물리학과에 합격한 것도 성적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대학 1학년 때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국가대표를 향해 한 발 두 발 나아가던 그가 진로를 바꾼 것은 군대를 다녀와서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학교에서 행정 일을 보며 후배들을 키워달라는 제안을 해 왔어요. 고민 끝에 학교에 남기로 했지요.”
인하대 교직원이 된 김 회장은 후배들을 동생, 자식 같이 돌보며 교육자의 길을 걷는다. 운동선수 출신이다 보니 야구와 배구, 씨름, 역도, 유도, 탁구 등 인하대 운동부 설립 과 운영을 이끌기도 했다.
언제나 ‘인하사랑, 인천사랑’을 외치는 김 회장은 정년퇴 직후 인하대 총동창회 상근 부회장을 오랫동안 역임하며 인하대 설립자인 이승만 대통령 재조명 사업에도 고군분투했다. 
인하대 출신들에겐 ‘선생님’ 혹은 ‘큰형님’으로 통하는 그에게 ‘이제 10단을 따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허허허, 승단을 했어도 품위를 손상하면 취소되는 경우가 있는 걸. 10단도 좋지만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덕을 쌓는 것이 진정한 유도인의 길입니다.”



김도현 회장의 후배들이 지난해 12월 17일 인하대 유도관에서 유도성인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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