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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지금, 빛나는 인천 ⑤ 순례길 학교

2022-05-31 2022년 6월호


순례길 학교  ‘고무신 로드’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류창현 포토 디렉터


자유공원 계단 길을 따라 ‘고무신 로드’를 걷는 순례길 학교 사람들. 서로 보폭과 호흡을 맞추고 눈빛을 나누며 걷는 길, 함께여서 즐겁고 행복하다.
순례길 학교 서체는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근정 서주선(앞줄 맨 왼쪽) 선생의 작품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길은 단선이 아닌 복선이며, 갈림길의 연속입니다. 때론 좁고 가파르기도 합니다. 정해진 길은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나요?


여기, 인천의 길 위에 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순례길 학교’의 도반道伴, 함께 도를 닦는 벗들입니다. 불현듯 나타난 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움츠렸을 때도, 그들은 걷고 또 걸었습니다. 잊히고 숨겨진 길을 찾아 더 자유롭게, 세상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내 안의 나와 마주했습니다.


순례길 학교 교장 조용주(50) 변호사에게 ‘걷기’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살다 보면 자연의 흐름에 무뎌지고 주위에 무관심해집니다. 걷기는 이 모든 감각을 일깨우고 진정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신선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폭신한 흙의 감촉이 발끝으로 전해집니다. 차창 밖으로 무심히 스쳐 지나던 거리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내게 허락된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문득 깨닫습니다. 단지 길을 따라 걸었을 뿐입니다.


눈부신 오월, 순례길 학교 사람들이 길 위에 섰습니다. 오늘은 갑갑하게 조이는 구두를 벗어 던지고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아프지만, 우리가 사랑하고 추억하는 인천 개항장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함께여서 더 즐겁고 행복합니다. 서로 보폭과 호흡을 맞추고 따스한 눈빛을 나누며 그 길을 거닙니다.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무신 신고 ‘나빌레라’.



고무신 로드 4.51km, 도보 1시간 7분 소요
코스: 동인천역 북광장 ->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 배다리 -> 싸리재 -> 용동 큰우물 ->  답동성당 ->  청년김구역사거리 ->  인천시민愛집 ->  자유공원



한국전쟁 중인 1952년, 고무신을 신고 인천 거리를 걷는 아이들(사진 소장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



1948년 배다리 풍경. 가운데 화인상회和仁商會와 그 왼쪽 명신상회明信商會 좌판에서 고무신을 팔았다.(사진 노브 파예) 


순례길 학교 사람들은 ‘의미 있는 길’을 따라 함께 걸으며 깨달음을 얻고 희망을 찾아갑니다. 멀리 스페인 산티아고Santiago까지 가야만 때로 지난한 삶에 빛을 비출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선 이 땅도 깊이 파고들수록 의미 있고 아름답습니다.


순례길 학교가 연 인천의 첫 길은 ‘고무신 로드’입니다. ‘눈보라 비껴 나는/--全--群--街--道// 퍼뜩 차창으로/스쳐 가는 인정아!// 외딴집 섬돌에 놓인/ 하나 둘 세 켤레’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장순하 시인의 시 ‘고무신’입니다. 하나 둘 세 켤레, 아빠·엄마·아이 고무신. 너도나도 가난하던 시절엔 누구나 고무신을 신고 삶의 희로애락 한가운데를 걸었습니다.

그 고무신은 인천에서 처음 만들었습니다. 20세기 초, 싸리재에서 신발 가게를 운영한 이성원이 창안한 경제화經濟靴가 그 시작입니다. 1918년 용동에서 식품점을 하던 안기영은 일본인 상인에게 건네받은 호모화護模靴와 경제화를 바탕으로 고무신을 만들었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인 개항, 그럼에도 조선인들은 악착 같이 일어나 근대의 산물을 일궈냈습니다.


오늘, 그 시절 고무신을 신고 수도국산 비탈길을 오릅니다. 부둣가 공장에서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단한 몸을 이끌고 평생을 걸어 올랐을 그 길입니다. 발길은 다시 언덕을 넘어 배다리, 싸리재, 용동, 답동성당, 청년김구역 사거리로 이어집니다. 굴곡진 삶에서도 꺾이지 않는 희망을 따라 걷던 그 길에, 오늘 다사로운 햇살이 비칩니다.



순례길 학교의 첫 공식 행사인 ‘고무신 로드’.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오늘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다.


순례길 학교의 첫 공식 행사인 ‘고무신 로드’.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오늘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다.



고무신 로드 행사 중,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에서 고무신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무신을 신고 구불구불 오래된 골목을 걷다 보면 고향길이 떠오릅니다. 기억나나요. 어린 시절, 동네 골목에서 고무신을 던지고, 제기를 차고, 고무줄을 넘으며 뛰놀던 추억이. 놀이에 빠져 해 지는 줄도 모르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어느덧, 140년 시간이 고인 용동 큰우물가에 이릅니다. 느려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고무신 던지기, 제기차기, 비사치기 등 머리가 희끗희끗 센 어른들이 옛날 놀이를 한판 벌입니다. 무슨 일인가, 길 가던 사람도 동네 주민도 궁금해 서성이다 이내 자리를 잡고 구경에 나섭니다. 처음 본 얼굴이지만 같은 시대를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나누기에 충분합니다.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는 몸짓 하나하나가 추억을 부르고 웃음을 부릅니다.



용동 큰우물가에서 고무신 던지기, 제기차기, 비사치기
같은 옛날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는 순례길 학교 사람들.



정경석(위), 조용주·박희선·임희숙·양경섭(왼쪽부터).





1961년 사동. 무더위에 지쳐 쉬고 있는 아이스케키 상인.(사진 박근원)


 1982년 자유공원. 입안에서 살살 녹던, 엄마 아빠를 졸라 사 먹던 솜사탕의 감미로운 추억.(사진 박근원)


1986년 수봉공원. 손주를 지켜보며 화색이 돌던 할머니의 주름
진 얼굴, 그리고 기억나는 할머니의 낡은 검정 고무신.(사진 박근원)




여기는 자유공원. 햇살 좋은 날이면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공원에선 마침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3주년을 기념하는 ‘백범김구 서예대전’이 한창입니다. 인천은 청년 김창수가 ‘백범 김구’로 다시 태어난 땅,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의미심장한 역사 지대’입니다. 그 뜻을 기리고자 김구를 상징하는 두루마기를 입고 뿔테 안경을 쓴 순례길학교 교장 선생님마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걷기의 묘미가 아닐까요. 수없이 걷던 길일지라도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마주치는 사람 따라 만나는 세상은 매일 다릅니다.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나요. 내일은 또 어떤 길을 가게 될까요. 살다 보면 살아내다 보면 수많은 갈림길에 서고 가파른 언덕에 부딪힙니다. 때론 길을 잃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뒤처지기도 하지요. 분명한 건,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그 길 끝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이라는 길, 그 끝에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오늘도 희망을 안고 발걸음을 성큼 내딛습니다.



청년김구역사거리에서 김구 동상을 바라보는 순례길 학교 교장 조용주 변호사.

 그는 이날 역사를 기리고자 김구를 상징하는 두루마기를 입고 안경을 착용했다.


※ 순례길 학교는 걷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 평화, 깨달음을 주길 바란다. 먼저 3년간 매해 ‘평화의 길’, ‘희망의 길’, ‘깨달음의 길’을 연다. 평화의 길은 분단선을 따라 우리나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희망의 길은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 승전지를 찾아 동쪽에서 서쪽으로, 깨달음의 길은 불교 유적이 있는 일본 시코쿠(四國)로 가는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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