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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스케치에 비친 인천 - 송현동 중앙시장

2022-08-30 2022년 9월호



‘인천, 그림이 되다.’ 낡은가 하면 새롭고, 평범한가 싶으면서도 특별한. 골목길만 지나도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도시, 인천. 추억이 그리움으로, 때론 일상으로 흐르는 공간이 작가의 화폭에 담겼다. 그 따뜻하고 섬세한 손길을 따라 인천 사람의 삶으로 들어간다. 이번 호에는 동인천역 중앙시장 혼수거리, 아내의 옛 한복집에서 ‘한복 콜라주’로 기억을 풍경에 담는 김정열 작가를 만난다. 그는 오늘도 고운 색 천을 겹겹이 쌓아 집을 짓고 달빛을 채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전재천 포토 디렉터


바벨의 시대 2, 2019, 캔버스 위에 한복 천 콜라주, 162.2×112.1cm


바벨의 시대, 2019, 캔버스 위에 한복 천 콜라주, 162.2×130.3cm

낮은 집들을 허물고 솟아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작가는 높은 곳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무분별한 개발을 경계하고, 높고 낮음이 어우러진 화합과 공존의 시대를 꿈꾼다.


달빛 쌓인
심연 속으로 

한 겹 한 겹 빛을 담고 색을 채운다. 눈빛이 머무는 손끝에 온 마음을 담아. 색이 겹겹이 쌓이고 빛이 스미고 스미어 들어 마침내 검은빛을 드리운다. 심연처럼 깊고 짙지만, 사실 다채로운 빛과 색을 품고 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한복 콜라주’ 작가 김정열(56)의 세상은 그 렇게 펼쳐진다.


당연히 물감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붓칠과는 다른 질감이 눈으로 만져진다. 하나 물감 한 방울 없이, 한복 천만으로 표현했다고는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 옷을 지어야 할 천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천을 붙이고 붙이며 색의 깊이감으로 파고드는 작업은 실로 고되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수도 없이 들었지만,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  마음먹고 끝까지 갔다. 그 시간이 10여 년이다.


“사실적인 표현이 이제 가능해요. 처음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긴 회화적 표현이 상당한 높이에 다다랐지요. 그러자 ‘사회문제에 접근해 보자’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누구나 머물던 공간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때 그 시절 우리는 작은 집이 다닥다닥 붙은 동네에서 오순도순 자식들 키우며 살았다. 고만고만한 형편에도 행복했다. 작가는 송림동 달동네에 살던 옛 기억을 되짚어 고운 색 천을 겹겹이 쌓아 집을 짓고 달빛을 채웠다. 그러고는 오늘 낮은 집들을 허물고 솟아난 ‘콘크리트 유토피아’, 높이 더 높이 쌓여가는 인간의 욕망에 시선을 던졌다. 
“도시재생이 나쁜 건 아니에요. 주민과 함께 가지 않고 독단적으로 도시를 허물고 새로 짓는 과욕을 경계하는 겁니다.” 

‘한복 콜라주’ 작가 김정열. 
동인천역 중앙시장에 있는, 그의 집이자 작업실인 ‘S갤러리’에서. 


중앙시장 낮은 집들 너머로 보이는 새로 지은 높다란 아파트. 그의 작품 ‘바벨의 시대’와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한 땀 한 땀 
인생을 잇다 

이 거리에 서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색색의 고운 한복을 바라보고 매만지노라면, 눈빛이 반짝이고 입가에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인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인전철 철길을 따라 난 중앙시장 혼수거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던 때가 있었다. 


20여 년 전, 그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아내와 중앙시장으로 왔다. 좁고 어두운 단칸방이 딸린 작은 한복 가게를 월세로 얻었다. 아내는 한 땀 한 땀 한복을 지으며 삶을 잇고 희망을 키워갔다. 행여 지나던 사람이라도 들어올까, 일이 없는 날도 창가에서 쉬지 않고 바느질을 했다. 꼬박꼬박 월세를 내던 집을 결국엔 샀다. 한복을 짓는 아내가 있기에, 그림 그리는 남편은 생계로 정체되어 있던 창작 욕구를 쏟아부을 수 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10년 전 아내의 한복집이 주안으로 이사하면서, 공간은 작가의 작업실이자 갤러리가 됐다.
 
1980년,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복은 특별한 날에 입는 우리네 옷이었다. 당시엔 지금 동인천 북광장이 있는 자리까지 한복집이 늘어서 있었다. 집집마다 문밖으로 재봉틀 소리가 새어 나왔다. “굉장했어요. 여름부터 추석빔 예약이 꽉 찼으니까요. 결혼식, 환갑, 칠순 잔치를 열면 친척들까지 모두 한복을 맞추던 시절이잖아요. 하루 매상을 1,000만 원까지 올린 때도 있어요.” 그래, 그런 날도 있었다. 중앙시장 혼수거리에서 34년 한복집을 꾸려온 이두섭(72)·김은영(70) 부부가 화려했던 지난날 을 떠올린다. 곧 추석이 다가오는데도 오늘 거리는 한산하다.


중앙시장 혼수거리. 1980~1990년대 
한복집으로 전성기를 이룬 이 거리는, 오늘 추석을 앞두고도 한산하다.


‘신부클럽’의 김은영 대표. 평생 바느질만 해온
손은 주름지고 거칠어졌지만 미소는 여전히 곱고 환하다. 


부부는 처음 송현동에서 양복점을 운영했다. 장사가 잘돼 더 큰 시장을 찾아 사람들이 북적이는 혼수거리로 왔다. 그러다 기성복이 나오면서 일거리가 줄어들었다. 반면 기계로 찍어낼 수 없는 맞춤 한복은 여전히 호황을 누렸다. 부부는 양장 대신 한복을 손에 잡았다. 


정해진 출근 시간도 퇴근 시간도 없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위층 살림집에서 가게로 내려와 문 열기 전부터 기다리는 손님을 맞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치수를 재고 옷을 맞추다 보면 끼니도 거른 채 새벽까지 일하는 날이 허다했다. 그사이 23m2(7평) 한 칸으로 시작한 가게는 다섯 칸으로 늘어났다. IMF 금융 위기가 닥칠 줄 모르고 덜컥 큰돈을 대출받아 가게를 확장한 적도 있다. “‘망했구나’ 생각했는데, 손님들이 살려주었어요.” 스스로 살아낸 것이다. 부부의 부지런함이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삶을 단단히 지탱했다. 


‘드르륵드르륵’ 숨 가쁘게 달음박질한 시간. 몸 부리는 만큼 벌고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부럽지 않게 키 웠으니, 꽤 괜찮은 삶이다. “열심히 잘 살았어요. 걱정이라면 젊을 때 일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가, 몸이 좀 아프다는 거.” 이제 남은 인생, 두 사람 몸 건강하게 하루하루 주어진 대로 살아가면 족하다. 그거면 행복하다. 


Change mind, 2021, 캔버스 위에 한복 천 콜라주, 91.0×91.0cm



Change mind 2, 2022, 캔버스 위에 한복 천 콜라주, 91.0×91.0cm

순수했던 영혼조차 집착과 욕심으로 물들고 있다. 
작가는 집이 ‘영끌’해서 사야 하는 집착의 대상이 된 세태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Change mind’는 현재 주안에 있는 아내의 한복집에 걸려 있다.



한 겹 한 겹 빛을 담고 색을 채운다. 
눈빛이 머무는 손끝에 온 마음을 담아. 


20여 년 전, 중앙시장 혼수거리에 
단칸방이 딸린 작은 한복 가게를 월세로 얻었다. 
아내는 한복을 지으며 삶을 촘촘히 박음질했다. 
아내가 있기에, 그림 그리는 남편은 
가슴에 담아 두었던 창작 욕구를 쏟아부을 수 있었다. 


오늘도 중앙시장 작은 갤러리 작업실에선 
겹겹의 기억 속 빛과 색色이 쌓이고 쌓여간다. 



고단한 삶,
그렇더라도

처음엔 누군가의 찬란한 하루를 위한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만들고 싶었다. 한참 거리가 먼 투박한 커튼을 손에 잡았다. 어머니가 하던 일이었다. 잠시만 거들려고 했는데, 굴속 같은 작업실에서 달음박질하는 삶을 숙명처럼 짊어졌다. 그마저 처음엔 즐거웠던 일이 하루하루 고된 밥벌이를 잇는 노동이 됐다. 원 단을 떼어 오던 대구에서도 ‘억척이’, ‘똑순이’로 이름났던 중앙시장 ‘인화커튼’ 안인화(69) 대표의 이야기다. 


스무 살에 이 일에 뛰어들었다. 150cm 키에 40kg이 채 안 되는 여린 몸으로 몸무게의 반이 훌쩍 넘는 원단과 종일 씨름했다. 밀 려드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전화도 받지 못하는 날이 계속됐다. 몸 쓰는 만큼 버는 재미로 버텼다. 전성기는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내리막길이 가파르게 이어졌다. 딱 먹고사는 만큼만 번 지 벌써 15년 정도 됐다. 
“한심해요. 진즉 그만뒀어야 하는데…. 다 늙어빠져서 여태 일을 붙잡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해.” 말은 그리해도, 그는 평생을 쏟 은 이 일을 쉽게 놓지 못할 것이다. 


중앙시장 건물은 대개 1970년대에 지은 것으로 1층에는 상가를, 2·3층엔 살림집을 인 형태를 띤다. 


달빛 머문 은행나무, 
2022, 캔버스 위에 한복 천 콜라주, 72.7×72.7cm

누구나 머물던 공간에 대한 기억이 있다. 
작가는 송림동 달동네에 살던 옛 기억을 되짚어 고운 색 천을 겹겹이 쌓아 집을 짓고 달빛을 채웠다.



그때 그 시절 우리는 
작은 집이 다닥다닥 붙은 동네에서 서로에게 기대어 살았다. 
고만고만한 형편에도 행복했다. 


오늘, 
그 낮은 집들이 사라지고 있다. 

늘 그리운 고향이 그립지 않은 사람도 있다. 칠십 평생이다. 중앙시장 후미진 골목에서 태어나 자라고 가정을 꾸리고 일하며 나이 들어갔다. 그저 일밖에 모르고 살 추억이랄 것도 없다. 지독했다. 골목에 인적이 줄고 장사가 잘 안 되고 나서야 가게 문밖으로 나온 그다. 


“태어나 줄곧 여기 갇혀 살았지. 그래도 부모님은 내가 번 돈으로 좋은 데 다 보 내드렸어. 그거 하나 잘했지. 남은 날은 나도 물 맑고 공기 좋은 데서 살아보고 싶어.” 이제는 고향을 떠나고 싶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인화’ 두 글자가 새겨진 이 자리를 과연 떠날 수 있을까. 그는 오늘도 늙고 해진 몸을 이끌고는 한낮에도 불을 밝히고 삶을 박음질한다.


중앙시장 ‘인화커튼’의 안인화 대표. 
자신의 이름을 딴 이 자리에 평생의 땀과 눈물, 웃음이 서려 있다.


“동인천은 1970~1980년대 인천의 중심이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야죠. 시는 동인천역 역세권에 복합개발로 거점을 만들고, 이 일대에 유입되는 인구를 늘려 도심의 활기를 찾을 계획입니다. 바로 ‘동인천역 2030 역전 프로젝트’입니다.” 동인천역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김일영(36) 사무국장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하다. 동인천역 일대는 2007년부터 재정비촉진사업 등의 개발사업을 추진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이제는 다르다. “2년 전 센터가 처음 동네로 왔을 때 주민 모두가 반기는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제 ‘지켜보겠다’며 하나둘 시를 믿고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주민이 함께라면 내일은 밝다. 


오랜만에 단골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중앙시장 사람들은 분주해진다. 춤을 추고 노래하듯 재봉틀이 돌아가고 가위질 소리가 공중에 흩어진다. 그동안 누군가의 특별한 하루를 빛낸 고운 주단 옷들이 수없이 이 골목을 떠나갔다. 그 뒤엔 평생 고 개 숙인 채 한 땀 한 땀 인생을 바느질해 온 동인천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의 특별한 하루를 빛나게 할, 고운 주단의 옷들이 
수없이 이 골목을 떠나갔다. 


그 뒤엔 평생 고개 숙인 채 
인생을 바느질해 온 사람들이 있다.



그림 김정열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물감을 비롯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한복 천을 덧대어 붙이는 콜라주collage 기법으로 고유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다채로운 빛과 색의 사실적인 표현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에 가깝다. 현재 한국미술협회와 인천미술협회 회원이자 인천 환경미술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동인천역 중앙시장에서 ‘S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그의 삶과 젊음, 예술혼이 녹아 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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