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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인천무형문화재와 차 한잔 -황길범 강화용두레질소리 보유자

2023-07-03 2023년 7월호


물 푸는 노래, 강화도 열두가락농악의 힘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사진 안영우 포토 저널리스트



“앵차 앵차~” “어떤 사람 앵차~ 팔자 좋아서 앵차~/ 부귀영화로 앵차~ 잘살건만 앵차~/ 이내 팔자는 앵차~ 어이나 하여 앵차~/ 땅을 파서 앵차~ 먹고사나 앵차~”

지난 6월 15일 강화군 불은면 ‘농경문화관’ 연습실. 흥겨운 북소리, 요란한 호적(피리) 소리와 함께 열두가락이 울려 퍼진다. 상쇠 황길범(63) 강화용두레질소리 보유자의 움직임에 맞춰 30여 명의 사람이 북과 장구, 꽹과리를 치며 현란한 동선을 피워낸다. 꽃잎이 펴졌다 접히는가 하면, 승천을 준비하는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농악단의 움직임은 거침없으면서도 일사불란하다.

“하-아, 하-아” 상모를 돌리는 황 보유자의 얼굴에서 뜨거운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단오맞이 한마당’ 행사 리허설이 끝난 강당 바닥은 단원들이 흘린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강화는 섬이다 보니 농사지을 물이 항상 부족했지요. 비가 오면 물을 퍼 모아 저장해야 했는데 그럴 때 쓰는 농기구가 용두레입니다.” 황 보유자는 “용두레를 써서 물을 푸는 작업이 용두레질”이라며 “물을 퍼 올리는 일이 너무 힘들다 보니 일하면서 부르던 노래가 용두레질 소리”라고 말했다. 그 옛날 중노동의 힘겨움을 덜어내고자 불렀던 노동요는 지금 예술로 피어났다.

강화도가 고향인 황 보유자가 용두레질소리에 처음 빠져든 때는 1998년 1대 용두레질소리 보유자인 고故 최성원 선생을 만나면서부터다. 최 선생은 1986년 제2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강화용두레질소리는 2003년 인천시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됐다.

“명절 때면 친구들끼리 모여 막걸리 마시고 화투 치고 그러잖아요. 그런 거 말고 좀 재밌게 놀 수는 없을까 생각하다 어린 시절 동네 어른들이 징 치고 꽹과리 두드리고 피리 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내가면에서 민속놀이지도를 하고 계시던 최성원 선생님을 찾아갔지요.”

농악은 흥겨웠지만 실제 용두레질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머리는 상모를 돌리고 손은 징을 잡고 발은 동선에 맞게 펄쩍펄쩍 뛰고 나면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이 쑤셨다. 스승은 열정과 성실로 용두레질소리를 배우는 그를 예뻐해 강화 구석구석을 데리고 다니며 후계자로 키우고자 많은 공을 들였다. 2010년 그는 용두레질소리 상쇠 보유자로 지정받는다.

“제가 좋아서 시작한 건 맞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때 선생님께서 제게 올가미를 씌운 것 같습니다. 하하하.” 황 보유자는 “스승님이 나를 업어준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를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며 “저 역시 올가미를 씌울 후계자를 찾고 있는데 마땅히 하겠다는 분이 나오지 않아

걱정”이라며 껄껄 웃었다. 힘이 들면서 수입은 적어 직업으로 삼기엔 고민이 되는 용두레질소리를 ‘제가 하겠습니다’ 하며 선뜻 나서는 MZ세대가 있을 리 없다. 매주 수요일 모여 연습하는 30여 명의 보존회 회원의 연령대가 50대 이상이 대부분인 건 이런 이유에서다. 강사 일로 바쁜 부인 전영분(64) 씨까지 회원으로 끌어들여야 했을 정도라니….

“강화의 전통문화, 토박이인 제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이어가겠습니까. 열심히 해야죠.”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상모에 달린 하얗고 긴 헝겊 ‘돌모’가 여름 하늘을 향해 크게 원을 그렸다.


황길범 강화용두레질소리 보유자와 보존회 회원들이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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