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
시민 행복 메시지 : 칼럼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거는 기대
글. 임성훈 본지 편집장
멜로디와 노랫말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노래가 간혹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린 시절 들었던 ‘작은 연못’이란 노래가 그런 곡이었습니다. 멜로디만 놓고 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곡입니다. 하지만 동심이 받아들이기엔 노랫말이 적잖이 충격적입니다. 연못에 사는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서로 싸워 참혹한 결과를 낳는 내용이니 말입니다. 노래가 세상에 나오자, 누군가는 남과 북의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붕어의 싸움에 비유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전쟁 외에 노랫말에 깃든 은유를 나름대로 음미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외국곡 중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노래가 있습니다. ‘보니 엠(Boney M)’이 부른 ‘바빌론의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란 올드팝입니다. 흥겨운 멜로디 덕분인지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라는 황당한 가사의 아침 기상송(?)으로 유행을 타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 또한 멜로디와 노랫말의 미스매칭이 상당합니다. 신나고 경쾌한 멜로디를 장착했지만, 노랫말이 흥겨움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빌론 강가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어요”로 시작하는 이 노래에는 ‘바빌론 유수’(幽囚·잡아 가둠)라는 유대인들의 슬픈 과거사가 담겨있습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이 바빌론 유프라테스강 강가에서 고향을 그리는 노래인 것입니다. 멜로디와 리듬은 댄스곡을 방불케 하지만 의외로 노랫말의 뿌리는 구약성서의 시편입니다.
‘바빌론 유수’는 ‘디아스포라’(Diaspora)를 설명하는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애초 유대인을 일컬었던 이 용어는 지금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온 이주민들의 삶을 아우릅니다. 멜로디와 노랫말 사이의 괴리감이 확연함에도 불구, 이들 노래를 지금도 좋아하는 것은 곡의 완성도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인천에서 열리는 영화제인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올해로 13회를 맞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인천만큼 디아스포라의 삶과 역사가 녹아있는 도시도 드뭅니다. 무엇보다 인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이 시작된 곳입니다. 1902년 인천 제물포항은 하와이 이민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디아스포라의 흔적도 아직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한 예가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입니다. 대룡시장은 6·25 전쟁 당시 황해도 연백군에서 잠시 피난 나왔다가 고향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피난민들이 고향의 연백시장을 본떠 만든 골목시장입니다. 한과 그리움, 그리고 현지화에 이르기까지 디아스포라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작은 연못’과 ‘바빌론의 강가에서’가 이질적 요소들의 부조화를 곡의 완성도로 극복했듯이, 디아스포라영화제가 디아스포라의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는 완성도 높은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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