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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

인천의 아침-칼럼

2021-11-29 2021년 12월호


백령도의 하늘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바다 표면에 얼굴을 내민 채 새까만 눈동자를 깜박거리는 점박이물범, 기암괴석에 달라붙어 쉬고 있는 가마우지 떼. 평화의 섬 백령도에 느닷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때는 1951년 1월이다. 수만 명의 피란민들이 바다를 건너 백령도에 닿았다. 며칠만 참고 계세요, 금세 돌아오겠습니다. 부모, 처자식에게 남겨놓은 그 말이 마지막 인사였다.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가 지나며 바다 한가운데 무거운 장막이 드리워졌다. 사람들은 그걸 북방한계선(NLL)이라 불렀다. 귀향길이 막힌 사람들은 살길을 찾아 육지로 빠져나갔다. 언젠가는 돌아가리라. 꿈에도 잊히지 않는 고향 땅을 등질 수 없었던 사람들은 그대로 섬에 남아 타향에서의 삶을 꾸려나갔다.
음식으로나마 수구초심을 달래야 했다. 피란민들은 고향에서 먹던 냉면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돼지 뼈를 푹 고아 끓여낸 육수에 까나리액젓, 들기름, 겨자, 식초를 적당히 뿌려 먹는 ‘백령냉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백령도에 갈 때마다 다른 건 몰라도 ‘사곶냉면’ 식당을 찾아 백령냉면만은 꼭 먹고 나왔다.
백령도 주민들은 늘 위태로워 보였다. 한밤중 사격 훈련이 있을 때마다 전쟁 터지는 꿈을 꾸고 남북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대피소를 들락거리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호소했다. 먹고사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바다를 생계 터로 먹고사는 어민들은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으로 2중, 3중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중국 어선들은 쌍끌이로 치어까지 싹쓸이하는 것도 모자라 주민들의 어구와 어망을 마구 훼손하고 달아난다는 것이었다.
현안 가운데 하나가 주민들의 ‘이동권’이었다. 연안부두~백령도를 하루 한 번 오가는 여객선은 안개가 끼면 운항을 중단하기 일쑤였고 인원이 넘쳐 승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잦았다. 생각해 보니 백령도에 갈 때마다 안개가 끼는 바람에 적게는 하루, 많게는 3~4일 머물다 나온 기억이 난다.
‘백령공항 건설사업’이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사실이 반가운 것은 이 같은 백령도 주민들의 열악한 정주 여건이 다소나마 개선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시는 세 번의 도전 끝에 이번에 백령공항 예타 선정을 얻어냈다. 백령공항 건설을 위해 여러 차례 중앙부처를 찾아갔으며 지역정치권에도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해 왔다. 시는 2025년 착공해 2027년 개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백령공항이 건설되면 배로 네 시간 이상 걸리던 이동 시간이 한 시간으로 줄어든다. 인천과 백령도가 일일생활권으로 묶이게 되는 것이다. 변변한 병원 하나 없는 백령도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우왕좌왕하다 생명을 잃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러나 공항이 들어서면 신속한 이동으로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헬기 운항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작은 공항 하나로 인해 주민들의 삶의 질이 확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 시는 백령공항을 기반으로 하는 투자 유치도 들여다보는 중이다. 그럴 경우 제주도 부럽지 않은 섬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날아라! 백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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