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지난호 보기
-
몽(夢)땅 인천 Ⅱ
LH 아파트 VS 내 아파트6살 딸은 이 앞을 지날 때마다 “와~ 내 아파트다~”라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얼마 전 중산층 가구가 아파트를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을 경우,서울은 11.7년, 인천은 7년이 걸린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고,‘남이 사는 LH 아파트’가 아닌 ‘진짜 내 아파트’ 앞에서 기뻐할 날이 오겠죠? 글 백상현 시 소통기획담당관- 2020년 5월 29일 부평구 갈산동
2020-06-02 2020년 6월호 -
같은 하늘 다른 시간-6·25전쟁 70주년, 교동도
70년의 기다림,2.5km의 그리움 섬과 육지가 끊긴 게 바다 탓은 아니다. 단 2.5km의 바다를 사이에 둔 아픈 역사의 간극. 교동도와 황해도 연백은 6·25전쟁으로 철책이 둘러쳐지면서 ‘남북’으로 갈라섰다. 유배의 섬 강화도에서 또 유배된 섬 교동도. 그 안에는 두고 온 고향과 가족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잠시 머물다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 강산이 일곱 번 변했다.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낯선 땅으로 떠밀려 와야 했던 뼈아픈 기억. ‘죽기 전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기엔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고, 몸은 너무 늙었다. 이제 쉽사리 기대를 품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념의 파도가 달려들던 섬마을에도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
2020-06-02 2020년 6월호 -
호국보훈의 달-6·25 참전 유공자
그 날의 기억, 나라를 위해 바친 푸른 청춘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청춘을 바친 6·25 참전 용사들은 호국보훈의 달 6월이 되면 가슴이 더 먹먹해진다.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던 순간, 전장에서 스러져간 전우의 모습 등 처참했던 당시의 참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올해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이자 9·15 인천상륙작전 70주년을 맞는 해다. 전쟁 후 7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 참혹한 기억을 갖고 있는 세대들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그동안 잊고 살았다 해도 잠시라도 나라를 위해 싸웠던 분들을 기리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글 김윤경 본지 편집위원│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열다섯 어린 나이에 입대한 을지타이거여단“지금도 눈을 감으면 고향이 떠올라. 평양에 살았는데, 이제는 뭐… 죽기 전에는 가볼 수 없는 곳이지.” 이춘자(89) 할머니의 시선이 허공을 향한다. 눈빛엔 많은 표정이 담겨 있다. 이내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아흔을 앞둔 그에게 그날의 포화 소리와 피란민들의 아우성은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평양 시내에서 피란 나올 때 사리원이 막힌 거야. 그래서 황해도 해주에서 연백으로, 연백에서 교동으로 들어온 거지. 교동 들어오는 갯벌에서 오빠는 인민군에게 잡혀가고, 엄마와 나랑 동생들만 간신히 빠져나왔어.” 그는 열다섯 살 꽃다운 나이에 교동에 주둔해 있던 을지타이거여단에 입대했다. 전쟁 통에 한입이라도 덜기 위해 군에 입대했지만, 그 전쟁이 3년을 훌쩍 넘길지 상상도 못했다. “그냥 군에 있으면 밥은 먹겠다 싶어서 열여덟 살이라고 나이를 속여 입대했는데, 전쟁이 그렇게 길게 갈지 몰랐지.”저녁을 먹고 나면 으레 연
2020-06-02 2020년 6월호 -
기다림의 미덕 강화사자발약쑥
기다림의 미덕 강화사자발약쑥 인천만의 ‘그 맛’이 있다. 지역 음식에는 고유한 환경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끝낼 일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인천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바다와 갯벌에서 펄떡이고 있을 먹거리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맛을 기록한다. 그 열 번째는 천년 바람 맞으며 깊어지는 맛, 강화사자발약쑥이다.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강화사자발약쑥’. 이름 그대로 잎 모양이 사자의 발을 닮았다.흙 내음 솔솔, 기운이 ‘쑥쑥수더분한 땅 빛 좇아 강화로 간다. 이맘때면 강화는 쑥 향기로 그윽하다. 마니산 자락에 있는 화도면의 쑥 재배 농가. 지천으로 ‘쑥쑥’ 자라난 쑥을 뜯어내느라 어르신 일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마니산을 이고 평생을 밭에서 보내온 농사꾼들이 아니던가. 그들 손길이 지날 때마다 커다란 바구니가 수북이 채워진다. 음력 5월 5일 단오는 양기가 가장 성한 날이다. 이즘 수확하는 쑥은 햇볕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있어 약효가 뛰어나다. “바닷바람도 쐬고 쑥 냄새도 맞고 얼마나 좋아. 하나도 힘들지 않아.” 정해윤(83) 할머니는 아침 7시 반에 일찌감치 집을 나서 농장으로 왔다. 하루의 수고로움이 밥이 되는 삶이지만, 나이 든 몸 여태 정직하게 부릴 수 있어 고맙다. “강화 쑥이 대한민국 최고야. 땅이 워낙 좋으니까.” 정해연(80) 할머니는 서울에서 살다 2년 전에 강화로 돌아왔다. 열네 살 나이에 도시로 나가 노인이 되어 돌아온 자신을, 고향은 어머니처럼 품어주었다.강화약쑥은 마니산 자락 바닷가를 중심으로 오랜 세월 자생해 왔다. 하늘
2020-06-02 2020년 6월호 -
상생 위한 주민들의 노력-강화 교동
꽃으로 피운 교동의 ‘희망’해마다 봄이면 산으로 들로 날씨 좋은 계절을 즐기려는 나들이객이 넘쳐났다. 때맞춰 인천 곳곳에서는 꽃과 다양한 공연 등 오감이 호강하는 축제를 마련해 계절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다. 그런데 올해는 얘기가 달라졌다.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은 코로나19에 떠밀려 아름다운 자연마저 숨죽이게 만들었다. 올해 교동엔 어마어마한 유채꽃밭이 생겼다. 마을을 알리기 위해 주민들이 손수 가꾼 꽃밭. 비록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못했지만, 난정리에 핀 유채꽃밭에서 내년의 희망을 다시 꿈꿔본다.글 김윤경 본지 편집위원│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코로나19로 잠시 멈춘 노란 희망지난해 가을, 난정리 마을을 교동의 자랑거리로 만들겠다며 주민들이 10만 송이의 해바라기를 심으며 축제를 준비했다. 그런데 축제를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고 태풍 링링이 교동을 덮쳤다. 애써 키운 10만 송이의 해바라기는 모두 속절없이 쓰러져버렸다. 주민들은 속상한 마음을 달래며 내년 봄에는 이곳에 유채꽃을, 가을에는 다시 해바라기를 심어 교동을 알리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올봄, 아름다운 유채꽃밭을 기대하며 꽃씨를 뿌렸다. 해바라기처럼 노란 희망을 유채꽃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전개되면서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다. 제주도를 비롯한 각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몰릴 것을 걱정해 노란 유채꽃밭을 모두 갈아엎고 있었다. 매년 노란빛으로 물들이던 유채꽃밭은 아예 올봄 풍경에서 ‘삭제’됐다.난정리 주민들은 유채꽃밭을 갈아엎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비료도 주지 않고, 그냥 내버려뒀다. 정을 주지 않으면 나
2020-06-02 2020년 6월호 -
인천의 맛 - 약쑥 밥상
향긋 쌉싸래한 인생의 맛향긋 쌉싸래함이 입안 가득 맴돈다. 쑥을 뜯어다 차린 정갈하고 소박한 밥상. 그 안엔 평생 산과 들에서 허리를 굽혔을 우리 어머니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강화도 마니산 자락은 땅에 유기질이 많고 물 빠짐이 좋으며 해풍이 불어 쑥이 자라기 좋다. 농가에서도 잡풀이 섞이지 않도록 약쑥을 정성껏 가꾸어 3년 이상 숙성시킨다. 강화군에서는 해마다 수확기가 되면 ‘강화약쑥품질보증위원회’를 통해 약쑥의 품질을 철저히 관리한다. 그러니 쑥이라면 단연 ‘강화사자발약쑥’이다. 쑥은 나물과 약초의 경계를 오가며, 몸을 살찌우는 동시에 병을 예방하고 고치기도 한다. 쑥은 음력 3월 초와 5월 초에 잎을 뜯어 볕에 말려 사용한다. 이른 봄에 올라오는 애쑥은 부드럽고 맛이 좋아 나물로 무쳐 먹고, 단오 무렵 캐는 쑥은 맛과 효능이 깊어 약용으로 쓴다. 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7년의 기다림 약쑥시래기밥 딸아이가 돌이 막 지났을 무렵, 시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마니산 입구에 식당을 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났다. 음식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던 새댁은 베테랑 ‘아줌마 셰프’가 됐다.안선임(41) 씨는 읍내에서 강화 깊숙이로 시집와 줄곧 뜨거운 불솥 옆에서 살았다. 약쑥을 넣은 시래기밥에 쑥두부, 순무김치… 강화에서 난 재료로 차려낸 정갈한 밥상. 주인장의 정성스러운 손끝에서 나온 음식은 조촐하지만 야무진 맛이 난다. 시간과 정성을 다하는 ‘슬로푸드’다. 약쑥 잎을 말려 숙성시키는 데만 7년이 걸린다. 그렇게 사계절을 여러 번 보낸 끝에서야, 자연과 사람의 노고가 담긴 귀한 밥상이 완성된다. 모든 음식은 안 씨가 손수 만들
2020-06-02 2020년 6월호 -
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창영초등학교
찬란하고 영화로운 역사세상 모든 학교는 귀하다. 허나 그 속에서도 조금은 특별한 전통과 저력을 품은 곳이 있다. 학교를 통해 도시를 들여다보는 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그 첫 번째 등굣길은 인천 최초의 공립보통학교 ‘창영초등학교’다. 굽이굽이, 찬란하고 영화로운 역사로 빛나는 그 길을 인천시 홍보대사 오유민(영종중학교 2학년) 학생이 따라 걸었다. 글 전규화 자유기고가│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인천 최초의 공립보통학교 탄생창성할 ‘창昌’에 영예로울 ‘영榮’. 이름 그대로 창영초등학교는 인천 교육의 첫발이자 명예로운 역사의 시작점이다. 1883년 개항과 함께 몰려든 외세는 조선인들을 지금의 동구 창영동 일대로 밀어냈다. 이후 1899년 개통된 경인선을 기준으로 마을은 위아래로 갈라졌다. 북촌과 남촌. 당연히 조선인의 몫은 모든 면에서 열악했던 남촌이었다. 비루한 삶 속,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교육이었다. 남촌 주민들은 학교를 세우기로 뜻을 모았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1907년 학교 문을 열었다. 창영초등학교의 전신前身, 인천 최초의 공립보통학교는 그렇게 탄생했다.개교 12년 뒤 창영초등학교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낸다. 서슬 퍼런 대일항쟁기, 학생들은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세 운동 소식을 접한다. 곧바로 동맹 휴학을 결정한 학생들은 교실이 아닌 거리로 나가 독립선언서를 뿌리며 만세를 불렀다. 이는 인천 만세 운동의 시작이자, 독립을 향한 외침이 인천 전역으로 퍼지는 기폭제였다. 교육을 통해 희망을 찾고자 했던 당시 조선인들의 간절한 염원이 자부심으로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2019년 3월, 창영초등학교에는 3·1운동 100주년 기
2020-06-02 2020년 6월호 -
메이커스, 인천 영림목재
촘촘한 나이테단단한 나무 오늘도 당연하게 쓰이는, 무심코 손에 닿는 물건들. 그 누군가가 일터에 틀어박혀 인생을 내어주고 만들어낸 것들이다.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며 인천 그리고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자랑스러운 ‘메이커스’를 만난다. 그 다섯 번째로 지나온 50년처럼 나아갈 100년, 촘촘하게 나이테를 채우며 더 단단해질 ‘영림목재’를 찾았다.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영림목재 박인성 부장.미국 중부지역에서 들여온 250여 년 된 호두나무와 함께.열대우림 속, 큰 나무와 만나다미 대륙의 광활한 고속도로, 12시간을 꼬박 차로 달려 숲으로 간다. 찾는 나무가 없으면 다음 목적지를 향해 또다시 달려야 한다. 혼자 앞만 보고 가야 하는 기나긴 여정. 그 직선의 길 위에서 떠올리는 건, 오직 나무다. ‘영림목재’의 박인성(51) 부장은 스물네 살에 이 회사에 입사했다. 처음부터 목재에 뜻이 있던 건 아니었다. 매일 회사 문턱을 넘으며 자연스럽게 나무에 이끌려 원목 제재 사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30대 중반부터는 나무를 사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1990년대 후반, 처음 발 디딘 곳은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의 열대림이었다. 낯선 이국땅에 도착하자마자, 경비행기를 타고 서너 시간을 날아 밀림으로 갔다. 또다시 보트를 타고 장대한 강줄기를 따라 벌목장으로. 한 줄기 햇살 비집을 틈도 없는 빽빽한 우림 사이를 현지인들과 연결된 밧줄 하나에 의지해 걷고 또 걸었다. 원시와 문명이 충돌하는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벌거벗은 원주민들이 밀림을 누비고, 한편으론 귀를 찢는 굉음 속에 거목들이 쓰러져 갔다. 2018년 한 해 지구상에서 사라진 숲은 벨기
2020-06-02 2020년 6월호 -
인천, 사람-시사만평가 유사랑
상처 입은 영혼의 오디세이 시사만평가 유사랑27년 역사의 이 처음으로 인천시 정책 만화를 연재한다. 시사만평가이며 커피 화가인 유사랑이 ‘함축과 재미’를 모두 담아 꾸려갈 계획이다. 그에게 인천은 지치고 힘들 때 위안을 주는,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곳보다 더 고향 같은 도시다. 지면을 책임지게 되어 작가로서 또 시민으로서 자부심이 크다.글 정경숙 본지 편집장│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유사랑 작가는 근 30년을 이방인으로 살았다. 20년 넘게 인천에 살면서도 집 밖은 낯선 도시고, 20년 넘게 활동한 서울도 해가 지면 서둘러 떠나야 할 일터일 뿐이었다. 돌아보면 그는 어디에도 온전히 속한 적이 없다. 시사만평가로서의 삶은 타협할 줄 모르는 유사랑 작가에게 위태로운 줄타기 같았다. 이런저런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는 적당히 머무르는 대신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신문사에서 신문사로 떠돌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25년 언론계 생활을 청산할 때는, 아무 미련도 남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평생 모은 돈으로 마련한 식당에서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억지로 3년을 버틴 끝에 사업을 접고 나니, 서울에는 그나마 일터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치고 상처 입은 유사랑 작가가 머물 곳은, 별다른 애정도 관심도 없었지만 가족과 집이 있는 인천뿐이었다.처음 인천에 살 집을 마련할 때 유사랑 작가가 관심 있게 본 것은 지하철 1호선 노선도가 전부였다. 중앙 일간지가 모여 있는 서울시청역까지 수월하게 출퇴근할 수 있으면서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지점에 주안역이 있었다. 아내와는 농담 반 진담 반 10년마다 새로운 도시에 살아보자며, 첫 10년을 살 곳으로
2020-06-02 2020년 6월호 -
인천 공무원이 간다-박규웅 인천시청 건강체육국장
9급 서기보로 시작, 공무원 외길 40년 걸어온 ‘공직 선산지기’공무원 박규웅공무원은 지역 사회를 개선할 의무와 권한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성실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시민의 욕구를 찾아내 개선하는 일에 팔을 걷어붙여야 합니다.글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일요일 오전 7시30분 인천시청 건강체육국장실. 대추씨 같은 사람이 서둘러 노란점퍼로 갈아입는다. 책상 위엔 A4용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오전 8시15분. 컴퓨터 모니터와 보고서류를 한참동안 검토하던 그가 벌떡 일어나 청사 별관 IDC빌딩으로 향한다. 왼손엔 두툼한 서류와 업무수첩이 들려 있다. 6층 재난상황실에 들어선 그가 열심히 메모를 한다. 회의진행을 준비하는 것이다. 코로나19 대응회의가 끝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시 재난대책안전본부로 내려온 그가 그새 쌓인 보고서를 들춰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회의, 보고, 모니터, 출장, 지시 등 하루일과가 끝나는 시간은 밤 11시~12시.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재난안전대책본부 통제관의 운명이다. “시장님을 중심으로 요즘 시청직원들은 다 저처럼 살아요. 코로나19 발생 이후 제대로 쉬어본 날은 1월 28일 설날 당일뿐이었던 것 같네요. 잠잠해 질만하면 튀어나오고 해서 긴장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박규웅(59) 인천시 건강체육국장. 그는 오는 7월 공로연수에 들어간다. 정년을 앞두고 공직생활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 그렇지만 정년 뒤 계획은커녕 어떤 다른 생각을 할 0.1mm의 틈도 없다. 허리척추 골절 영구장애로 불편한 몸이지만 오늘도 딱딱한 야전침대를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와의 사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1980년 9급서기보로 공무
2020-06-02 2020년 6월호
- 자료관리담당자
-
-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2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