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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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링 인천-강화도 고려산
인천의 자연, 시민의 색으로 물들다‘환경특별시’ 인천은 168개 섬을 비롯한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습니다.삶에 쉼표를 찍는 여유와 다채로운 매력이 살아 숨 쉬는 인천의 자연. 인천 작가의 스케치에 시민 여러분의 색과 빛을 입혀주세요.다시, 봄을 꿈꾼다. 올봄은 강화도 고려산에 지천으로 피어날 진달래처럼 분홍빛이기를. 고려산은 고구려 장수 연개소문이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옛 명칭은 오련산으로, 천축조사가 산에 올라 오색 연꽃이 핀 오련지를 발견한 뒤 오색 연꽃을 공중에 날려 떨어진 곳에 각각 다섯 개의 사찰을 세웠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지금은 적석사와 백련사, 청련사만 남아 있는데, 고려산 진달래 산행은 대개 이 세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봄, 고려산에 올라 곱디고운 진달래의 향연을 만끽하자. 회색빛 시름을 다시 분홍빛으로 물들이자. 이달의 드로잉다시 봄을 기다리는 강화도 고려산정준식 작가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11회의 개인전과 60여 회의 국제전 및 단체전에 참여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였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인천미술협회 이사, 인천수채화연구회 사무국장 등을 역임하고 있으며, 부평구청, 인천여성가족재단, 인천상공회의소, 인천가정법원 등에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2월의 시민 작가를 소개합니다!김현희 미추홀구 경인북길강다엘 남동구 호구포로한지은 부평구 부평대로김남숙 미추홀구 경원대로김진남 연수구 해송로컬러링 작품을 보내주신 시민에게는 추첨을 통해 소정의 상품권을 선물로 드립니다.[‘컬러링 인천’ 보내는 방법] ① 우편 : 우)21554 인천광역시 남동구 정각로 29 인천
2021-03-02 2021년 3월호 -
仁生 사진관
우리, 다시, 날다사연 최지혜(계양구 효성동)인천이 좋은 이유 중 하나, 바로 공항입니다. 공항은 설렘이고 추억입니다. 친구들과의 우정 여행, 두근거리던 신혼여행, 특별했던 가족 여행, 부모님의 생애 첫 해외여행을 함께했던 곳이 공항이기 때문입니다. 늘 가까이 있을 것만 같던 공항이 멀어진 지도 1년이 되어갑니다. 꼭 해외로 떠나야 좋은 여행이라 할 수는 없지만, 공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움입니다. 2001년 3월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이 올해 20주년을 맞았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공항이 있어 인천은 대한민국의 관문 도시가 될 수 있었고, 더 높이 날 수 있었습니다. 하루빨리 마음 편히 공항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다리를 건널 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영종도의 풍광이 그립습니다. 인천국제공항 개항 20주년을 기점으로, 지난 1년간의 그리움이 기분 좋은 만남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 다시, 날아올랐으면 합니다. ‘仁生 사진관’은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인천을 무대로 살아가고 있는 시민 여러분의 사진과 사연을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리며, 보내주신 사진을 실어드리거나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어드립니다.보내실 곳 : goodmorningic@naver.com
2021-03-02 2021년 3월호 -
김영승의 시선(詩선)
제비최승렬(崔承烈 : 1921~2003)제비 노래는비, 비비비 배배옥쪼글크라아리넷봄노래.햇볕 하아얀창을 열면버들가지포룜히물들어비, 비비비 배배 옥쪼글크라아리넷봄노래.글 김영승뻐꾸기 울음소리는 뻐꾹, 그래서 그 이름은 뻐꾸기, 2,500년 전 에서부터 이후 그 에 전주箋註한 주자朱子의 등등 중국고전에서의 갈국?鞠, 포곡布穀, 곽공郭公 등등도 다 그 울음소리를 딴 뻐꾸기, 영어로는 쿠쿠cuckoo…… 그런데 제비는 지지배배? 제비가 지지배(계집애)보다 더 지지배배라서 지지배배인가? 그 울음소리를 표현할 길 없었는데 해결됐다. 나는 이 시가 수록된 시집 (익문사, 1975)을 내 문학의 스승 정서웅(鄭瑞雄 : 1942~) 선생님께 소개받았다. 고2 때의 일이다. 정서웅 선생님께서는 위 최승렬 선생님을 중1때 만나셨다고 쓰고 계신데, 잊지 못할 스승 최승렬 선생님을 인천중학교에 입학해서 만났다고 쓰고 계셨다.빈부와 관계없이 사람들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는 이야기까지 있었겠는가. 가난의 상징은 흥부가 아니라 놀부 아닌가. 코로나를 없애준다 하여도 나는 결코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제비가 내 다리를 부러뜨린다 하여도. 옥쪼글 이름을 딴 브랜드, 간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옥쪼글!
2021-03-02 2021년 3월호 -
소소한 인천사
인천 지명꽃도 없고 섬도 아닌 ‘화도진’화수동에 있는 화도진은 1866년 병인양요 이후 거듭된 외국 함대의 침입에 대비해 고종 16년(1879)에 설치한 군사 기지다. 그때 인천의 북쪽을 맡을 바닷가 군사 기지로 지금의 서구 연희동에 연희진이 생겼고, 남쪽을 맡을 기지로 이곳 화도진이 생겼다. 당시 화도진이 관할한 해안포대는 모두 8개로, 가장 규모가 큰 주안갯골 입구에 6개의 포대를 배치했다. 또 승기갯골과 소래갯골에 각각 호구포대와 장도포대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지금 만석동의 괭이부리와 북성포, 제물포, 범아가리(호구포) 등지의 바다를 지켰다. 연희진은 지금의 연희동과 원창동, 가좌동 일대의 포대를 담당했다. 당시 서울로 들어가려는 배는 반드시 인천 앞바다를 거쳐야만 했기 때문에 이곳에 군사 방어 시설을 만든 것이다. 그때 조정에서는 어영대장 신정희를 보내 포대와 군영을 만든 뒤 화도진이라 이름을 붙였다. 당시 화도진은 남북 방향으로 향하는 언덕 지대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진지에서는 바다를 잘 바라볼 수 있지만 바다 쪽에서는 진지가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군사 시설로는 최적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던 셈이다. 일본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화도진은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1930년대에 와서는 소나무 숲이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 ‘화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마도 당시 이곳이 ‘꽃섬’이라 불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꽃섬’을 한자로 바꾸다 보니 ‘화도花島’가 되었다. 하지만 ‘화도’, 즉 ‘꽃섬’은 사실 꽃이나 섬과는 아무 관계가 없이 생긴 이름이다. 이곳은 땅 모양이 육
2021-03-02 2021년 3월호 -
인천 미소
보고 싶다 듣고 싶다 ‘시민 목소리’시민으로 특별한 환경특별시 인천이 ‘환경특별시’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는 소식이 반갑습니다. 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의식을 일깨울 수 있는 좋은 내용을 부탁드립니다. 환경특별시 인천을 위해서는 시민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쓰레기 처리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정보를 통해 시민의식을 함께 고취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고영무 남동구 하촌서로잘 버리고 덜 버리는 지구의 스타요즘 미디어에서 ‘버리스타’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환경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점에, 인천이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시민이 버리스타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를 부탁드립니다. 제대로 잘 버리고, 덜 버리는 습관을 통해 우리 모두 지구의 스타, 버리스타가 됩시다!이멜다 계양구 당미길스케치에 비친 색다른 인천올해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스케치에 비친 인천’ 코너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평소 자주 가던 곳이라 익숙한데도, 사진과 수채화의 절묘한 조합으로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평범하고 비슷한 사진에 식상한 독자들에게 수준 높고 참신한 볼거리를 선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인천이 스케치에 비치길 기대하겠습니다.박정순 부평구 체육관로코로나19 없는 봄나들이 코로나19로 모두가 지쳐가는 요즘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가 힘을 합쳐 견뎌내고 격려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봄이 찾아옵니다. 방역 수칙을 철지히 지키면서 인천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봄나들이 장소에 대한 내용이 실렸으면 합니
2021-03-02 2021년 3월호 -
시민이 소개하는 우리 동네 - 송현동
추억을 사고파는 송현시장글 이선우(재능중학교 2학년)나는 엄마와 함께 동네에 있는 송현시장에 자주 간다. 송현시장은 동인천역 북광장 건너편에 있는 작은 시장이다. 어렸을 땐 시장에 갈 때마다 엄마에게 어묵을 사달라고 졸랐다. “그 녀석 키도 크고 잘생겼네.” 시장 입구 어묵 가게 아저씨가 나를 보면 늘 하셨던 말이다. 그 말이 듣기 좋아 지금도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아저씨가 안에 계신지 기웃거리곤 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열다섯 살이 된 지금은 삼겹살을 더 좋아한다. 물론 장바구니를 드는 건 내 몫이다. 가끔 엄마가 아프시면 아빠가 출동하신다. 시장에 있는 반찬 가게에서 내가 좋아하는 진미채볶음, 계란말이 등을 사 오신다.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만든 반찬을 먹으면 어색하면서도 맛있다. 송현시장 반찬 가게 덕분에 엄마가 아프셔도 반찬 걱정을 하지 않아 좋다. 30분 정도면 송현시장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두부를 직접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는데, 언제나 갓 만든 두부를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진다. 아주 오래된 할머니 보리밥집은 맛집으로 소문나 식사 시간이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우리 동네에는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과 여름에 문을 여는 물놀이터 ‘또랑’이 있다. 동인천역에서 가깝고 무료라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박물관 구경을 한 후 집에 돌아갈 때 바로 아래 있는 송현시장에서 맛있는 반찬을 사 가는 것도 좋다. 여름이 오면 또랑에서 신나게 놀고 송현시장 할머니 보리밥집에서 시원한 콩국수를 먹는 것도 추천한다. 코로나19가 오기 전엔 주말마다 ‘달빛거리 송현 야시장’이 열렸다. 친구들과 북적이는 야시장 구경을 하
2021-03-02 2021년 3월호 -
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⑩ 송도고등학교
새로운 100년 역사를 향해 가는 길세상 모든 학교는 귀하다. 허나 그 속에서도 특별한 전통과 저력을 품은 곳이 있다. 학교를 통해 도시를 들여다보는 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그 열 번째 등굣길을 따라 옥련동 비탈길을 오른다. 오래된 송도에서, 멀리 새로운 송도를 굽어보듯 자리한 송도고등학교. 한 세기가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그곳을 한국 농구의 전설 유희형(47회 졸업) 전 KBL 심판위원장과 함께 걸었다.글 전규화 자유기고가│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남다른 교육이 탄생시킨 농구 명문184cm. 훤칠한 키의 남성이 학교에 들어선다. 초창기 한국 농구 스타플레이어의 계보를 이었던 유희형이다. 올해 74세라는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역시나 농구 코트다. 송도체육관. 손자뻘 되는 후배들이 구슬땀을 흘리는 한국 농구의 산실이다. “내가 운동할 때만 해도 체육관 같은 건 꿈도 못 꿨어. 교실 6개를 이어붙여 체육관으로 만들었지. 여름엔 쌀과 이불을 가져와 함께 먹고 자며 훈련했어. 그런데도 그렇게 성적이 좋았다고.”유희형은 한국 농구의 가장 눈부셨던 시절을 함께했다. 송도중학교 3학년 시절 모교를 사상 처음 전국대회 1위에 올려놨던 그는 1968년 국가대표에 선발되며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주전 선수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득점 기계 신동파, 농구 천재 김영일뿐만 아니라 당시 최고의 선수로 손꼽히던 이인표, 김영기가 버티고 있었다. 남은 한 자리가 바로 최연소 국가대표 유희형이었다.“내 농구 인생과 송도고 농구부에는 은인이 한 분 있어. 고故 전규삼 선생님이야. 송도고가 개성에 있을 때부터 교사로 재직하셨는데, 만능 스포츠맨이었어.
2021-03-02 2021년 3월호 -
인천 문화재 이야기 ③ 인천우체국
‘100년의 사연’들이 거쳐간 동·서양 혼합 근대건축물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중구 신포사거리 인천항 방면 모퉁이의 육중한 건물이 겨울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정문에 붙은 ‘인천중동우체국 이전 안내’란 플래카드가 가볍게 펄럭인다. 여느 건물과는 달리 정문이 사거리 방면 건물 모서리에 나 있는 것이 독특하다. 정문 위 화강암엔 ‘인천우체국’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거칠게 다듬은 화강암을 기단처럼 처리하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아 올린 2층 벽돌조의 이 건물은 1923년 완공한 ‘인천우체국’(중구 항동6가 1)이다. 2003년 인천우체국이 연수구 신청사로 이전한 뒤 중·동구 지역을 관할하는 ‘인천중동우체국’이 들어왔고, 인천중동우체국마저 2019년 5월 신흥동 정석빌딩으로 이전하면서 지금은 비어 있는 상태다. 1982년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인천우체국은 그리스 양식의 원형 기둥과 르네상스 양식을 절충한 모습으로 건축한 인천의 대표적 근대건축물이다.개항 이듬해인 1884년 11월 17일 서울엔 우정총국, 인천엔 분국이 설치된다. 누구나 자유롭게 서신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근대적 통신 제도의 시작이었다. 당시 인천분국장엔 월남 이상재 선생이 임명됐으며 최초의 우표인 문위文位 우표도 발행했다. 인천감리서 안에 두었던 인천분국에서 스탬프를 찍은 것도 잠시, 12월 4일 우정총국 개업 축하연에서 벌어진 갑신정변으로 우정총국은 한 달도 못 가 폐쇄된다. 우편 행정이 재개된 때는 11년 뒤인 1895년이다. 이때 서울과 인천에 우체사를 두었는데 인천우체사의 관할 지역은 제물포항 일대와 인천 읍내였다. 인천우체사와 서울우체사에서
2021-03-02 2021년 3월호 -
특집-인천시 맞춤형 핀셋 지원 현장을 가다
“추운 겨울, 따뜻한 손길 감사합니다”문화예술인, 소상공인 등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부와 별개로 시 자체 5,754억원 지원글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사진 장현선 자유사진가지난 2월 8일 미추홀문화회관에서 ‘인천예술인 긴급생계지원금’을 신청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지원금은 체크카드 형태로 지급된다.겨울바람이 쌩쌩 불던 지난 2월 8일 오후, 중구 전동 미추홀문화회관. 옛 인천여고를 리모델링한 이 건물로 사람들이 한두 명씩 들어왔다. 2층에서 발열 검사와 손 소독을 마친 사람들이 인천시 문화예술과, 인천문화재단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서 간단한 상담을 마친 사람들이 한 장의 카드를 손에 쥔 채 밝은 표정으로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날 발걸음을 한 사람들은 인천시가 지역 예술인들을 위해 마련한 ‘인천예술인 긴급 생계지원금’을 받기 위해 온 예술인들이다. 이명지(75) 사진작가는 “온라인 전시만 할 수 있어 어려움이 많던 차에 지원을 받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 수혜자는 “코로나 이후 막노동이나 택배, 음식 배달을 하는 예술인들이 많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문화예술인, 소상공인 등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장 신속하게 지원하는 ‘인천형 핀셋 지원’ ‘맞춤형 긴급 지원’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정부의 3차 재난지원금과는 별개로 시가 자체적으로 세운 5,754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면서 지원이 시급한 대상자들이 혜택을 받고 있는 것. 지원 대상은 집합금지 및 집합제한업종 소상공인, 문화예술인과 관광업체, 어린이집, 법인택시와 전세버스 종사자, 청년층으로 이들은 더 두터운 지원을 받는 중이다. 인천시
2021-03-02 2021년 3월호 -
그간 잘 지내셨나요?② 김봉길 전 인천Utd 감독
‘봉길 매직’으로 중국 대륙 축구를 깨우다글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지난해 중국 프로축구팀 감독을 하다 잠깐 고향을 찾은 김봉길 전 인천 Utd 감독이 지난 2월 14일 인천시청 앞 광장 ‘인천愛뜰’에서 활짝 웃고 있다.봉길 매직, 축구인 김봉길(55)이 지휘봉을 잡으면 어김없이 이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마치 마술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그가 이끄는 팀마다 예상을 뒤엎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한다. 지난해 사령탑을 맡은 중국 ‘산시성(山西省) 시안(西安) 창안 FC’도 그랬다. 중국 2부 리그 최하위로 “잔류만 해도 성공”이라던 팀이었다. 김봉길은 그러나 휘리릭, 봉길 매직으로 이 팀을 중위권으로 올려놓았다. 부평 출신으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축구 역사를 새로 쓴 김봉길을 신축년 설 연휴 마지막 날 ‘인천愛뜰’에서 만났다. 그는 소띠 해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중국에서 잠시 귀국, 계양구 자택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귀국하자마자 코로나 검사와 자가격리 2주 하고 나니 시간이 금세 지나가네요. 현재 중국의 1·2부 리그 구단주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진로를 고민하고 있어요. 팀이 확정되는 대로 중국으로 갈 겁니다.” 김봉길은 “얼마 전 산시팀과 1년 계약을 끝내고 중국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라며 “1년 만에 고향에 오니 모든 것이 정겹기만 하고 참 좋다”고 말했다부평 고향, 달리기 잘해 부평동초 3년 때 스카우트, 부평동중·부평고 축구부 창단 주역 고향, 나고 자란 곳. 김봉길의 고향은 부평4동이다. 현재 부평대로 우체국 뒤쪽 골목에서 태어나 쭈욱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김봉길은 여간 개구쟁이가 아니었다.
2021-03-02 202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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