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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 박스
52 인포 박스인천의 문화 행사, 공연, 강좌 등 알찬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인천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 노력에 따라 일정이 변경 또는 취소될 수 있습니다. 문의처에 꼭 확인 후 참여 부탁드립니다.01 재난극복 및 일상회복 지원금 신청하세요인천시민의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원금을 지급합니다.신청기간- 온라인(시군구 홈페이지) : 2022년 1월 31일까지- 오프라인(읍면동) : 2022년 1월 31일까지지급기준 : 2021년 10월 31일 자정 기준, 시에 주민등록을 둔 내·외국인지급액 : 1인당 10만원지급방식 : 인천e음카드에 포인트 지급(사용 캐시백 없음)사용기간 : 인천e음카드 충전일로부터 3월 31일까지문의 : 미추홀콜센터 ⓣ 032-120, 일상회복 지원금 콜센터 ⓣ032-458-7231~402 민주화운동 관련자, 유족을 지원합니다‘인천광역시 민주화운동 관련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및 유족에 대해 1월부터 지원을 시작합니다.지원내용 : 생활지원금(10만원/월), 명예수당(10만원/월),장례비(100만원)공통요건 : 기준일(신청일) 현재 시에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생활지원금 지급대상 : 중위소득의 100% 이하인 가구의 민주화운동 관련자 및 유족(사망으로 인한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된 경우에는 중위소득과 상관없이 지원)명예수당 지급대상 : 65세 이상 민주화운동 관련자(생활지원금을 받는 사람은 제외)장례비 지급대상 : 유족 또는 장례는 치르는 사람(민주화운동 관련자 사망 시)신청장소 : 신청인 주민등록 주소지 관할 군·구(주민센터)문의 : 시 협치인권담당관실 ⓣ 032-440-412403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에 지원하세요인하대학교
2022-01-06 2022년 1월호 -
인천 문화재 이야기
일본 영사관, 인천부청, 인천시청이었다가 지금은 중구청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2021년 12월 인천중구청하얀색의 가로 벽과 연한 밤색의 세로 벽이 모자이크로 무늬진 건물이 새파란 겨울 하늘 아래서 인천항을 바라보고 있다. ‘개항문화 미래도시 사람사는 복지추구’. 건물 출입구 위에 붙어 있는 슬로건이 이 건물의 성격을 말해준다.‘인천중구청’(인천시 중구 신포로 27번길 80, 등록문화재 249호)이 이 자리에 들어선 때는 1933년이다. 당시 출입구 기둥엔 ‘仁川府廳’(인천부청)이라 한문으로 쓴 세로 현판이 붙어 있었다. 때는 일제강점기. 인천부청은 말하자면 지금의 인천시청이었는데 일제의 조선 침략 전초기지이자 식민 통치의 본산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었다. 일제는 제물포 앞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에 이 건물을 세웠다.인천중구청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벽돌을 쌓아 만든 건물이다. 처음 건축했을 당시 이 건물엔 방열기가 있는 50개의 방과 지하층이 있었다. 수세식 화장실에 전등 57개, 전기시계 13개, 사이렌 1개, 피뢰침 1개 등의 시설과 공전식 구내전화 27개, 직통전화 50개 등 당시로선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층계와 바닥은 화강암 석재를 사용했으며 스틸새시의 창문과 밝은 갈색 타일로 마감을 했다. 인천중구청에 앞서 이 자리엔 1902년 ‘일본영사관’이 있었다. 청일전쟁(1894~1895)에서 승리한 일본은 일본 의양풍의 2층짜리 건물을 지었는데 정면 2층에 난간이 있고 발코니와 아치 모양의 처마가 있는 건축물이었다. 일제는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1906년 건물의 이름을 ‘이사청理事廳’으로 바꾸었으며, 조선을 강제병합한 1910년엔 인천부청으로 개칭한다. 이 건물은
2022-01-06 2022년 1월호 -
소소한 인천사
작은 포구에서 근대화의 중심으로 ‘제물포’ 제물포濟物浦는 인천을 대표하는 지명으로 곧잘 쓰이곤 한다. 그런데 원래 제물포는 현재의 중구 중앙동과 항동 일대에 위치한 작은 포구였다. ‘제물’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12세기 중국 기록에서부터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고려 중기 때 송나라 사신단 서긍이 고려의 풍물과 제도를 기록한 에 따르면 ‘제 물사’에 들러 예식을 지냈다는 구절이 나오고, 나 에도 ‘제물량’이란 지명이 등장한다.제물포는 아주 오래전에 우리말을 한자어로 바꿔 쓴 것이라 여겨진다. 포구는 물이 드나드는 곳, 다시 말해 물을 건너는 곳이고 이 의미를 담은 한자어로 교체한 것이다. ‘건너다’는 ‘제濟’로, ‘물’은 같은 발음의 ‘물物’로 변경하고, 여기에 ‘물이 들어오는 곳’이란 의미의 우리말 ‘개’를 한자어 ‘포浦’로 옮겨 덧붙인 것이다. 과거 한적한 나루였던 제물포는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일본인과 중국인, 서양인 등이 모여 사는 조계租界가 생기면서 큰 변화의 물결을 맞이한다. 조선 정부가 이곳에 개항장 일대의 행정, 재판, 치안, 조세, 외교 등을 담당하는 인천감리아문을 두었고 인천의 중심이 이동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제물포는 인천은 물론 우리나라 근대화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1883. 01. 12인천항 일본 조계지 정함인천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거점으로 꼽힌다.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외국인들이 속속 밀려들었고, 당시 열강들의 각축장인 동시에 국제도시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이때 생긴 것이 바로 외국인 거류지, 조계지라고 불리는 구역이다. 1883년 일본과 체결한 조선국인천항구
2022-01-06 2022년 1월호 -
仁生 사진관
2022년 힘차게 출발!사연 한은정(남동구 논현동)새해가 되면 저희 가족만의 행사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월미도에 가는 것이지요. 중년의 부부와 초등학생 아 이들이 모두 좋아할 만한 장소로 월미도만 한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는 바다를 바라보며 지난해 묵 은 감정들을 털어버리고 올해는 바다처럼 넉넉하게 품으며 살아보자 다짐합니다. 한참 진지한 저희 부부와 달리 아이들은 테마파크에서 놀이기구를 타며 연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립니다. 꼬마였을 땐 엄두도 못 내던 바이킹을 이제는 무서워하지 않고 타는 걸 보면 아이들이 참 많이 컸구나 싶습니다. 아마 몇 년 후엔 친구들끼 리 삼삼오오 몰려다니느라 부모와의 바깥 나들이는 피하겠지요. 그때가 되면 이 연례행사도 옛 추억이 되겠 지만 그전까진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려고 합니다. 새해 또 어떤 일들이 우리 가족에게 다가올지 기대 반 두려 움 반입니다. 만약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오늘의 다짐을 잊지 않고 지혜롭게 이겨내겠습니다. 2022년, 모든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仁生 사진관’은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인천을 무대로 살아 가고 있는 시민 여러분의 사진과 사연을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리며, 보내주신 사 진을 실어드리거나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어드립니다. 보내실 곳 : goodmorningic2022@naver.com 문의 : 시 소통기획담당관실 032-440-8305
2022-01-06 2022년 1월호 -
인천시립도서관 한 세기
인천시립도서관 한 세기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1970년대 율목동 ‘인천시립도서관’ 언덕길엔 언제나 끝이 보이지 않는 학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도, 열람실 한 자리를 차지하기란 율목동 하늘에 뜬 새벽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인천에서 유일한 공공도 서관이다 보니 인천 지역 학생이란 학생은 전부 이 도서관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이따금 자리를 배분해주는 ‘형’들이 도서관 출입을 통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동네에서 주먹깨나 쓰는 이 ‘동네 형’들은 도서관 입구를 기도처럼 지키며 자신이 알거나 친한 후배들에게 자리를 주는 ‘특혜’를 베풀었다. 어렵게 얻은 자리에서 낭패를 겪는 일도 있었다. 잠깐 동안 화장실이나 휴게실을 다녀온 사이 책상에 놓아둔 참고서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증발한 책들은 며칠 뒤 인근 배다리헌책방에서 발견되기 일쑤였다. 먹고 살기 힘든 시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시립도서관은 중·고생, 재수생, 고시생과 공무원 준비생이었던 이들에게 아름다운 미래의 꿈이 영그는 희망의 공간으로 기억된다. 인천시립도서관(현 미추홀도서관)의 역사는 19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1년 11월 1일 중구 송학동 현재의 맥아더 장군 동상 자리엔 청광각淸光閣이란 식당이 있었다. 청광각은 독일 무역회사인 ‘세창양행’ 건물이었으나 이때 인천부(인천시청)가 매입, 장서 900권을 비치하고 인천부립도서관을 개 관한다. 지금으로부터 꼭 한 세기 전인 1922년 1월 6일의 일이다. 이후 도서관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1941년 신흥동 경성지방 법원 인천지청 건물로 이전하지만 1945년 광복과 함께 임시 휴관
2022-01-06 2022년 1월호 -
포토 에세이
2022년 임인년 새해 아침, 서설이 내린 계양산을 올라갑니다. 정상을 향해 한 발 두 발 내디딜 때마다 새해 소망이 쌓여갑니다. 우리의 새해 소원은 ‘일상으로의 귀환’입니다.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학교에도 영화관에도 공연장에도 맘 편히 갈 수 있는 그날을 맞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래전 계양산에는 호랑이가 살았다고 하지요. 새해에는 호랑이의 기운으로 감염병을 물리치고 일상으로의 회복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계양산에 살던 호랑이의 포효처럼 말입니다.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
2022-01-06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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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업데이트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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