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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인천-연출가 박은희
마지막 장면의 힘글 박은희 연출가·교육연극 전문가나는 오랜 세월 연극인으로 살고 있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릴 때에는 연극보다 영화 구경 다닌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영화를 좋아하신 아버지의 취향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어느 날 재밌는 영화가 있다며 동방극장에 우리 형제들만 들여보낸 적이 있었다. ‘태양이 닿지 않는 세계’란 영화였는데 태양이 닿지 않는 신기한 바닷속 구경을 하고 돌아온 우리에게 몇 가지 기억할 만한 장면에 대해 피드백을 하며 즐거워하시곤 했다. 금곡동 창영초등학교 뒤 할머니와 고모들이 사시던 기와집과 내가 다닌 신흥초등학교, 엄마 따라 자주 가던 신포시장, 그림 그린다고 지구크레파스와 화판을 들고 곧잘 가던 자유공원, 그리고 답동로터리 주변 극장들, 모두 꽤 괜찮은 나의 구역이었다. 특히 애관극장은 그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애관극장에서 본 영화 중에 허장강과 도금봉이 심 봉사와 심청이로 나온 영화는 아직도 기억난다. 요즘도 어쩌다 애관극장 말이 나오면 그 얘기부터 시작한다. ‘애관극장 심청이가 바다에 빠졌을 때 어떻게 가라앉았냐 하면 말이야….’그런 어린 시절의 영화에 대한 추억으로 대학 전공을 연극영화과로 정했다.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첫해 스승님은 연출을 전공하겠다는 나를 극단 ‘고향’ 연출부로 이끌어주셨다. 그해, 1974년 극단 ‘고향’의 가을 작품, 번역극인 ‘늦가을의 황혼’의 조연출을 맡아 애관극장 근처 ‘카페 떼아트르 깐느’(용동 239번지)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카페 떼아트르 깐느는 인천 최초의 유럽형 살롱 소극장으로 서울 명동의 대연각호텔 옆에 있던 ‘카페 떼아트르 자유’를 모델 삼아 만든 소
2020-12-02 2020년 12월호 -
仁生 사진관-희망으로 이어진 인연
仁生 사진관희망으로 이어진 인연사연 이연미(미추홀구 경원대로)2020년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일명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인 나에게도 녹록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중 지난 8월, 인천시 홈페이지에서 ‘희망 일자리 프로젝트’를 접하게 됐다. 용기를 내어 지원을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합격! 근무지는 인천여성복지관으로 정해졌다. 그곳에서 7명의 희망을 만났다. 희망 프로젝트를 통해 함께 일하게 된 동료들이었다. 친해질 새도 없이 바로 근무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 그런데 코로나19가 다시 발목을 잡았다. 근무도 하지 못한 채 ‘강제 휴무’에 들어가야만 했다. 10월 12일. 사회적 거리 두기가 1단계로 조정되면서 꿈에 그리던 첫 출근을 할 수 있었다. 동료 7명과 나는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지막 근무 날인 11월 30일. 동료들끼리도 사회적 거리를 두고 근무했지만, 마음의 거리만큼은 무척이나 가까워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시국에 더욱더 단단해진 우리. 희망으로 뭉친 소중한 인연이 오랫동안 이어지길 바란다. 희망으로 가득할 새로운 2021년을 기대하며! ‘仁生 사진관’은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인천을 무대로 살아가고 있는 시민 여러분의 사진과 사연을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리며, 보내주신 사진을 실어드리거나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어드립니다.보내실 곳 : goodmorningic@naver.com 문의 : 시 소통기획담당관실 032-440-8305
2020-12-02 2020년 12월호 -
인천 소사-인천종합어시장 개장
인천 소사1975. 12. 20인천종합어시장 개장치열하게 살아가는 상인들과 싱싱한 해산물을 사기 위해 북적이는 시민들. 365일 활어처럼 펄떡이는 인천종합어시장 풍경이다. 시장은 1975년 12월 20일 문을 열었다. 1974년 11월 공사를 시작한 지 1년여 만이었다. 수도권 수산물 도매 시장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인천종합어시장의 시작은 1902년 중구 신포동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931년 중구 북성동 해안가 매립지로 이전했다가 1975년 중구 항동 연안부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때, 12월의 인천은…1902. 12. 22 제1차 하와이 이민, 인천항 출발1957. 12. 23 동인천역사 준공1993. 12. 03 새얼문화재단 창간 축하회1995. 12. 30 수인선 협궤열차, 수원행 운행을 마지막으로 폐선2001. 12. 02 인천문학경기장 개장(5만256석)2004. 12. 01 인천문화재단 설립2005. 12. 27 인천관광공사 설립2007. 12. 12 인천신항 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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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지명-글을 읽는 정자, ‘독정이’
인천 지명 글을 읽는 정자, ‘독정이’용현동 용현사거리에서 주안동과 용현동 경계인 용일사거리 쪽을 향해 올라가는 언덕길을 흔히 독쟁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독정이삼거리’라는 이름이 붙고, 주변 길도 ‘독정이로’라고 해서 공식적으로는 ‘독정이’가 이곳의 이름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인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독쟁이’라고 불렀지 ‘독정이’라고는 하지 않았다.독쟁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 유래를 흔히 “옛날 이 주변에 장독을 만들던 곳이 많이 모여 있어 독쟁이라 부르게 됐다”고 말하는 곳이다. 하지만 독쟁이는 독 만드는 곳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이곳에 ‘독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었기에 생긴 이름으로 전한다.이곳의 행정 구역은 용현동에 속하는데 용현동은 ‘비랑이’ 또는 ‘비랭이’라 불렸던 곳이다. 이 이름은 비탈 또는 벼랑을 뜻하는 우리 옛말 ‘비사’ 또는 ‘빗’에서 비롯돼 ‘비탈진 곳’ 정도의 뜻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비랑이는 1906년 인천부가 동네 이름을 바꿀 때 비룡리와 독정리로 나뉘었는데, 이 독정리가 바로 독쟁이의 기원이다.‘독정讀亭’은 말 그대로 ‘글을 읽는 정자’라는 뜻인데, 이런 이름을 가진 정자가 있었다고만 할 뿐 언제 어디에 생겼다가 없어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정자의 연유야 어떻든 이 ‘독정’에서 ‘독정리’가 생겼고, 그 발음이 바뀌어 독쟁이가 된 것이다.이와는 달리 우리나라 여러 곳에는 실제로 도자기나 독을 짓던 곳이었다 해서 붙은 땅 이름이 적지 않게 있으며, 이들은 ‘독쟁이’가 아니라 ‘독골’ ‘독곡’ ‘독점’ ‘독점골’ ‘독지골’ ‘독지곡’ ‘독짓골’ 등의 형태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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