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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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인공적으로 파낸 ‘굴포천’
그 옛날 인공적으로 파낸 ‘굴포천’‘굴포천’은 한강 하류부에 위치한 한강의 제1지류로, 부평구 일신동 철마산에서 발원해 부평 도심지의 공장 지대를 지나 부천을 거쳐 김포 신곡동 신곡 양·배수장에 이르는 인천에서 가장 긴 지방 하천이다. 인천의 지방 하천인 청천천과 계산천, 귤현천, 갈산천과 함께 실개천인 세월천, 목수천, 산곡천, 구산천 등이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든다. 굴포천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동부간선수로와 서쪽에는 서부간선수로가 남북으로 축조되어 있다. ‘굴포掘浦’라는 말은 ‘판 개울’을 한문으로 표현한 말로, 인공으로 팠다는 의미가 이름에 포함되어 있다. 옛날 삼남 지방에서는 정부에 바치는 곡물(삼남미)을 바다를 통해 강화 손돌목을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용산으로 옮겨왔다. 그런데 손돌목이라는 곳이 바다 밑에 사슴뿔 같은 암초가 많아 배들이 자주 조난을 당했다고 한다. 고려 고종 때 최충현의 아들 최이라는 사람이 이 위험한 손돌목을 피하기 위해 부평 만월산 칠성약수터에서 발원해 부평벌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흐르던 하천을 개조하고, 제물포 쪽과 연결해 배가 다닐 수 있는 수로 개설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300년 뒤인 조선 중종 때에도 김안로라는 사람이 과거 최이의 계획대로 하천을 파기 시작했지만, 원통이고개를 뚫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때 뚫지 못한 곳이 간석이고, 파낸 하천이 지금의 굴포천으로, 당시의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옛날 인공으로 파낸 굴포천은 한때 붉어졌던 환경오염 문제를 딛고, 현재 인천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우리 시는 지속적인 재생 사업을 통해 굴포천을 인천 대표
2021-03-30 2021년 4월호 -
仁生 사진관
언제나, 봄사연 유지효(연수구 송도동)어김없이 봄이 왔습니다. 올봄은 예년과 다를 거라 기대했지만, 아직 조금 이른 모양입니다. 그래도 봄은 봄입니다. 멀끔한 송도국제도시를 잠깐 벗어나, 사람 냄새나는 청학동 골목길을 걸었습니다. 동네 여기저기, 벌써 봄꽃이 완연했습니다. 키 작은 주택가 담벼락에 누군가 그려놓은 벽화였습니다. 곧 만개할 벚꽃을 기다리듯, 미리 활짝 핀 벽화 앞에 섰습니다. 아마 이곳은 지난겨울에도 봄이었겠지요. 곧 세상은 계절의 옷으로 갈아입고 싱그러움을 뽐낼 것입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겨울이 오고, 또 새로운 봄을 맞게 될 것입니다. 계절은 바뀌어도 마음만은 늘 따스하기를. 담벼락에 그려진 포근한 봄날처럼, 우리네 삶에 늘 밝은 빛이 내리쬐기를. 그렇게, 언제나 봄이기를 소망합니다.‘仁生 사진관’은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인천을 무대로 살아가고 있는 시민 여러분의 사진과 사연을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리며, 보내주신 사진을 실어드리거나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어드립니다.보내실 곳 : goodmorningic@naver.com 문의 : 시 소통기획담당관실 032-440-8305
2021-03-30 2021년 4월호 -
포토 에세이-천연기념물 제562호 장수동 은행나무
장수동엔 800살 먹은 할아버지가 계십니다.한자리에 뿌리내리고 8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입니다.봄엔 첫사랑 같은 연둣빛 이파리로, 가을이면 금관의 장식 같은 샛노란 잎으로나무는 사계절 내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행복하게 해줍니다.높이 28.2m, 둘레 9.1m. 이 은행나무의 크기만 봐도 얼마나 오랜 세월을 지내왔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고려 시대, 조선 시대 선조들도 이 나무에 당제를 지내고 그늘에서 쉬어가셨겠지요. 이 거목 역시 800년 전 어느 고려인의 작은 소망과 함께 묘목으로 심어졌을 것입니다.4월 5일 식목일에 심는 나무 한 그루가 800년 뒤, 1,000년 뒤 큰 나무로 성장하길 소망합니다. 글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남동구청
2021-03-30 2021년 4월호 -
인천의 아침-개관 75주년, 인천시립박물관 가는 길
개관 75주년, 인천시립박물관 가는 길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1946년 4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으로 개관한 인천시립박물관의 현재 모습. 사진 왼쪽은 우현 고유섭 동상이고 가운데 열차는 1969년 제작한 협궤열차다.석남 이경성 흉상헌칠한 키에 잘생긴 28세의 청년은 1945년 8월 15일 광복하자마자 인천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청년은 부평 조병창에서 중국 철제 종을 실어 오는가 하면 매머드 상아, 자기 파편 등 인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유물들을 그러모았다. 개미처럼 수집한 유물은 송학동 세창양행(현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자리) 사택에 보관했다. 그해 10월 31일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을 세우며 초대 관장으로 취임한 청년 이경성李慶成(1919~2009)은 이듬해 4월 1일 세창양행 사택에서 정식 개관식을 갖는다. 좌우익의 갈등과 불안한 치안. 광복 직후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 박물관 개관은 석남石南 이경성의 애향심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물관은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1950년 6월 27일부터 무기한 휴관에 들어간다. 석남은 이때 360여 점에 이르는 유물을 인근 방공호와 창고로 대피시킨다. 선견지명. 그해 9월 인천상륙작전 전개와 함께 박물관은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된다. 석남이 숨겨뒀던 유물들은 1953년 4월 1일 새롭게 개관한 제물포구락부로 옮겨진다. 이후 37년간 한자리를 지키던 박물관이 지금의 청량산 자락으로 이전한 때는 1990년 5월이다. 인천시립박물관은 이후 석남과 같은 개방형 관장 체제를 중심으로 몇 차례 굵직한 도약의 시기를 지나온다. 첫 도약은 2006년 리모델링 뒤 재개관을 했을 때다. 이때 전시실과 수장고
2021-03-30 2021년 4월호 -
코로나 19 대응2021-03-30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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