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지난호 보기
-
인포 박스
인천의 문화 행사, 공연, 강좌 등 알찬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인천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 노력에 따라 일정이 변경 또는 취소될 수 있습니다. 문의처에 꼭 확인 후 참여 부탁드립니다. 01 인천시 독립 40년 축하 공모전 개최우리 시가 직할시 승격 40년을 기념해 ‘2021 인천시 영상 콘텐츠 공모전’을 개최합니다. 공모 주제 : 인천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자유 주제-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며, 보석 같은 168개의 섬을 가진 인천의 매력- 인천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인천광역시의 정책 홍보- 나만 알고 있는 특별한 인천의 숨은 매력- 따뜻하고 행복한 인천 시민의 소소한 이야기- 인천의 명소들을 활용한 뮤직비디오 영상 등 인천광역시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자유 주제응모 자격 :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개인 또는 팀)접수 기간 : 6월 23일접수 방법 : Ⓔ incheonfilm2021@gmail.com작품 규격 - 분량 : 3분 이내 영상물- 규격 및 형식 : FHD(1920x1080) 이상, MP4 형식참조 : Ⓗ www.incheon.go.kr문의 : 시 소통기획담당관 Ⓣ 032-440-303302 자연재해로부터 든든히 지켜드립니다자연재해로부터 자산을 지킬 수 있는 ‘풍수해보험’이 확대되어 2021년부터 총 보험료의 70% 이상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가입 대상 : 소상공인 상가·공장 건물, 시설과 집기 비품, 기계, 재고 자산,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과 단독주택, 농·임업용 온실대상 재해 : 태풍, 호우, 홍수, 강풍, 풍랑, 해일, 대설, 지진, 지진해일보험 기간 : 1년지원 규모 : 70~92%(주택, 온실, 소상공인 상가·공장)문의 : 시 자연재난과 Ⓣ 032-440-335903 안심in, 시민의 안전 귀가를 책임집니다우리 시가 범죄를 예방하고 시민의 안전한 생활
2021-06-01 2021년 6월호 -
인천 문화재 이야기⑥ 부평도호부관아(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호)
부평에서 구로까지 다스린 옛 영화의 흔적 남아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남동구 ‘간석오거리’를 경계로 택시요금이 달랐던 때가 있었다. 인천에서 부평 방면으로 넘어갈 경우 2,000원 정도 가산금이 붙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외지 사람들은 “같은 인천인데 왜 요금이 다르냐”며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부평과 인천은 다른 지역이었다. 지리적으로도 한남정맥(안성 칠장산에서 시작해 김포 문수산을 잇는 산줄기)이란 산줄기를 경계로 나뉘어 있었다. 산줄기 남쪽으론 인천도호부관아(인천시 유형문화재 제1호)가, 북동쪽으로는 부평도호부관아가 각각 들어섰다. 조선 시대 인천도호부관아는 문학산 아래 일대와 제물포 지역을 관할한 반면, 부평도호부관아는 15개면에 이르는 광활한 행정구역을 다스렸다. 지금의 부평·계양·서구는 물론이고 부천, 서울 구로구의 온수·오류동 일대, 강서구 개화동과 김포공항 일대, 광명시 천왕역 주변까지가 부평도호부 관할 지역이었다. 청사의 규모도 상당했다. 축구장 4배 크기의 땅에 27개 동 232칸의 건물들이 있었다고 는 전한다.부평도호부관아를 지은 시기는 고려 성종 14년(995)이다. 이후 900년 동안 부평 일대를 통치했으나 일제강점기 대부분의 건물이 헐리고 만다. 관아가 헐린 자리에 부평초등학교 전신인 부평공립보통학교 건물이 들어선다. 불행 중 다행으로 1개 동이 남아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채 보존되고 있다. 이 건물은 수령이 정무를 집행하던 ‘동헌’이나 기거하던 ‘내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여섯 칸, 측면 두 칸 크기의 ‘ㅡ자형’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부평도
2021-06-01 2021년 6월호 -
소소한 인천사-인천 지명
호랑이의 입을 닮은 ‘호구포’남동구 논현동 서남쪽에 있는 호구포虎口浦는 이름 그대로 ‘호랑이의 입처럼 생긴 포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은 많이 쓰이지 않지만 ‘범 아가리’가 바로 호구포의 순우리말이다. 예전에 호구포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포구였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소래 오봉산 기슭에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으르렁거리는 모양의 검고 큰 바위가 있어 호구암이라 불렀고, 이 때문에 호구포라는 이름도 생겼다고 한다. 호구암은 바다 건너 대부도를 향해 있어 대부도에서는 개를 키우면 바로 죽어버렸다는데, 실제 그 지형으로 보아서는 타당성이 없고 그저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엇비슷한 다른 전설도 있다. 호구암 맞은편 경기도 안산의 산기슭에 옛날 어떤 세도가들 집안의 산소가 여럿 있었는데, 그들 집안의 자손들은 제대로 대를 잇지 못했다고 한다. 집안사람들은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하고 답답해 하기만 했는데, 한 풍수쟁이가 산소 건너편 호구암이 입을 크게 벌리고 산소를 삼키려는 모양이라 그렇다고 말했다. 이에 그 집안사람들이 호구암의 입 부분을 도끼로 찍어 없앴더니 그 뒤로 자손이 번성했다는 이야기인데, 지금은 호구암이라는 바위가 진짜 있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결국 이는 모두 전설일 뿐일 테고, 실제로는 이곳의 지형이 바다 쪽에서 안으로 파고 들어와 호랑이의 입처럼 생긴 데에서 동네 이름이 유래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이 매립되기 전인 1918년 일제가 발행한 지도를 보면 호구포 일대의 모양이 실제 호랑이의 입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1920년대에 버려진 개펄을 이용해 남동염전이 만들어지면서 호구
2021-06-01 2021년 6월호 -
仁生 사진관
우연히 찾아온 행복사연 고순영(연수구 송도동)지난해 겨울, 이사를 왔습니다. 신혼 때부터 16년을 함께한 집, 가족 같았던 지인들과 헤어지게 됐습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물 위의 기름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설상가상,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지방에 있는 남편과는 주말부부로 지내고, 몇 달째 온라인 수업하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지쳐가는 하루하루가 이어졌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집 앞 공원을 찾았습니다. 그곳에는 예상 밖의 차분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꽃내음 가득한 봄과 시원한 바람 머금은 여름, 서늘한 듯 따스한 햇살 주는 가을, 뒤죽박죽 엉킨 마음 잠잠하게 만들어주는 겨울….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며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많은 위로를 주는 자연이었습니다. 모두가 힘든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터인데, 혼자만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몰랐던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어제를 반성하며, 다시 한번 시작하려 합니다.‘仁生 사진관’은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인천을 무대로 살아가고 있는 시민 여러분의 사진과 사연을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리며, 보내주신 사진을 실어드리거나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어드립니다.보내실 곳 : goodmorningic@naver.com 문의 : 시 소통기획담당관실 032-440-8305
2021-06-01 2021년 6월호 -
인천의 아침-칼럼
조미전쟁 150주년, 수자기 펄럭이다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조미전쟁이 벌어졌던 광성보. 가운데 帥자가 써 있는 깃발이 수자기다.사진은 2010년 10월 재현한 광성보 전투 장면강화도 ‘광성보’에 가면 장엄한 기운이 전신을 휘감는다. 어재연(1823~1871) 장군의 풍모가 느껴지는 정문 안해루,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군인들의 무덤인 신미순의총, 치열한 백병전이 펼쳐졌던 손돌목돈대. 그곳에 서서 바다를 보노라면 150년 전 ‘조미전쟁’(신미양요)의 처절한 전투 장면이 염하처럼 빠르게 흘러간다.1871년 6월 11일 미군 함대는 광성보를 향해 무차별 함포 사격을 가한다. 광성보엔 당시 진무중군 어재연 장군과 수비병 600여 명이 배수진을 치고 있었다. 제대로 된 현대식 총 한 자루 없는 상황에서 어재연 장군은 동생 어재순, 조선군과 함께 목숨을 내놓고 전투에 임한다. 결과는 참혹했다. 미국이 전사자 3명, 부상자가 10명인 반면 조선군 전사자는 350명, 부상자는 20명에 달했다. 광성보를 점거한 미군은 이때 조선군이 하늘 높이 들고 싸우던 어재연 장군기인 수자기帥字旗를 강탈한다. 조미전쟁은 미국이 조선을 개항시킬 목적으로 침략했으나, 조선군의 격렬한 저항에 밀려난 사건이다. 조선으로선 ‘졌지만 승리한 전쟁’으로 평가된다. 당시 미국은 일본 등을 상대로 ‘포함외교’를 벌여 성공했지만 유일하게 조선에서만 실패하고 철수해야 했던 것이다. 참전자 슬라이Schley 해군 소령은 ‘조선군은 결사적으로 장렬하게 싸우면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들의 진지를 사수하다 죽었다. 가족과 국가를 위해 이보다 더 장렬하게 싸운 국민을 다시 찾아볼 수 없다’는 기록을 남
2021-06-01 2021년 6월호 -
포토 에세이-광성보
지금으로부터 꼭 150년 전,광성보의 카키색 바다는 핏빛으로 소용돌이쳤습니다.1871년 6월 11일 최신예 함포를 앞세운 미국 함대는 광성보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습니다.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은 변변한 현대식 총 한 자루 없었지만격렬하게 맞서 싸웠고 수백 명이 장렬한 최후를 맞았습니다.강제 개항에 실패하고 돌아가던 미군이 용맹함을 높이 평가할 정도로 조선군의 전투력은 필사적인 것이었습니다.한 세기 하고도 반이 흘러 광성보는 지금, 시민들이 즐겨 찾는 문화유적 공원으로 피어났습니다.조국을 지키기 위해 장렬하게 싸우다 스러져간 조선군의 넋일까요?광성보에 피어난 무수한 들꽃들이 바닷바람을 타고 하늘거립니다.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사진 최준근 자유사진가
2021-06-01 2021년 6월호
- 자료관리담당자
-
- 담당부서 콘텐츠기획관
- 문의처 032-440-8302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