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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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인천 - 인천 지명, 인천소사
인천 지명 바다를 향한 터진 개, 신포동이곳에 동네가 들어선 건 인천항 개항 이후다. 구한말 다소면 선창리에 속해 있다가 1903년 부내면이 만들어질 때 ‘새로 번창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신창동新昌洞’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1930년대 들어 신창동은 다시 한번 이름이 바뀌는데, ‘터진 개’를 한자로 바꾼 ‘개포동開浦洞’이었고, 광복 이후 1946년에 비로소 신포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새롭게 발전하는 포구’라는 뜻에서 이름 지었다고 한다. 1977년에 신포동은 큰 변화를 맞이한다. 시 조례 제1075호에 의해 근처에 위치한 사동沙洞, 신생동新生洞, 답동沓洞과 합해 새로운 신포동이 된 것이다.신포동은 근대 개항 이후 최초로 도시화된 지역으로 개항기 역사의 태동지이자 근대사 유적지로 꼽힌다. 현재는 자유공원, 신포시장, 신포문화의거리 등 경제 활동이 활발한 상업 중심 지역으로, 인천항을 중심으로 서해안 시대의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지닌 지역으로서 앞으로 더욱 성장·발전해 나갈 예정이다.인천 소사2007. 04. 202014년 제17회 아시안게임 유치아시안게임은 1947년 인도의 국제올림픽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IOC) 위원이었던 손디가 뉴델리에서 개최된 아시아국제회의에서 제의했고, 이듬해 8월 제14회 런던올림픽 기간 중 한국을 비롯해 중국, 필리핀, 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등 6개국 대표가 모여 결의했다. 이 회의에서 제1회 아시안게임은 1950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으며, 현재까지 아시아인의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2014년 열린 제17회 아시안게임은 인천에서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렸다. ‘평화의 물결, 아시아의 미래’를 슬로건으로 한 인
2022-03-30 2022년 4월호 -
仁生 사진관-그리운 내 고향
그리운 내 고향사연 김용덕(미국 페어팩스)미국 페어팩스Fairfax에 사는 애독자입니다. 매달 바다 건너 도착하는 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옛 추억에 잠겨 한참 동안 시간 여행을 떠나곤 합니다.1950년대, 저는 인천에서 서울로 기차를 타고 통학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반세기도 넘은 옛날 일이라 많은 기억이 사라졌지만 그때 부르던 노래만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인천을 떠나는 열차는 새벽의 기적을 울리며, 한강을 달리는 열차는 희망과 용기로 꽉 찼네. 깨진 칸, 무너진 칸에서 연착에 연착을 거듭해도 촛불을 켜가며 책 보는 장하다 경인선 용사야!”사람들로 북적이는 기차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그 시절 그때가 참으로 그리워집니다. 매일 그렇게 통학하던 기억이 소리로 남아 있다면 맛과 향으로, 촉감으로 남아 있는 기억도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의 공화춘, 중화루, 청관은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인가요? 그 시절 귀하게 먹던 음식들이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곤 합니다. 배다리사거리, 쇠뿔고갯길, 싸릿재 곳곳을 걷던 발걸음이며 한여름 월미도해수욕장에 첨벙 뛰어들던 일도 생생합니다.한국을 떠난 지 어언 60여 년이 지났지만 제 기억 속 인천은 마치 어제 일처럼 가깝기만 합니다. 꼭 다시 찾아가길, 곧 다시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기분 좋은 추억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 내 소중한 인천이여. ‘仁生 사진관’은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인천을 무대로 살아 가고 있는 시민 여러분의 사진과 사연을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리며, 보내주신
2022-03-30 2022년 4월호 -
인천의 아침-에네켄
에네켄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월미도 ‘한국이민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멕시코 이민자 디오라마피리 부는 내시, 도망 중인 신부, 옥니박이 박수무당, 가난한 황족과 굶주린 제대 군인, 노루 피 냄새의 소녀, 도둑놈. 김영하의 장편소설 은 제물포항에 모여든 인간 군상의 묘사로 시작한다. 그들은 멕시코로 향하는 영국 화물선 ‘일포드’호에 오르려는 사람들이다. ‘높은 보수와 각종 편의를 제공할 것입니다.’ 브로커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멕시코 이민자들은 현지에 도착한 뒤 비로소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민자들을 기다린 건 선인장의 날카로운 가시와 살을 새카맣게 태우는 유카탄반도의 뙤약볕, 농장주의 채찍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09년. 중노동에 시달린 4년간의 노예 계약이 끝났지만 그들에겐 돌아갈 조국도, 뱃삯도 없었다. 이민자들은 결국 현지에 눌러앉아 생존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은 1905년 단 한 차례 있었던 멕시코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다.멕시코 이민은 하와이 이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 이민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건이다. 1905년 국제 이민 브로커 마이어스John G. Meyers는 높은 보수와 편의 제공을 미끼로 멕시코로 갈 조선인을 모집한다. 서구 열강과 일제의 침탈로 저물어가던 대한제국의 불쌍한 백성들은 거짓 광고에 현혹돼 일포드호에 오른다. 전국 18개 지방에서 모집한 이민자 1,000여 명 중 인천 출신은 225명에 이르렀다. 그렇게 1905년 4월 제물포항을 출발한 일포드호는 한 달여 만에 살리나크루즈항에 도착한다. 적어도 조선에서의 삶보다는 나을 것이라 기대했던 멕시코 이민자들의 꿈은 그
2022-03-30 2022년 4월호 -
포토 에세이-인천의 벚꽃 길
인천의 벚꽃 길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벚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팝콘 터지듯 툭 툭 겨우내 잠자던 연둣빛 새순이연분홍 벚꽃잎이 되어 하나둘 터져 나옵니다.저 꽃잎 하나에 봄의 생명력이저 꽃잎 하나에 봄의 설렘이저 꽃잎 하나에새 봄을 맞는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갑곶돈대, 인천대공원, 월미공원엔머잖아 벚꽃잎이 함박눈처럼 흩날릴 것입니다.올봄엔 꽃길만,아니‘벚꽃 길’만을 걸으시길 소망합니다.
2022-03-30 202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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