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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아침-칼럼
팔미도등대 ‘120년 불빛’과의 대화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두 개의 섬이 마치 ‘八’ 자 모양으로 뻗어 내린 꼬리처럼 보여 이름 붙여진 팔미도. 연안부두에서 유람선 타고 50분이면 도착하는 13.5km의 거리. 한 시간 정도면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만큼 팔미도는 아담하다.팔미도는 에도 기록이 보이지 않는 이름 없는 섬이었다. 다만 조선 후기 김정호가 만든 지도 ‘청구도’엔 팔미八未로, ‘대동여지도’엔 팔산八山으로 표시돼 있다. 낙조를 받으며 돌아오는 배의 모습이 아름다워 팔미귀선八尾歸船이라고 불리며 인천팔경의 하나로 꼽히던 명승지였다.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섬에 등대가 들어선 때는 1903년이다.개항기 우리나라를 넘보던 서구 열강들은 이양선을 앞세워 인천으로 밀려든다. 새로운 침탈지로 정치·경제적 거점을 삼는데 개항장 인천만큼 적당한 곳도 없었다. 팔미도는 인천으로 가는 바닷길의 중요한 지점에 위치했고,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섬이었다.가장 먼저 마수를 뻗친 나라는 일본이다. 개항하던 해 일본은 조선 조정과 체결한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에 등대와 초표를 설치한다는 규정을 명시한 터였다. 조선이 저물어가던 1901년, 일본은 규정을 들어 등대 건설을 촉구한다. 일본의 등쌀을 견디지 못한 조선 조정은 1902년 인천에 ‘해관등대국’을 설치하고 팔미도, 소월미도, 북장자 등대와 백암 등표 건설을 시작해 1903년 6월 완공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는 그렇게 불을 밝혔다.47년 뒤인 1950년 9월, 팔미도에 특명이 떨어진다. “9월 14일 밤 12시 정각에 등대를 밝혀라.” 비밀리에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던 도쿄(東京) 유엔군 총사령부가 팔미도에 들어가 있던 한국
2023-03-02 2023년 3월호 -
한 컷 인천- 봄길 그 바다
봄길 그 바다봄바람 타고푸르스름 잔물결밀려오는 바다따사로운 감촉바닷새들의 울음소리햇살 조각 윤슬로 떠다니는노을이 질 때면수줍던 너의 얼굴너와 나함께 바라보던봄길 그 바다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2023-03-02 202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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