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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수영선수, 수영용품 멀티숍 소상공인으로…
김은경 ‘수영하는 사람들 SDG’ 대표
국가대표 수영선수,
수영용품 멀티숍 소상공인으로…
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내가 신고 싶은 것보다는 내 발에 꼭 맞는 걸 신어야 해요. 오리발은 옆에서 감싸주는 느낌이 있는 게 좋은 거예요.”
인터뷰 도중 손님이 들어오자 반사적으로 일어선 그가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손님을 향한 시선이 겨울 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인천 출신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 김은경(44).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가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따낸 금메달과 같은 ‘타이기록’을 가진 그는 이제 푸른 물살 대신 세상의 한가운데를 가르고 있었다. 수영용품 전문 매장 대표로, 멋진 여성 기업인을 꿈꾸는 소상공인으로.
‘수영하는 사람들 SDG’ 대표인 김 씨가 영종도에 매장을 차린 이유는 어려서 시작한 수영인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결혼해 아이 낳고 정신없이 살아오던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았어요. 그런데 저만치에 지난날의 은경이가 보이는 겁니다. 물에서 자라고 꿈꾸던 그 은경이가 말이죠.”
수영을 처음 접한 것은 신광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체구가 작은 큰딸을 걱정했던 부모님이 그를 학교 수영부에 가입시켰다. 건강을 다지려고 시작한 운동이 국가대표란 타이틀로 이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1년 만에 전국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은경은 6학년이 되면서 최연소 상비군으로 성장한다. 승승장구하던 은경에게 시련이 닥친 건 선화여중 2학년이 되던 해였다. 사춘기에 더해 슬럼프가 불쑥 찾아들었다. “메달은 계속 따는데 도무지 기록이 오르질 않는 거예요. 수영 도구를 모두 챙겨 집으로 돌아왔어요. 부모님께 더 이상 물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지요.” 우리 딸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 엄마 아빠는 널 믿어. 어린 딸의 선택을 존중하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은경은 일주일 만에 주섬주섬 수영 가방을 챙겨 들었다. “자유형이던 주 종목을 개인 혼영으로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출발했어요.” 맹연습으로 위기를 극복했건만, 인화여고 1학년이 되던 해 은경은 또 하나의 시련에 맞닥뜨린다. 하루도 빠짐없이 딸을 수영장에 데려다주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쓰러진 것이다. “새벽이었어요. 운전하시던 아버지가 브레이크를 밟더니 ‘은경아, 아빠 더 이상은 못 갈 것 같아’ 하시는 거예요.” 그게 끝이었다. 혈압이 있던 아버지는 나흘 뒤 영원한 여행을 떠났다.
여기서 주저앉는다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아빠가 슬퍼할 것이었다. 물속에서 흘린 눈물들이 수면 위를 부유하던 그해 가을, 은경은 마침내 개인 혼영 국가대표로 발탁된다. 이후 선수 생활 동안 270여 개에 이르는 메달을 목에 걸었고 인천시청 소속 선수, 남부교육청 코치 등을 역임하다 2000년 결혼하며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선다. 2013년 영종하늘도시에 정착하고 보니 외동아들도 부쩍 자라 있었다.
“이제 나만의 길을 찾아야겠구나 생각하던 차였어요. 동네에서 수영 강사를 하고 있었는데 회원들이 수영용품 파는 가게가 없어 불편하다는 얘기를 한 기억이 떠올랐어요.” 말없이 수영인의 삶을 응원해 준 수영용품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렇게 운서동에 문을 연 게 ‘수영하는 사람들 SDG’다. 그의 가게엔 고품질이면서 가격이 저렴한 용품들이 즐비하다. 수영 전문가이다 보니 수영용품을 보는 식견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고향은 어떤 곳일까.
“인천은 글로벌 도시입니다. 개항 이래 나라 안팎에서 오신 많은 분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잖아요. 내외국인 모두가 행복한 국제도시를 만드는 데 다 함께 손을 맞잡으면 좋겠습니다.”
힘차게 물을 당겼던 그의 손길이 정성스레 수영용품을 매만졌다. 그가 골라주는 수영복을 입으면 왠지 국가대표가 된 기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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