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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줌인

2022-03-02 2022년 3월호


‘젓새우’ 넘쳐나던 그 섬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네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


볼음도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4호)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 강화도엔 여러 개의 형제 섬들이 있다. 석모도를 지나 서쪽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4개의 섬들 가운데 하나인 볼음도乶音島는 그중 하나다. 볼음도는 새우, 꽃게, 상합이 넘쳐나던 황금 어장이었다. 젓새우만 해도 너무 많이 잡히다 보니 섬 여기저기서 새우를 말리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를 ‘깔판’이라 표현하곤 했다. 한국전쟁 전까지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적댔던 이유도 어장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후 민통선과 어로저지선이 그어지면서 인구는 4분의 1로 줄었고, 더 이상 바다를 의지할 수 없게 된 어부들은 하릴없이 농부로 전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볼음저수지’는 한국전쟁 이후 달라진 볼음도 주민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렇게 70여 년이 흐른 지금, 가을걷이 때면 볼음도 선착장엔 1,000kg 단위로 포장한 ‘공공비축미’를 싣고 배에 오르는 트럭을 쉽게 볼 수 있다. 문준우(43) 서도면 부면장은 “서도면에서는 주로 공공비축미를 생산한다”며 “쌀, 고구마, 땅콩 재배 등 농업과 함께 소라, 주꾸미, 상합을 잡는 맨손어업이 서도면 주민들의 생업”이라고 말했다. 볼음도엔 800살 먹은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4호)가 풍채를 자랑한다. 높이 24.5m, 둘레 9.8m에 이르는 이 노거수는 고려 중엽 황해남도 연안군 호남리에 있던 나무가 홍수로 떠내려 온 것이라고 전한다. 북한엔 볼음도 은행나무의 짝이 살고 있는데 북한천연기념물 제165호인 은행나무가 바로 볼음도 은행나무의 배필이다. 
시원한 눈맛을 주는 영뜰해변, 조개골해수욕장 등 볼음도는 여름철 피서지로도 손색이 없다. 볼음도엔 임경업 장군의 사당이 있는데, 이는 임 장군이 볼음도란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임 장군은 16세기 명나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섬에 머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을 보고 반해 볼음도라 지었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고려사>엔 파음도巴音島, 보음도甫音島라 부르다 볼음도가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볼음도를 품은 강화군 서도면은 유인도 4개와 무인도 9개가 있으며, 볼음도리는 말도리와 함께 민통선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인천시와 인천시립박물관, 인천문화재단이 오는 3월 31일까지 인천시청역 지하 3층 ‘열린박물관’에서 진행하는 ‘볼음도乶音島, 248명의 삶’ 전시는 현재 볼음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생활을 살펴보는 기획전이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다’, ‘땅을 일구다’, ‘볼음도 기억하다’ 등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 볼음도 주민들의 생생한 삶을 들여다보며 볼음도의 광산과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동현(64) 인천시립박물관장은 “한때 새우잡이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농사를 일구며 살아가는 볼음도의 속살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라며 “이번 기획전을 시작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인천지역 섬 문화와 역사를 살피고 기록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시청역 지하 3층 1번, 9번 출구 앞 열린박물관에서 진행하니 전철로 오갈 때 가볍게 관람할 수 있다.


문의 032-440-6735, 사진 제공 인천시립박물관, 인천문화재단


모내기 하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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