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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 교동초등학교

2022-03-02 2022년 3월호


오랜 시간 바래지 않는
아이들의 푸른 희망


세상 모든 학교는 귀하다. 하나 그 속에서도 특별한 전통과 저력을 품은 곳이 있다. 학교를 통해 도시를 들여다보는 ‘인천 명문교를 찾아서’. 그 스물두 번째 등굣길을 따라 강화군 교동면으로 발길을 옮긴다. 교동대교를 지나 넓은 평야가 이어지고 나지막한 집이 옹기종기 모인 한가운데 인천 교동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1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너른 품으로 아이들을 맞은 운동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김현주(44) 교사와 5학년 유환(11), 2학년 유다은(8) 학생을 만났다. 함께 발을 맞추고 교정 곳곳을 거닐며 오래된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글 박채림 자유기고가│사진 김범기 자유사진가

교동초등학교 2학년 유다은 양, 김현주 교사, 5학년 유환 군이 교정을 다정하게 걷고 있다.


근대 교육의 시작, 유서 깊은 교사

교동초등학교는 인천에서 근대 교육을 일찍부터 시작한 유서 깊은 초등학교로 손꼽힌다.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 이후 교육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 나라를 근대화하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그 바람은 이곳 교동도에도 불어왔다. 1906년 교동향교 안에 사립화개농업학교가 설립되었는데 4년제로 당시 학생 수는 50명 남짓이었다. 1911년 6년제 사립교동보통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가 1912년 4년제 교동국립보통학교로 전환되었다. 이것이 바로 현재 교동 초등학교의 전신이다. 1910년 일본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었고, 교동초등학교는 파란의 세월을 겪으면서도 아이들을 변함없이 따뜻하게 품었다. 아이들이 점점 늘어 교사校舍가 협소해지자 1926년 새로 학교를 지어 현재 위치인 대룡리로 이전하기에 이른다.
“지금 학교의 모습에선 옛 흔적을 찾기 어려워요. 단층이 던 목조 건물이 점점 높아졌고, 본관은 물론 신관까지 생겼으니까요. 아이들을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에 끊임없이 변화와 발전을 꾀한 거죠. 그럼에도 오래도록 바뀌지 않은 건 바로 이 운동장이 아닐까 싶어요. 봄부터 겨울까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죠.”
김현주 교사는 유환, 유다은 남매와 손잡고 학교 구석구석을 소개해 주었다. 교동초등학교는 전교생 33명에 교직원 13명이 함께하고 있다. 도시 학교와 비교하면 규모가 매우 작지만 내실은 그 어느 학교보다 단단하다. 학년당 한 학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규수업은 물론 방과후수업까지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피아노, 바이올린, 우쿨렐레 등 다양한 악기 연주를 배울 수도 있고 발레, 방송 댄스, 사물놀이 등 활동 종목이 다양해 선택의 폭이 넓다. 더구나 이 모든 활동이 교육청과 강화군의 지원으로 전액 무료로 진행된다.


교동초등학교는 1906년 설립되었으며, 1926년 대룡리로 이전해 지금에 이른다.


2006년에 세운 개교 100주년 기념비



피란민의 추억과 그리움을 담아

“지금이야 교동대교로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천 시내까지 한참이 걸리고, 강화군에서도 자동차로 30분 이상 떨어져 있어요. 북한과도 가까워 이곳에 오려면 반드시 두 번의 검문을 거쳐야 하고요. 이런 이유로 처음에 발령받았을 때 걱정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올해로 4년째 근무하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걱정이라면 이제 이곳에 머물 시간이 많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김 교사는 교동초등학교에 몸담고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학교에서 숨 가쁘게 지내다 이곳에 부임해 교육자로서의 마음을 바로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온 마음으로 아이들과 교감하는 것이 바로 이런 감정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전 학년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었을 때는 학습 교구와 간식을 챙겨 일일이 가정을 방문해 전달할 만큼 이곳 교사와 학생, 학교와 학부모의 거리는 가깝다. 지금은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을 자제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매달 한 번 대강당에 모여 생일 파티도 열었다.  
학생 수가 많지 않아 관계가 더 각별하기도 할 터. 더구나 교동도는 바로 위가 군사분계선으로 북한 황해도와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실향민이 많이 거주했고, 이웃 간 유대감이 깊다고.
교동초등학교 58회 졸업생 고대영(58) 씨 역시 초등학교 시절을 인생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등교할 때마다 커다란 전나무가 우리를 맞아주었죠. 그때는 학생 수가 엄청 많았어요. 전교생이 800명쯤 되었으니까요. 세월이 흘러 다들 도시로 떠나면서 교동초등학교도 학생 수가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던 학교의 모습은 그대로일 거라 생각합니다.”


교동초등학교 바로 옆엔 병설유치원이 자리한다.


2019년 교동초등학교는 ‘스마트 학교’로 대대적인 변신을 꾀했다.



놀면서 배우는 학교, 등교가 즐거운 학교 

교동초등학교는 올해부터 지석분교와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원래 교동도에는 난정초등학교, 지석초등학교 등이 있었는데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통합되기에 이른 것이다. 2019년 난정초등학교와, 2022년 지석초등학교와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학교가 통합되기 전부터 세 학교 학생들은 강화 나들길 걷기, 교동지구 두레 수학여행 등 의형제 활동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키웠고, 서로의 자원을 공유하고 협력 체계를 구축해 지역적 열세를 현명하게 극복했다.
“저는 난정초등학교에서 2학년 때 교동초등학교로 왔어요. 아무래도 친구가 많아지니까 너무 좋았죠. 그리고 학교가 엄청 좋았어요. 실내 농구장도 있고, 요리 실습도 할 수 있고. 학교에서 하루 종일 있어도 심심하지 않아요.”
유환 군은 교동초등학교에서의 매일매일이 즐겁다고 웃 음 짓는다. 정규수업이 끝나고 방과후수업까지 학교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 힘들지 않냐고 묻자, 공부하는 게 아니라 노는 거라 괜찮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끼며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기에 학생들에게 학교에서의 시간은 공부가 아니라 놀이로 인식되는 것이리라.
교동초등학교는 2019년 신관 건물을 지으면서 학교 전체 환경에 변화를 꾀했다. 교실 내부는 스마트 칠판으로 바꿔 터치 한 번으로 인터넷은 물론 모든 기자재까지 연결해 수업 효과를 극대화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수업을 도입하기 전부터 교동초등학교는 미리 체계적으로 시설을 갖춰놓은 셈이다.
“유치원 때부터 여기를 다녀 익숙해요. 작년에는 발레를 배웠는데요, 올해는 뭘 배울지 고민 중이에요.”
유환 군의 동생 다은 양도 학교가 재미있냐는 물음에 학교에서 배운 것을 자랑하며 오빠를 따라 환하게 웃는다. 교동초등학교는 바로 옆에 병설유치원이 자리하고 있어 대부분 유치원 때부터 이곳에 다닌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옆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옹기종기 자리해 교동에서의 어린 시절 추억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유환 군, 김현주 교사, 유다은 양.


지난 100년, 앞으로 빛날 100년

교동초등학교는 2006년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운동장 한편에 자리한 100주년 기념비가 오랜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다져온 한 세기를 도약하는 또 한 세기로!’라는 문구가 교동초등학교의 굳은 결심을 말한다.
교동초등학교는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아이들의 푸른 꿈과 희망을 키우는 터전이 되고자 한다. 오랜 역사는 교동초등학교의 자랑이지만 이것만으로 이곳의 모든 것을 대표할 수는 없을 터. 전인교육으로 학생들이 다양한 지식을 얻고 경험을 쌓음으로써 숨은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곳, 교동초등학교는 그 역할을 앞으로도 뚝심 있게 지속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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