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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생태계, 세계를 지키다 ④ 인천으로 날아온 고니
‘인천 도심 속 DMZ’ 안암호,
‘백조의 호수’로 일렁이다
흰 얼굴에 노란 부리를 가진 녀석들이 커다란 날개를 퍼덕거리며 호수 위에 미끄러지듯 내려앉는다. 긴 목을 ‘S’ 자로 세운 채 봄바람을 타고 호수 위를 둥둥 떠다니는 모습에서 우아한 자태가 피어난다. 차이콥스키의 발레 공연 ‘백조의 호수’에서 춤추는 발레리나들이 오버랩overlap된다.
백조白鳥의 다른 이름인 ‘큰고니’가 인천을 찾아왔다. 지난 3월 초중순 찾은 안암호엔 고니 10여 마리가 호수에 깃든 봄을 즐기고 있었다. 몸 전체가 온전히 흰색인 성조와 연황갈색을 띤 유조가 섞인 풍경이었다. 고니는 2, 3주 정도 안암호에 머물렀다.
고니 옆에서 얼굴이 화려한 가창오리, 온통 흰색에 검은 깃털이 포인트처럼 보이는 흰비오리 떼가 조연처럼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노랑부리저어새 여러 마리도 주걱처럼 생긴 긴 부리를 휘휘 저으며 호수 옆 습지에서 먹이를 찾아다녔고, 봄 하늘에선 검독수리, 흰꼬리수리, 잿빛개구리매 같은 맹금류가 봄 하늘을 맴돌았다.
안암호는 ‘인천 도심 속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가 되어 있었다. 키가 큰 갈대가 울창하게 우거지고 그 사이사이로 호수가 일렁이는.
글 김진국 본지 편집장│사진 홍승훈 포토그래퍼
매년 봄이면 인천엔 백조들이 찾아온다. 올봄 영종도를 찾은 큰고니들이 호수 위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고니
해마다 인천 ‘안암호’, 영종도 ‘홍대염전’ 찾아 훨훨
기러기목 오릿과에 속하는 고니는 북아메리카, 아시아, 유럽을 오가며 살아간다. 몸길이는 1m가 넘으며 몸무게는 3~7kg 정도로 몸은 흰색이고 얼굴에서 목까지는 오렌지빛을 띠는 겨울철새다. 난개발과 오염으로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분류됐으며, 우리나라에선 ‘천연기념물 제201-2호’로 지정해 보호 중이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고니는 두루미만큼이나 부부애가 깊다고 알려졌다. 부부가 함께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며 평생 더불어 살아가는 새가 고니이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생후 20개월 정도가 되면 짝을 찾고, 4년 정도면 성조가 된다. 고니의 수명은 20년 정도로 알려졌다.
영종도 홍대염전 역시 고니가 매년 찾아오는 ‘백조의 호수’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를 찾은 고니가 매년 줄어드는 상황에서 인천을 찾는 고니가 늘어나자 지역 환경운동가들은 인천이 ‘생태계의 보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고니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분류된 보호종이다. 고니들이 영종도 홍대염전에서 천천히 수영을 하고 있다.
흰꼬리수리, 저어새, 황새, 두루미 등
멸종위기종 철새의 보금자리가 된 제4매립장 예정지, 안암호
안암호는 ‘수도권 제4매립장 예정지’에 속하는 지대 가운데 일부(3분의 1)를 차지한다. 전체 면적은 183만m2(약 56만 평)이고, 그중 수면 면적만 152만여m2(약 46만 평)에 이른다. 일산호수공원의 5배에 이르는 크기다. 10km에 이르는 둘레길은 트레킹을 해도 좋고, 자전거를 타기에도 그만이다. 이곳에서 ‘주민화합걷기대회’가 열린 적이 있긴 하지만 평상시 일반 시민에게 개방하지는 않는다.
천수만이나 순천만처럼 안암호는 호수와 습지가 어우러지고 무수한 새 떼가 오가는 풍경을 선물한다. 안암도란 섬이 있어 안암호라 이름 붙인 이 천혜의 지대는 집중호우 때 인천시 서구, 김포시 양촌면 등 매립지 주변 지역 침수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조성됐다. 드림파크와 연계한 수변공원을 만들어 많은 관람객이 찾는 수도권 최고 명소로 만들자는 취지도 있었다.
2001년 조성을 시작한 이래 안암호는 장마철 효율적인 물관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민들이 경관을 감상하며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건강까지 지킬 수 있는 생태공원으로 꽃피어났다.
올봄 안암호에서 만난 새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검독수리, 노랑부리저어새, 큰말똥가리, 뿔논병아리, 흰비오리(위), 고니떼(아래)
안암호는 수도권 매립지 제4매립장 예정지에 속한 습지다.
일산호수공원의 5배에 이르는 안암호는 수도권 매립지 인근 물 조절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많은 멸종위기종 새들이 찾아오고 있다.
강화 남단 갯벌과 생태적 연결 바람직
“시민 위한 효율적 관리 활용 방안 마련” 한목소리
강성칠 박사의 논문 <수도권 매립지 간척 후 생태계 변화 및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관리 방안 연구>에 따르면 제4매립장 예정지는 1980년대 간척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유휴지로 관리돼 왔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담수 습지가 형성되며 자연습지생태공원이 됐다.
2013년에만 해도 26종 140개체의 야생조류가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해 지금은 흰꼬리수리,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황새, 두루미 같은 멸종위기종과 보호종이 찾아오고 있다. ‘인천 깃대종’ 가운데 하나인 저어새도 많이 관찰된다. 인근 섬 매도에 저어새 번식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2017년 7월에만 성조와 유조 74마리를 볼 수 있었다.
논문에서 강성칠 박사는 안암호를 강화 남단 갯벌과 생태적으로 연결해 물새류의 휴식처로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두루미,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황새, 도요새, 물떼새는 물론이고 다양한 오리류가 찾아드는 생태공원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아울러 갈대 습지 일부 지역을 검단수로와 연결하고 논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여름철 저어새와 백로류의 먹이터, 겨울철 인천 시조市鳥인 두루미의 먹이터와 잠자리터가 될 것이라는 결론이다.
안암호를 둥둥 떠다니며 이따금 머리를 수면 아래로 집어넣으며 무자맥질을 하던 고니들이 하나둘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수면을 차고 날아오른다.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인천에 머물며 기력을 축적한 고니들은 이제 광활한 중국과 러시아 습지로 날아가 새 생명을 품을 것이다. 그러고는 내년 이맘때쯤 다시 인천으로 날아올 것이다. 백조들아, 인천으로 와줘서 고맙구나. 내년에 다시 만나길 소망한다.
영종도 옛 홍대염전을 찾은 고니들이 날갯짓을 하고 있다.
환경 칼럼
사람과 새가 공존하는 생태공원을 꿈꾸며
글 노형래 환경 칼럼니스트│사진 홍승훈 포토그래퍼
안암호 습지를 찾은 황새들
겨울에는 천연기념물 두루미와 황새 그리고 큰고니가 노닐고, 여름에는 전 세계 6,000여 마리밖에 없는 저어새가 휴식을 취하는 곳. 희귀 조류뿐 아니라 여름과 겨울철이면 수만 마리의 오리류와 기러기류가 휴식을 취하는 새들의 낙원.
여기까지 들으면 많은 사람이 ‘세계 유수의 생태공원을 얘기하는 건가’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곳은 놀랍게도 바로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가 모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쓰레기 매립지인 수도권 매립지 안에 자리한다. 바로 인천광역시 서구와 경기도 김포시 경계에 위치한 ‘안암호’다.
안암호 일대는 1980년 이전까지 드넓은 갯벌이었다.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안암호를 비롯한 그 일대 갯벌은 천연기념물 제257호 ‘인천 연희경서동 두루미서식지’로 지정돼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제방을 쌓고 갯벌을 메워 세계 최대의 쓰레기 매립지로 조성하면서 두루미, 황새, 저어새, 큰고니 등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수많은 생명의 고향이었던 갯벌이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산으로 변해가며 더 이상 새들이 오지 않게 된 것이다.
그 후 40년. 아직은 쓰레기를 매립하지 않은 매립 예정지(제4매립지) 일부가 안암호라는 이름의 갈대 배후 습지로 조성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멸종위기종인 철새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엔 언제나 희귀 동식물이 넘쳐나는 법이다. 안암호 수위보다 높은 인공섬을 만들면 인천시 깃대종이자 ‘천연기념물 제205-1호’인 저어새가 둥지를 틀 것이다. 이와 함께 배후 습지에 삵, 너구리 같은 천적이 접근하기 힘든 습지 섬을 만들면 인천의 시조 두루미도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안암호와 배후 습지 지역을 쓰레기 매립지 예정 부지(폐기물 처리 부지)에서 해제하고 생태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구상에서 사라져가는 많은 생명과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안암호를 조성한다면 인천의 인간과 동식물이 공존하는 생태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노형래 / 환경 칼럼리스트, 글로벌에코투어연구소 대표, 해양문화교육협동조합 이사장, <바다 그리고 섬을 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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