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나의 인천 : 치어리더 배수현
함성 사이에 피어난 인천의 시간
치어리더 배수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보다, 깃발을 흔드는 팬의 손끝에서 더 크게 감동한다는 사람. SSG 랜더스의 치어리더이자 때론 평범한 시민으로, 일상에서도 응원의 마음을 놓지 않는다는 배수현 씨. 20년 넘는 세월을 ‘인천’이라는 이름과 함께 걸어온 배수현 씨가 그 고마움과 애정을 담아 편지를 보내왔다.
사진. SSG랜더스 제공
SSG 랜더스 치어리더로 활동 중인 배수현 씨
무대에 올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안녕하세요.
SSG 랜더스 치어리더이자 IFBB 프로 비키니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배수현입니다. 오늘은 인천 시민으로서, 그리고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온 사람으로서 제 마음을 천천히 적어보려 합니다. 무대 위에서 혹은 화면을 통해 저를 봐주시는 분들 에게도 제 진심 어린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저는 인천 동구 신흥동에서 태어나 율목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들이 있어요. 집 근처 작은 공원에서 가족과 함께 고기를 구워 먹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던 시간, 또 해가 질 때까지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뛰어놀던 날들요. 그 시절의 공기와 웃음소리는 여전히 제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고 제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해주는 힘이 되어주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야구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일터’라고 표현하기엔 벅찰 정도로 제 삶에서 가장 특별한 장소입니다. 무대 위에서 팬들과 눈을 마주치고 함성을 들으며 함께 호흡하는 순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합니다. 특히 인천 연고 구단과 함께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승패를 넘어선 감동을 수없이 느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경기가 어려울 때조차 꺾이지 않던 팬들의 응원 소리입니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깃발을 흔들고 목소리를 높여주는 분들을 보면 저도 무대 위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시금 다잡게 돼요. 진심이 진심을 끌어내는 그 울림,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얼마 전, 우리 팀의 최정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500홈런을 달성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저는 그의 1호 홈런부터 함께했던 사람 중 한 명으로서, 그 순간의 감격을 팬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정말 영광이었어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가슴 벅찼던 날이었고 그 장면은 제 인생의 한 페이지로 오래도록 남을 거예요. 인천은 저에게 단지 태어난 도시가 아닙니다. 부모님의 발자취가 있고 제 성장의 모든 순간이 새겨진 곳이자 지금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무대입니다.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가족이 서로를 의지하며 조금씩 더 나은 공간으로 이사했던 기억, 그때마다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들은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친구들이 인천에 놀러 온다고 하면 괜히 더 잘 보여주고 싶어져요. ‘어디를 소개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꼭 데려가는 곳이 있어요. 바로 송월동 동화마을과 월미테마파크입니다. 단순히 ‘인기 있는 관광지’라서가 아니에요. 그곳은 제 아버지 그리고 지금은 하늘에 계신 둘째 큰아버지께서 함께 벽화 작업에 참여하신 곳이거든요. 제겐 ‘예쁜 벽화 마을’ 그 이상으로 가족의 흔적이 살아 있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그 벽화 앞에 서면 꼭 가족사진을 찍던 날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요.
인천 토박이인 배수현 씨
배수현 씨의 어린 시절
이 편지를 쓰다 보니, 새삼 인천이라는 도시가 계절마다 정말 다른 얼굴을 가진다는 걸 떠올리게 되네요. 봄엔 곳곳에서 벚꽃이 피어나고, 시민들의 얼굴엔 축제의 설렘이 스며들고, 여름엔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해안길이 참 좋고, 가을엔 하늘이 높아지고 공원이 물드는 풍경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줘요. 겨울이 되면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낭만적인 불빛들이 거리마다 피어납니다. 같은 도시인 데도 매번 새롭게 느껴지고, 그런 인천이 저는 참 좋아요.
편지가 길어졌네요. 마지막으로, 제 삶의 슬로건을 하나 소개하고 싶습니다. 바로 ‘미쳐라, 즐겨라,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저를 움직이는 문장이에요. 매일 무대 위에서, 헬스장에서, 혹은 조용한 일상 속에서도 이 문장을 떠올립니다. 어제보다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보자는 다짐, ‘이 순간을 내 전부로 만들자’라는 약속 같은 거죠. 가끔은 SNS나 DM으로 “언니 덕분에 운동을 시작했어요”, “저도 자기관리를 해보려고요” 같은 메시지를 받습니다. 그런 말들이 저에겐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제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이자,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해요.
SSG 랜더스 응원 무대에 오른 배수현 씨
무대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야구장을 배경으로 선 배수현 씨
언젠가는 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자리를 꼭 가져보고 싶어요. 몸을 쓰는 일뿐만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일이 제 삶의 또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걸 믿고 있으니까요. 작은 용기라도 건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무대 위에서든, 평범한 하루 속에서든, 이 도시와 함께 걷고 싶습니다. 야구장을 가득 채워주는 팬 여러분 그리고 저를 응원해주시는 인천 시민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인천이라는 무대에서 계속해서 웃고, 울고, 응원하며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만들어가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배수현 드림
- 첨부파일
-
- 이전글
- 시민의 詩선 : 호국보훈의 달
- 다음글
- 다음글이 없습니다.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