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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천 : 가수 송창식
기타 줄 위에 걸어둔 추억들 가수 송창식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을 노래하며 살아온 가수 송창식. 기타 줄 위에 마음을 얹어 평생을 노래해 온 그가 고향 인천을 향한 한 장의 편지를 보내왔다. 노래보다 따뜻한 기억과 사랑이 담겨 있는 편지를 확인해보자.
사진. 김성재 포토디렉터
중구 신흥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송창식
안녕하세요. 가수 송창식입니다.
저는 지금의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마음속 어디선가 오래된 골목 하나가 불쑥 고개를 내밉니다. 신흥동의 긴 담 모퉁이, 낡은 골목을 지나던 발소리, 친구들과 뛰놀던 마당 그리고 밤이면 혼자 올라가 노래를 부르던 해광사의 넓은 공터…. 이 모든 장면이 제 인생의 악보처럼 마음에 새겨져 있더군요.
이처럼 저는 인천 동네 곳곳에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숭의동, 신흥동 그리고 답동으로 이어지는 유년의 경로 위에는 전쟁의 그림자는 물론, 전쟁 직후 가난이 짙게 눌러앉아 있었습니다. 6.25 직후라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겠죠. 그럼에도 제게 인천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따뜻한 공간입니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반에서 1등을 하면 인천중학교에 무시험으로 갈 수 있었어요. 노력 끝에 저도 그 무리에 들었고 그렇게 인천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 제도 덕분에 저의 평범한 일과가 자연스럽게 중학교로 이어졌고, 인천을 그리고 음악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저는 낮에는 친구들과 농구를 했고 밤에는 골목의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뛰놀았습니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오가며 진득한 사람 냄새를 배웠습니다.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배운 의리, 교실 속에서 배운 지식, 둘 다 저에게 는 음악의 씨앗이 되었고 그 모든 경험이 오늘의 저로 피어났습니다.
편지를 쓰며 가만히 인천을 떠올려 보니 제가 유년 시절을 보낸 동네의 ‘소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담벼락 너머에서 들리던 라디오 소리, 마당을 쓸던 빗자루 소리, 그리고 해광사 공터에서 혼자 흥얼거리던 노랫가락까지. 어린 저는 해광사 마당에서 노래 실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어둠이 짙어져도 멈출 줄을 몰랐죠. 그래서일까요? 중학생 때 ‘경기음악콩쿠르’에 나가 성악부문 1등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인천에서 정말 많은 도전과 꿈을 이뤄냈네요.
송창식의 젊은 시절을 품은 액자들
송창식의 과거와 현재가 스며있는 스튜디오 내부
제가 만든 노래 중 많은 곡이 인천의 기억에서 출발했습니다. 〈한번쯤〉이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골목을 지나가던 소년이 마음을 숨긴 채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을 그린 노래, 그 모습은 제가 자라던 동네, 긴 담 너머에서 종종 마주하던 풍경이었습니다. 〈담배가게 아가씨〉도 실제 인천의 한 담뱃가게 앞 풍경을 회고한 노래고요. 그러니 저는 결국 인천이라는 도시로부터 끊임없이 곡의 영감을 얻고, 멜로디를 써 내려간 셈이지요.
사람들이 종종 물어봅니다. “음악을 오랫동안 해올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그건 아마도 제가 아직 인천을 다 부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몸은 늙고, 목소리도 전 같지 않지만, 매일 기타를 손에 쥐고 연습을 이어가는 이유는 여전히 내 안에 제 삶과 고향의 이야기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인천은 참 많이 변했더군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스트릿댄스 페스티벌’, 곳곳의 재즈바와 공연장들, 젊은 음악가들이 오를 수 있는 무대까지. 하지만 그 변화가 마냥 낯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갑습니다. 왜냐하면 인천은 오래전부터 음악의 도시였거든요. 바다를 끼고 서양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왔던 곳이자 그룹사운드가 가장 먼저 흥했던 곳, 클래식의 물결이 활발했던 도시로 제게 기억되고 있으니까요.
송창식스튜디오에 마련된 악보집과 LP판
1991년 발매된 <한번쯤>의 코드를 잡아보고 있다.
노래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송창식
사실 저는 이제 노래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성대 수술을 두 번이나 해서인지 목이 전보다 예민해졌거든요. 하지만 음악은 여전히 저의 하루이자 삶의 이유, 그리고 기억의 고리입니다. 기타 줄을 하루라도 안 만지면 몸이 근질거리고, 입으로 소리를 뱉지 않으면 마음이 허해집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노래를 부릅니다. 누가 들어주지 않아도 인천이 들어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천 시민 여러분. 지금은 인천이 아닌 다른 곳에 거주하고 있지만, 인천은 제게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곳입니다. 제 노래의 뿌리이며, 제 기억의 마당입니다. 인천에 아직도 저의 친구들이 있고, 저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부디 그 아름다움을 지켜주시길,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노래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언젠가 인천의 무대 위에서 여러분과 다시 마주하길 소망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가수 송창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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