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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eON : 오감 인천

2025-08-12 2025년 8월호

여름의 감각, 그리고 기억


빛, 향기, 맛, 소리 그리고 촉감: 인천의 여름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영종도 바닷가. 

물결 위로 번진 햇살 한 조각이 여름의 기억이 된다.



발끝으로 계절이 스며든다.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젖은 발목 위로 햇살이 잔잔히 부서진다. 

갯벌에서 놀던 아이가 두 손 가득 갯것을 들어 올린다. 

작은 손가락 사이로 회색빛 물결이 미끄러지고, 

파도처럼 푸른 눈동자가 숨을 품듯 반짝인다. 


여름은 빛으로 시작해 향기로 번진다. 

한낮의 햇살이 유리창 위에서 물결처럼 흔들리고, 

장마가 지나간 골목엔 젖은 흙내가 눅눅히 밀려온다. 

포구의 짠 내가 바람을 타고 골목 깊숙이 파고들고, 

바닷가 얼음창고 문틈에선 서늘한 숨결이 새어 나온다.


여름의 청량함이 입술에 머문다.

아이스크림을 베어 문 아이의 입가에 달콤한 미소가 번지고, 

막 자른 수박의 붉은 향이 뜨거운 공기를 갈라 놓는다.  

차가운 물방울이 손끝을 스친 기억처럼, 

여름은 지나가도 감각은 남는다. 


빛, 향기, 맛, 소리, 그리고 촉감. 인천의 여름은 다섯 감각으로 새겨진다.

짧은 계절이 스쳐가도, 그 순간들은 이 도시의 숨결과 기억 속에 머문다. 


월미도의 바람이 말을 건다. 

갈매기 울음이 파도처럼 스쳐 지나가며 여름을 깨운다.


월미도 바닷가 놀이터. 아이들의 웃음이 바람을 타고 번져 나간다. 

순간, 여름이 푸르게 빛난다. 


송도국제도시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 

그 짧은 시간이 이 여름을 머물게 한다.



소리가 품은 시간, 

빛이 남긴 여름 


소리는 하루를 깨우고,

빛은 시간을 기억하게 한다.


이른 아침, 월미도의 여름은 바람 소리로 깨어난다.

바람이 바다를 스치며 낮게 울리고, 그 위로 갈매기 울음이 길게 파문을 그린다. 

관람차 위 아이들의 웃음이 물결처럼 번져 파도처럼 흘러가고,

그 소리는 바닷바람을 타고 골목 깊숙이 스며든다. 하루는 그렇게 첫 숨을 쉰다.


밤이 내려앉으면, 도시는 숨죽인 채 빛으로 말을 건다.

폭죽이 어둠을 깨뜨리고, 흩어진 불빛이 검은 물 위에서 잔물결처럼 부서진다. 

바다는 잔잔한 파도로 그 빛을 감싸 안고, 뜨거웠던 하루를 천천히 내려놓는다. 

여름의 숨결이 그렇게 빛과 함께 고요 속으로 잦아든다. 


연안부두의 여름. 

창 너머에서 바다가 밀려 들어와 마음을 적신다. 



배다리의 여름. 

낡은 선풍기가 돌 때마다, 무더운 공기 속에 갇힌 시간이 바람결에 흩어진다


우각로 문화마을의 지난 여름. 

담벼락 위 능소화 향이 골목을 채우고, 오래된 시간마저 그 향기에 잠겼다.



향기가 머무는 골목, 

여름이 물결치는 바다


바다는 향기로 말을 걸고,

골목은 그 향을 기억처럼 품는다.


연안부두의 바람이 낮게 흔들린다.

젖은 쇠 비린내와 짠 기운이 묵직하게 코끝에 맺힌다. 

여름은 언제나 이런 내음으로 먼저 깨어나곤 했다. 


지금은 사라진 옛 골목에 들어서면 공기부터 달랐다. 

햇살이 머문 담벼락에서 흙내가 피어오르고, 

능소화의 진한 향이 그 위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좁은 길 끝에서 불어온 바람은 이 향기들을 모아 한숨처럼 얹어 주었다. 

그 안엔 한낮의 열기와 아직 사라지지 않은 바다의 숨결이 얽혀 있었다.


향기가 스쳐간 자리마다 기억이 잠기듯, 

그 계절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서 천천히 숨을 내쉰다.



뜨거운 여름, 한 그릇의 차가움이 계절을 식히고, 

그 맛은 기억 속에 머문다.


할머니의 손끝이 채소를 다듬을 때마다, 

풋풋한 여름 향이 바람을 타고 골목을 채운다.


손끝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기운이 한여름의 열기를 걷어낸다.



손끝이 기억하는 여름, 

입안에 머무는 시간


맛은 손에서 시작되고,

계절은 그 손끝에서 오래 머문다.


아침 햇살이 닿기 전, 냉면 골목은 이미 하루를 준비한다.

찬물 속 면을 휘젓는 손목이 바삐 움직이고, 

팽팽히 선 핏줄 위로 맺힌 물방울이 반짝인다.

한쪽에서는 채소를 다듬는 손길이 쉼 없이 이어진다.

무릎 위에 쌓인 초록은 햇빛을 받아 은은한 윤기를 머금고,

잘려 나간 단면마다 풋풋한 향이 퍼져 나와 골목 안까지 스며든다. 


해가 높아지자, 사람들의 발길이 거리를 채운다.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여름을 지켜온 상인은 오늘도 묵묵히 육수를 우린다.

정성스러운 손길이 지날 때마다 깊게 밴 고기 향이 뜨거운 공기를 헤치며 코끝에 닿는다. 

첫 숟가락이 입에 닿는 순간, 한낮의 열기가 스르르 가라앉는다.


소박한 한 끼지만, 그 맛은 오래 마음을 붙든다. 

손끝에서 시작된 계절이 기억 깊은 곳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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