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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eON : 개항장 불빛 아래서

2025-10-25 2025년 10월호

네온과  바람 사이,  180분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  사진. 김경수 포토디렉터 



이정아 시민.

네온 불빛 아래, 바람 따라 걷는다. 

잠시 멈춘 시간 속에서 도시의 밤이 깨어난다. 



밤, 

시간이 흐르다 


오후 여섯 시, 개항장. 

어둠이 내려앉고 전선마다 불빛이 하나씩 숨을 붙인다. 멀어지는 말소리를 뒤로 하고,

느린 걸음으로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도로 위로 흩어지는 희미한 빛.

불쑥, 겹쳐진 그림자 하나가 발끝을 흔든다.

누군가 스쳐 지나고, 외투 자락이 바람에 가볍게 나부낀다. 

그 틈으로 이 계절이 스며든다.


조금 전까지 하루를 붙잡고 있던 얼굴과 시선들이,

이 거리 위에선 하나둘 흩어진다.

“불빛을 따라 걷다 보면, 나 자신으로 돌아온 기분이에요.” 말끝이 고요하다.

이 밤이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진다. 


끼익, 철문 닫히는 소리가

잠시 귓가에 머물다 이내 사라진다.

골목은 다시, 아무 일도 없던 듯 조용해진다. 

그림자는 어느새 발끝을 벗어나 있다.


하루가 저물어도 빛은 남아, 도시의 기억을 밤하늘에 새긴다.


저녁 어스름,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지나온 시간이 밤공기 속에서 숨을 고른다. 


꺼져가는 불빛 사이, 묵묵히 이어진 손길. 

그 안에는 하루를 버텨낸 온기가 스며 있다.



불 꺼진  

시장의 온기 


희미하던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가게 문 닫는 소리가 낮게 울린다.

누군가 진열대를 마지막으로 한번 쓱 닦고,

빈 박스가 골목 한편에 툭, 툭 쌓여간다. 


좌판 끝에 남겨진 귤 하나가 시장 바닥을 따라 굴러간다. 

누구도, 굳이 줍지 않는다.


“불이 꺼지고 나면요,

그 시끌하던 시장 바닥이 말소리 하나 없이 조용해져요. 

그럴 땐 그냥…, 내일도 잘 버텨야겠다 싶죠.”

신포시장 한 상인이 말했다.

점포 천막이 바람에 살며시 흔들리고, 그는 고개를 숙였다. 

입가엔 오래된 다짐 같은 미소가 머문다.


간판 아래 불빛이 아직 골목을 비추고 있지만, 

시선은 이미 이곳을 떠나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그림자를 이끌고, 

저마다의 밤으로 걸어간다.



이민수·이희직 부부, 긴 세월을 함께 걸어온 발걸음이 잠시 머문다. 

그들의 웃음이 바람결에 실려 밤을 환히 밝힌다.



자유공원, 

나란히 걷는 밤


밤이 느리게 흐르는 길.

낮은 목소리 뒤로 바람이 스쳐 지난다. 

자유공원까지 이어지는 짧은 오르막.

가로등 아래,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다. 

서로 아무 말도 없다.


“이 길을 손잡고 걷기 시작한 지, 마흔 해가 넘었어요.”

벤치에 앉은 노부부는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나란히 앉아, 말없이 시간을 흘려보낸다.


불빛은 고요하고,

도시는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다.


오후 여덟 시 삼십 분. 숨결이 아직 따스하게 남은 거리. 

밤은 이제, 더는 낯설지 않다.


두 사람이 나란히,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발끝에 낙엽이 바람에 밀려와 바스락, 소리를 낸다.


네온빛 아래, 바람결 따라 천천히 걷는다. 멈춘 순간, 도시의 시간이 내 안으로 번져온다.


적막한 벽돌 담장 아래, 고요히 내려앉은 그림자.




하루의 끝, 

그리고 시작


밤은 낮보다 더 많은 것을 비춘다.

지나간 하루, 스쳐 간 사람, 멈추었던 감정, 

잊은 듯 놓아두었던 마음.


불빛 아래 그 모든 것이

잠시 켜졌다가, 다시 흘러간다.


돌아보면, 불 꺼진 골목에도

나란히 걷던 공원에도

말없이 건넨 누군가의 마음이 있었다.


네온과 바람 사이, 180분.

도시의 빛은 천천히 사라지고

나는,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졌다.


이제는 멈춰도 되는 시간.

해가 질 무렵, 불빛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낯선 누군가의 옆을 스치고,

두 사람의 발끝이 나란히 찍혀 있던 밤.


발밑에선 낙엽이 바스락거리고, 

옷깃에 스민 바람은 아직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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