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바다 도시 인천 : 석모도 칠면초 군락지
바다 위에서 만나는 붉은 단풍
석모도 칠면초 군락지
단풍이 점점 진하게 물들어간다. 1년을 꼬박 기다려 만난 추색秋色. 가을은 도심을 지나 산과 숲을 물들이고, 끝내는 바다마저도 붉은빛으로 물들인다. 바다는 더 이상 여름의 전유물이 아니다. 늦가을, 또 다른 풍경을 품고 있는 바다로 떠나보자.
사진. 이대원 포토디렉터

갯벌에 핀 붉은 단풍
가을이 절정에 이르면 붉게 타오르는 풍경은 더 이상 산에만 머물지 않는다. 서해안과 남해안의 갯벌에도 특별한 가을 빛이 내려앉는다. 그 중심에는 바다 위 단풍이라 불리는 ‘칠면초七面草’가 있다. 칠면초는 염생식물로 소금기 많은 갯벌에 서 자라는 강인한 식물이다. 퉁퉁마디(함초), 나문재 등과 함께 자라며, 가을이 깊어질수록 짙은 자주색에 가까운 붉은 빛으로 변신한다. 봄에는 연둣빛, 여름에는 초록빛을 띠다 가을이 오면 또 색을 바꿔 최종적으로 강렬한 붉은빛을 선사하는 데, 한 해 7번 정도 색깔이 변한다고 해 ‘칠면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 칠면초의 절정은 9월부터 10월 중순 사이로, 이 시기 갯벌은 마치 누군가의 손에 의해 붓칠 된 듯 붉은색으로 뒤덮인다. 바다의 푸름과 어우러진 색채의 대비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은 단풍을 흔히 산에서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칠면초는 갯벌에서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식물이다.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칠면초는 생태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칠게, 농게, 망둥어 같은 생물들의 서식지가 되어 주고, 뿌리는 갯벌을 단단히 붙잡아 해안 침식을 막는다. 오염된 물을 정화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탄소를 저장하는 ‘블루카본 Blue Carbon’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데도 기여한다. 칠면초는 단순한 식물이 아닌 지구를 지키는 작고도 강한 존재인 셈이다.
한편, 칠면초는 과거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에는 해안가 주민들의 구황작물로 쓰였다. 단오 무렵 채취해 데쳐서 나물로 먹었고, 해열에 효과가 있어 한방 약재로도 사용됐다. 지금은 갯벌 생태계의 정화조 역할을 하며, 물새들에게는 쉼터이자 먹이의 역할까지 해낸다. 그야말로 생태계의 숨은 영웅이라 불릴 만하다.

가을이면 붉게 물드는 석모도 칠면초 군락지

100m 길이에 달하는 전망 덱
석모도에서 만나는 가을의 끝
가을이 끝나기 전, 이 붉은 갯벌을 만나고 싶다면 인천 강화도 끝자락, 석모도로 향해보자. 석모대교를 건너 섬에 들어서면 바다와 하늘, 갯벌이 어우러진 웅장한 가을 풍경이 펼쳐지는데 특히 썰물 때 매음리 쉼터, 보문선착장 인근 도로, 나무깨 버스정류장 주변을 방문하면 붉게 물든 칠면초 군락의 압도적인 장관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또 칠면초 군락지 너머로 펼쳐진 진강산의 부드러운 능선은 자연이 빚어낸 풍경화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칠면초 군락지는 산과 바다, 갯벌 등 자연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붉은 갯벌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자연의 색이 만들어낸 비현실적인 배경 덕분에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석모도의 매력은 칠면초에 그치지 않는다. 석모도에는 ‘강화나들길 11코스’, 일명 ‘석모도 바람길’이 있다. 섬 남쪽 해안을 따라 약 16km의 트레킹 코스로, 매음리 쉼터에서 칠면초 군락지를 따라 이어지는 해변 길은 가을철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꼽힌다. 또한 군락지 주변에는 길이 100m의 전망 덱을 비롯해 산책로, 잔디광장, 주차장, 녹지 등이 잘 조성되어 있어 여유롭게 둘러보기에도 좋다.
문학도 사랑한 절경
한편, 붉은빛으로 물든 갯벌은 오랜 시간 문학과 예술의 영감이 되어 왔다. 권지예의 『꽃게 무덤』에서는 “함초와 나문재 같은 식물이 깔린 장엄한 자줏빛 펄”로, 윤후명의 『협궤열차』에서는 “차창 밖으로 펼쳐진 너른 개펄에 선연한 붉은 빛…나문재 군락”으로 묘사되었을 만큼, 칠면초 군락의 인상은 강렬하다.
인천은 바다를 품은 도시답게 석모도 외에도 칠면초를 감상할 수 있는 명소가 많다. 소래습지생태공원, 씨사이드파크 등이 대표적이다. 꼭 석모도가 아니어도 좋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갯벌 위의 단풍’이라 불리는 칠면초와 함께, 짧지만 강렬한 가을 여행을 즐겨보자. 그 추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이다.

간조 때는 바닷길이 열려 칠면초를 더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Info. 석모도 칠면초 군락지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산1-2
24시간 운영 및 상시 개방 ※ 간조 시간 확인 후 방문
032-930-3515
- 첨부파일
-
인천광역시 아이디나 소셜 계정을 이용하여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전체 댓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