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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공무원이 간다-헌혈왕 민호준 소방경

2021-02-01 2021년 2월호


‘피’와 ‘땀’으로 생명 살려낸 30년 영웅의 삶
소방공무원 민호준


철들고 나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었는데 경제적 능력은 안 되고

다행히 건강한 몸이 있어 피를 나누게 되었어요.


글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사진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피가 모자란다.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혈액 보유량에 빨간불이 켜졌다. 5일 분량을 비축해야 하지만 3일분이 채 안 되는 ‘주의’ 단계에 이른 것. 코로나19 때문이다. 매일 1,200여 명의 피가 부족한 상황을 바라보는 민호준(60, 인천송도소방서 미래119안전센터장) 소방경은 애가 탄다. 지난해 말까지 120회 헌혈을 했건만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제가 하고 싶다고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거든요. 건강 조건이 맞아야 하고, 한 해 다섯 번까지만 가능합니다. 저의 경우 2월 말이나 돼야 다시 헌혈을 할 수 있습니다.”
헌혈을 하려면 우선 헌혈 3일 전부터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술은 물론이고 몸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는 운동마저 해선 안 된다. 24시간 3교대 근무하는 소방관 일만 해도 피곤할 텐데 그는 왜 피 뽑는 일을 멈추지 않는 걸까. “철들고 나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었는데 할 수 있는 게 제 피를 나눠주는 일밖에 없었어요.” 민 소방경은 그렇게 20대에 헌혈을 시작한다.
인천시 화수동에서 태어나 초중고부터 대학까지 인천에서 나온 그는 60평생, 인천을 떠난 적이 없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일하다 늦깎이로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때는 1991년. 우연히 인천시청 앞을 지나다 본 소방관 모집 공고는 그의 몸 안에서 끓고 있던 ‘이타적 삶에 대한 갈망’을 분출시켰다. 소방공무원 임용시험에 덜컥 합격한 뒤 화재를 진압하는 경방 요원,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구조 요원,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구급 요원으로 30년 세월을 건너왔다. 이 기간 인천의 10개 소방서 가운데 5개 소방서에서 근무했다.
불길에 휩싸인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올 때,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소방관의 운명. 화마가 집어삼킨 건물 안으로 뛰어든 동료, 선후배가 돌아오지 않을 때면 오래도록 자책감에 시달렸고, 심하게 훼손된 사체를 수습할 때는 며칠 동안 숟가락을 들지 못하기도 했다. 동료들의 순직과 부상을 볼 때마다 눈을 질끈 감으며 다짐했었다. ‘이젠 제복을 벗을 때가 된 것 같아’라고. 그렇지만 시커멓게 그을린 동료들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짓는 얼굴을 보며 다시금 용기를 냈고, 여기까지 왔다. “긍정적인 마인드와 튼튼한 몸,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소유자만이 좋은 소방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더이상 힘들지 않더군요.” 
일찌감치 가정을 꾸린 덕에 사업을 하는 아들(32)은 벌써 두 명의 손자를 안겨줬다. 독일에서 콘트라베이스를 공부하는 딸(29)은 조만간 인천으로 돌아와 오케스트라 연주자의 길을 걸어갈 생각이다. 올해 정년을 맞는 민 소방경의 퇴직 이후 소망은 동갑내기 아내 박인숙 씨와의 미뤄뒀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집사람도 시교육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얼마 전 정년퇴직을 했거든요. 부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아이 키우고 일하느라 집사람 고생이 많았어요. 올해 말이면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인천이 활짝 피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그때 아내 손을 잡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고 싶습니다. 물론 헌혈은 받아줄 때까지 계속해야지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 장비를 점검하는 민 소방경의 뒷모습이 큰 산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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