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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서 만난 인천사람들
2011년 가을, 하와이에 갔다가 융숭한 대접을 받은 기억이 떠 오릅니다.
‘인천에서 온 인천사람’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 덕분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와이 현지 교민들은 1902년 제물포항을 출발해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을 떠난 이민자들의 3, 4세대가 많았던 것입니다. 인천의 모습을 이야기해줄 때마다 반짝이던 그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재외동포청’이 인천으로 와야 할 이유는 이처럼 역사적 당위성이 있고 공항, 항만 등으로 정책수요자가 편리하며 국제도시의 글로벌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와이는 물론, 유럽, 동남아 등 각지에 흩어져 사는 재외동포들이 ‘재외동포청 인천유치’를 지지하고 응원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두루미, 저어새, 백조(큰고니) 등 지금 인천엔 해마다 멸종위기종 철새들이 많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인천의 자연이 새들이 살고 머물기에 적합하다는 방증입니다. 저 새들처럼 ‘시민이 행복한 세계 초일류도시 인천’에 재외동포청이 둥지를 틀어 함께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 公明 김진국 -
장, 그곳엔 ‘사람’이 있다
“예쁜 ‘샥시’ 또 왔어?” “또 밥 얻어먹으러 온 거야? 밥값 받아야겠네.” 웃음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살랑거립니다. 2일과 7일이 드는 날, 닷새 간격으로 강화 장터를 찾았습니다. 첫날, 길 위에서 따뜻한 밥 한 끼 나눈 사이입니다. 두 번째 보는 얼굴인데도, 시장 사람들은 가까운 벗을 만난 듯 살갑게 반겨줍니다. 어깨를 감싸 안고 엉덩이도 두들깁니다. “할머니, 저 왔어요~.” “아이고, 왔어?” 주름진 고운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핍니다. “뭐라도 사 먹으라”며 기어코 ‘귀한’ 쌈짓돈을 손에 꼭 쥐여 주던 할머니입니다. 여든여덟의 나이에도 한 번 본 저를 또렷이 기억하십니다. 아직 40대인 저에게 60대의 막내딸과 닮았다며 예뻐하십니다. 그 짧은 시간에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활짝 열리다니요. 가슴에 행복이 가득 차오르다니요. 사실, 생각지 못했습니다. 잊고 있었습니다. 추억 속 장날이 아직도 열리고, 그곳에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장터의 포근한 감촉과 소리, 향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벌써 그립습니다.
- 오일장 할머니 생각, 정경숙 -
십리포 밤바다의 선물
서해 바다에 움튼 인천의 섬, 영흥도로 봄 마중을 다녀왔습니다. 영흥대교 아래 포구에서 시작해 바닷길 따라 십리길. 신새벽 진두항에서 포구 사람들을 만나고, 소금기 어린 해안을 따라 걷고 걸어 어스름에 십리포 해변에 다다랐습니다.
푸른 봄, 깊은 밤이었습니다. 바다로 통창을 낸 카페엔 서로를 도닥이는 눈길이 마주 보며 웃고 있습니다. 덩달아 제 마음도 느슨해집니다. 짐을 내려놓고 밤바다의 색과 소리와 움직임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바다 향기를 흠뻑 들이마셨습니다.
들락날락. 시퍼런 바다는 바위에 제 몸을 몰아붙였다 창백한 포말로 부서집니다. 하얀 모래밭은 너른 가슴 펼쳐 부서진 짠물을 담담히 놓아줍니다. 바다에서 배웁니다. ‘굳게 달려드는 결심’도 있지만 ‘움켜잡은 것을 놓아주는 용기’도 있음을. 그러쥐고 있던 나만의 작은 세상을 열어야 밀물썰물이 인다는 것을. 십리포 밤바다에서 내일을 너끈히 살아낼 수 있는 용기를 길어 올렸습니다. ‘고맙다 바. 다야, 다음 계절에 또다시 만나자.’
- 봄의 문턱에서, 최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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