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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아침-에네켄

2022-03-30 2022년 4월호


에네켄

글·사진 김진국 본지 편집장



월미도 ‘한국이민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멕시코 이민자 디오라마

피리 부는 내시, 도망 중인 신부, 옥니박이 박수무당, 가난한 황족과 굶주린 제대 군인, 노루 피 냄새의 소녀, 도둑놈. 김영하의 장편소설 <검은 꽃>은 제물포항에 모여든 인간 군상의 묘사로 시작한다. 그들은 멕시코로 향하는 영국 화물선 ‘일포드’호에 오르려는 사람들이다. ‘높은 보수와 각종 편의를 제공할 것입니다.’ 브로커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멕시코 이민자들은 현지에 도착한 뒤 비로소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민자들을 기다린 건 선인장의 날카로운 가시와 살을 새카맣게 태우는 유카탄반도의 뙤약볕, 농장주의 채찍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09년. 중노동에 시달린 4년간의 노예 계약이 끝났지만 그들에겐 돌아갈 조국도, 뱃삯도 없었다. 이민자들은 결국 현지에 눌러앉아 생존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검은 꽃>은 1905년 단 한 차례 있었던 멕시코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멕시코 이민은 하와이 이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 이민사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건이다. 1905년 국제 이민 브로커 마이어스John G. Meyers는 높은 보수와 편의 제공을 미끼로 멕시코로 갈 조선인을 모집한다. 서구 열강과 일제의 침탈로 저물어가던 대한제국의 불쌍한 백성들은 거짓 광고에 현혹돼 일포드호에 오른다. 전국 18개 지방에서 모집한 이민자 1,000여 명 중 인천 출신은 225명에 이르렀다. 그렇게 1905년 4월 제물포항을 출발한 일포드호는 한 달여 만에 살리나크루즈항에 도착한다. 적어도 조선에서의 삶보다는 나을 것이라 기대했던 멕시코 이민자들의 꿈은 그러나 현장에 도착하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도착 즉시 이민자들은 유카탄주의 20여 개 에네켄(애니깽, 어저귀라고도 했다) 농장에 흩어져 가혹한 중노동에 시달린다.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도 멕시코 이민자들은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쿠바로 재이주를 하거나 멕시코혁명에 휩쓸리며 이역만리에서 한 많은 생애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주목할 점은 멕시코 한인들의 독립운동과 한국인의 색깔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미국 대한인국민회의 도움으로 1909년 북미주 지방총회 메리다 지방회를 설립한 한인들은 이후 멕시코 각지로 흩어져 지방회를 설립했다. 지방회는 일제의 부당함을 알리는 한편, 동포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메리다에 숭무학교를 세워 군사교육을 시켰으며 일신학교, 해동학교를 세워 한글을 가르치기도 했다. 1921년 멕시코 한인 중 290여 명은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쿠바에서도 한인들은 교육에 힘을 기울여 흥민학교, 민성국어학교, 진성국어학교 등을 세워 한글을 가르쳤다. 1932년엔 청년학원을 설립해 한국사 강연회와 독서, 토론회를 열어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그렇게 6세대까지 이어온 멕시코와 쿠바 한인들은 지금 ‘멕시코한인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오고 있다.
4월은 멕시코 이민 117주년이 되는 달이다. 외롭고 고단했던 삶이었지만 지금의 멕시코 이민자 후세에게만큼은 4월의 봄 하늘처럼 화사한 미래만 펼쳐지길 소망한다.


1900년대 초 한글학교 앞에 모인 멕시코 거주 한인들 Ⓒ한국이민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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